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

우리가 사랑한 여성 감독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1.08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삐딱한 소리를 해야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선택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개막작 이야기다. 올해 개막작은 <어쩔수가없다>였다. 물론이다. 모두가 기다리던 영화다. 이미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큰 화제를 모은 영화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박찬욱이라는 감독에게 딱히 국제영화제 수상이 더 필요한 건 아니다.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더는 오스카 수상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상이라는 것은 간절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미 영화의 신전에 오른 예술가에게 진짜 금도 아니고 금칠한 트로피 따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금값이 올라도 황금종려상과 황금사자상과 황금곰상의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이베이에 올리면 명성의 무게로 가격이 오르긴 하겠다.

아니 그래서, <어쩔수가없다>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부산국제영화제 선택에 불만인 이유가 뭐냐고? 독자 여러분은 ‘이보다 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축제에는 큰 이름이 필요하다. 화제작이 필요하다. 모두가 가장 보고 싶던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대중적 기대와 영화제의 에너지를 결합해, 올해 한국 영화계와 부산국제영화제가 함께 ‘활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막작을 선정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30주년을 맞았다. 묘한 시기에 맞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몇 년간 내부 조직의 문제로 좀 갈팡질팡했다. 한국 영화계는 지난 몇 년간 비평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죽을 쒔다. 한 방이 필요했을 것이다. 영화제와 영화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어쩔수가없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니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건 없다. <어쩔수가없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개봉 이후 많은 사람은 이병헌 캐릭터가 입사 경쟁자를 죽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불평했다. 집은 팔면 될 일이다. 쿠팡이라도 뛰면 될 일이다. 쿠팡이라도 뛰면서 좀 기다려도 좋을 일이다. 그 집을 팔면 작은 치킨집이라도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병헌과 손예진처럼 생긴 부부라면 뭘 해도 잘했을 것이다. 미모로 파는 치킨집이라면 불티가 났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 거론하는 불평이 내 불평이 아니라 관객들 불평이라는 말은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어쩔수가없다>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집행위원장 및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교체된 30주년 영화제다. 과거를 딛고 다시 출발한다는 시그널을 줄 의무가 있었던 축제다.

그래도 대중이 기다려온 화제작이 개막작이 되어야 하지 않냐고? 지난 몇 년간의 개막작 중 한국 영화를 한번 돌아보자. 2024년은 김상만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전란>이었다. 이건 넷플릭스 영화를 영화의 영역에 포함한다는 꽤 논쟁적으로 재미있는 시그널이었다. 2023년은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였다. 2021년은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였다. 2018년은 윤재호의 <뷰티풀 데이즈>였다. 2017년은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었다. 거대한 대중적 화제작들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장건재, 윤재호, 신수원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지도 의문이다. 이 글을 읽게 될 장건재, 윤재호, 신수원 감독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나는 독자들이 여러분의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을 지금이라도 꼭 챙겨 보길 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어울렸을 것인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명확한 정답이 있다.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다. 10월 25일 개봉한 이 영화는 12월 1일 현재 15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독립영화 최고 스코어다. 비평적으로 따지자면 <세계의 주인>은 2025년의 주인이다. 곧 많은 비평가와 매체와 영화광들이 2025년의 베스트 리스트를 여기저기 올리는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세계의 주인>은 많은 리스트의 1위 자리를 당연히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영화냐고? 밝힐 수가 없다. 세상에는 스포일러를 전혀 모르고 봐야 하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M. 나이트 샤말란 영화만 그런 게 아니다. 아주 미약하게 시놉시스를 이야기해 보자. <세계의 주인>은 고등학교가 무대다. 주인공 ‘이주인’은 모범생이다. 완벽한 인싸다. 시끌벅적하고 외향적인 소녀다. 어느 날 친구가 전교생 서명운동을 제안한다. 누가 봐도 전교생 모두 합의할 만한 운동이다. 오로지 이주인만이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서명을 거부한다. 거기서부터 영화는 이주인의 세계로 들어선다. <세계의 주인>은 올해의 가장 불편한 영화인 동시에 가장 따뜻한 영화다.

아니다. 불편함과 따뜻함으로만 이 영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세계의 주인>은 <우리들>(2016)과 <우리집>(2019)에 이은 윤가은의 세 번째 영화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가정과 학교와 사회 폭력을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아니다. 여성 감독 영화를 이야기할 때 ‘섬세하다’는 표현은 더는 쓰고 싶지 않다. 모두가 여성 감독 영화 앞에서는 ‘섬세하다’거나 ‘서정적이다’라는 표현을 버릇처럼 쓴다. 윤가은의 영화는 섬세한 동시에 묵직하다. 그의 영화는 소세계를 대세계로 확장한다. 여자아이들의 세계는 나의 세계, 당신의 세계, 우리의 세계가 된다. 봉준호 감독이 <우리집>을 두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더불어 아역 배우를 스크린에 살아 숨 쉬게 하는 3대 마스터”라고 상찬한 것은 과장이 절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국 영화협회 발간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2020년 “향후 20년간 우리의 시각을 형성하며 영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차세대 감독 10인” 중 하나로 윤가은을 선정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올해 영화인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가장 기다렸던 영화 중 하나는 당연히 윤가은의 신작이었다. 재미있게도 혹은 흥미롭게도 <세계의 주인>은 개막작이 되지 못했다. 출품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전’과 ‘파노라마’ 부문에도 선정되지 않았다. 올해 영화제에 <세계의 주인>은 아예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월드 프리미어를 부산국제영화제 직전에 열리는 북미 최대 규모의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먼저 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모든 국제영화제는 세계 최초 공개인 월드 프리미어를 원한다. 다만, 프리미어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베니스에서 먼저 공개된 <어쩔수가없다>도 월드 프리미어는 아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월드 프리미어 아닌 영화들도 개막작으로 선정해 왔다. 3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한국 영화와 영화제 부활이라는 의미를 따지자면 <세계의 주인>만큼 올해 개막작으로 어울리는 영화는 없었다. <세계의 주인>이 부산을 통해 먼저 한국 관객들에게 공개됐다면 올해 영화제는 다음 세대 한국 영화 주인공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멋진 무대가 됐을 것이다. 한국 영화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현장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윤가은이 좋다고 오바하는 게 아니다. 윤가은은 지지부진한 한국 영화에 숨을 불어넣을 가장 빛나는 재능 중 하나다. 논란의 여지는 없다.

나는 여기서 젠더 문제를 끌고 들어올 생각은 없다. 지금 충무로는 파산 직전이다. 누구도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가은이 여성 감독이라 손해 봤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정치적 과장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걸고 넘어가 보자. 지난 10여 년간 한국 영화가 내놓은 최상급의 영화들은 여성 감독 작품이었다. 김보라의 <벌새>(2018), 김초희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8), 이옥섭의 <매기>(2018), 남궁선의 <10개월의 미래>(2020), 전고운의 <소공녀>(2022), 정주리의 <다음 소희>(2022), 김세인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 그리