LIFE

나이 서른, 마침내 슬랑이를 주무르다

젠지의 유아적 행동을 조롱하는 대한 수 많은 밈들에 대한 젠지 사회학자의 대답.

프로필 by 박세회 2026.09.03

올해로 서른을 맞은 친구 Y는 요새 슬라임 장난감에 푹 빠져 있다. 자취방에 놀러 가면 책상 서랍 한 칸이 통째로 슬라임이다. 투명한 것, 반짝이가 든 것, 쥐면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까지 구색이 갖춰져 있다. 가끔 만지는 정도면 모르겠는데 대화를 나눌 때조차 수시로 만지작거리는 게 거슬려서 아주 심통이 날 지경이다. 전화 중에도 무언가 조물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고, 넷플릭스를 보다가는 슬라임으로 풍선을 만들겠다고 설치다 바닥에 과자를 쏟더니, 이제는 급기야 마주 앉아 술을 마실 때도 한 손으로 슬라임을 조몰락대기 시작했다. 언젠가 대체 그게 뭐가 좋냐고 물었더니, 잠깐 생각하다 “그냥, 기분이 좋아서”라고 하더라. 더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한 나만 머쓱해졌다.

이 친구의 열정이 유별난 것도 아니다. 이른바 키덜트 시장의 규모는 10년 새 5000억원에서 1조6000억원으로 불었고, 청년층의 완구 지출은 한 해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요즘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는 주말마다 다 큰 어른들로 붐빈다. 원래 도매상이나 문구점 상인들이 드나들던 골목인데, 이제는 장성한 청년들이 손바닥만 한 말랑이(쥐었다 놓으면 모양이 되돌아오는 장난감)며 알록달록한 키캡(키보드 자판을 닮은 장난감)이며 왁뿌볼(왁스로 코팅된 클레이 공)을 한 봉지씩 사 들고 나오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왁뿌볼은 엄지로 누르면 껍질이 바삭 부서진다. 그러고는 끝이다. 사실상 일회용인 셈인데, 매장마다 준비한 물량이 순식간에 동이 난다고 한다. 동대문뿐만이 아니다. 성수동은 언제부턴가 ‘팝업 성지’로 불린다. 생김새만 보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을 내세운 매장도 간혹 있는데, 제법 인지도가 있는 경우 오픈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실 서울에 올라온 직후, 친구 손에 붙잡혀 끌려갔다가 잔뜩 몰린 인파에 진이 쏙 빠지는 봉변을 겪은 적도 있다. 혹 트렌드에 관심 없고 젊은이들의 열기에 부담을 느끼는 편이라면 꼭 주의하시길 당부드린다.

하기야 다 큰 어른들이 장난감 하나에 이렇게까지 몰리는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 눈에 한마디 얹기 딱 좋은 풍경이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이런 걸 두고 어른이 애처럼 군다며 시대가 통째로 유치해졌다고 혀를 찬다. 좀 다정한 쪽은 반대로 편을 들어준다. 세상이 도무지 뜻대로 안 되니, 손안에서나마 확실히 통제되는 걸 위안 삼는 거라고. 이런 해석은 이미 웃음의 재료가 될 만큼 익숙하다. SNL의 <스마일 클리닉>에는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라며 틈만 나면 키캡을 두드리는 어린 신입 사원이 나온다. 그 인물을 보며 우리가 웃는 것은, 저 작은 걸 또각또각 눌러 자신을 달래려는 손짓이 어딘가에 있음직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손안의 작은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는 말은 ‘아이가 불안해서 인형을 쥐고 잔다’는 이야기와 그리 멀지 않아, 결국 어른이 애가 됐다는 앞의 핀잔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치해진 게 아니라 불안한 것뿐이라며 말투는 다정해졌지만, 그 손길을 여전히 어딘가 모자란 행태로 본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Y가 정말 그랬을까?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슬라임을 주무르는 동안 내가 본 Y의 얼굴은 대체로 무표정했고, 가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종종 너무 산만하게 굴어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불안을 달래는 손이라기엔 아무래도 너무 심심했다. 그 심심한 손길을 가만히 곱씹다 보면 “기분이 좋아서”라던 대답이 조금은 달리 들린다. 불안을 달래려고 만지는 게 아니라, 그것 말고 할 일이 없어 만지는 것으로. 즐거워서가 아니라, 즐거움 말고는 남은 게 별로 없어서.

손에 쥐어지는 게 이것뿐인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한때는 어른이 되는 길이 그런 대로 분명했다. 학교를 나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얻고, 아이를 키우는 것.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사회가 ‘이제 다 컸다’며 도장을 찍어줬다. 그사이 대학은 열에 여덟이 갈 정도로 흔해져, 이제는 안 나오면 되레 축에 못 드는 기본 절차가 됐다. 문제는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 받은 졸업장으로 얻는 자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졸업하고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적으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잡은 첫 직장 중 열에 넷이 계약직이다. 그뿐일까. 셋 중 둘은 월급이 200만원에 못 미치고, 가장 많은 청년이 흘러드는 곳은 숙박·음식점업이다. 실상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자리가 흔하다. 결혼은 어떨까. 2000년까지만 해도 삼십 대 초반 다섯 중 하나에 불과했던 미혼 인구는 셋 중 둘로 늘어났고, 가장 흔한 살림의 형태는 식구 딸린 집이 아니라 혼자 사는 집이 됐다. 집은 말할 것도 없다. 제 집을 가진 이의 비율은 삼십 년째 절반 남짓에서 꿈쩍 않는데, 그 절반이 자꾸 위로 빨려 올라간다. 삼십 대에 제 집을 가진 사람은 열에 셋이 못 되고, 예순 넘은 쪽은 열에 일곱이다.

그러다 보니 남은 몫은 자기를 끝없이 해명하는 일이 된다. 아직 취직은 못 했어도 무능한 건 아니고, 부모와 같이 살아도 덜 떨어진 건 아니고, 결혼을 안 했다고 사람 구실을 못 하는 건 아니라고. 다양성의 시대가 되었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성숙의 채점표는 여태 그 옛 경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럼 옛날 어른이라고 정말 더 여물었을까. 그럴 리가. 도장을 받았다고 다 성숙한 것은 아니다. 미숙한 채 관문만 통과한 어른이 그 시절에 얼마나 많았는지는, 그 밑에서 자란 사람이면 대개 안다. 그렇다고 지금과 다를 바 없었다고 단언하기도 뭣하다. 관문이란 성숙을 증명하는 도장이기만 한 게 아니라, 스물여덟에 대출과 아이를 안겨 억지로라도 어른으로 만들던 계기이기도 했으니까. 관문이 닫혔다는 건 도장을 안 찍어준다는 뜻만이 아니라, 어른이 될 발판까지 함께 걷혔다는 뜻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서른셋 먹은 친구 J가 전화 중 카톡방을 확인하란다. 뭘 보냈는지 보니, 옛날 삼십 대는 이맘때 결혼도 하고 집도 있었는데 요즘 서른은 말랑이나 만지며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요새 흔히 보이는 형식의 밈이었다. 딱 제 얘기란다. 잠깐 웃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래도 자신이 끼인 세대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른들은 그래도 집이며 차며 갖췄는데 도무지 비켜줄 생각은 않고, 아래를 보면 열 몇 살이 벌써 주식을 굴리고 스무 살이 저속노화를 챙기며 야무지게 앞서가는 것 같아, 딱 그 사이에 붕 떠 있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했다. 그런데 며칠 뒤 대학원 수업에서, 쉰 넘은 선생님이 지나가듯 말했다. 자신의 세대야말로 제일 억울하게 끼인 세대라고.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아래로는 서른 넘은 자식까지 부양해야 하는 첫 세대라고. 게다가 나이 들어서는 그 자식에게 기댈 수도 없다고.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럴듯했다. 이상하다 싶은 건 집에 오는 길이었다. 서른셋도 제가 끼인 세대라 한탄하고 쉰셋도 끼인 세대라 힘들단다. 대체 안 힘든 세대는 어디 있나?

뜯어보면 어쩐지 J의 위아래가 다 수상하다. 아래부터. 미성년 주식 계좌 77만 개는 대개 부모가 선물하고 관리한다. 십 대의 조숙함처럼 보이는 것은 부모의 재산이 아이 이름을 빌린 것에 불과하다. 반대로 이십 대의 투자는 대개 소박해서, 절반은 굴리는 돈이 100만원도 안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저속노화 같은 건강관리 유행에 합류한 것은 사정이 좀 다르다. 우선 통곡물이 싸다. 잘 관리한 몸은 그 자체로 얼마 안 되는 밑천이 되기도 하고, 당장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미래의 병원비는 아껴준다. 위도 실은 그리 단단하지 않다. J가 부러워한 번듯한 자리, 대기업 정규직은 윗세대 취업자 중 열에 하나도 채 되지 않는다. 이제 대기업 월급이 중소기업의 두 배가 되었다지만, 그 월급을 받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세대에서도 소수다. 서른셋의 친구도, 쉰셋의 선생님도 실은 그렇게, 위아래로 가장 그럴싸한 자리만 번갈아 올려다본 셈이다. 착시란 게 원래 그렇게 공평하다.

하기야 자가와 자차를 마련하고,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어야 비로소 어른인 거라면, 그런 어른이 못 되었다고 그리 주눅 들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 도장을 찍어주던 창구가 문을 닫았는데, 줄을 못 섰다고 자책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이왕 다 같이 도장 없는 신세라면, 저마다 남의 세대에서 좋은 것만 골라 보며 질투하고 한탄하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싸잡아 미워하느니, 그냥 다 같이 슬라임이나 주무르는 편이 세상에 이롭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슬라임은 적어도 아무도 미워하게 만들지 않는다.

지난주엔 Y가 자기 슬라임 하나를 내게 건네줬다. 아니, 정확하게는 슬라임이 들어간 말랑이, 2026년 여름의 화제작 ‘슬랑이’를 줬다. 형광 연둣빛의 손가락 사이로 느리게 흘러내리는 녀석. 시간은 늦어가는데 교수님이 독촉한 논문은 통 쓰이지 않고 달리 할 것도 없어 밤중에 그것만 한참 주물거렸다. 세상이 온종일 나를 제멋대로 주무르는데, 이 조그만 것만은 반대로 내가 주무르는 대로 순순히 져주더라. 힘껏 눌러도 찢어지지 않고, 손을 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 험한 손길을 다 받아내고도 멀쩡한 낯으로 돌아오는 무던함이 어쩐지 귀여워서, 자꾸 손이 갔다. 그러고 있으니 이상하게, 나도 저렇게 눌리고도 도로 부풀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조금씩 들었다. 집값이 내린 것도, 논문이 써진 것도, 어른이 되는 길이 문득 보인 것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이걸로 됐지 싶다. 기분이 좋다.


장민욱은 사회학을 공부하고 글을 쓴다. 세상과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단기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을 전전하며 만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동시대 청년들의 내밀한 여정에 관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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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장민욱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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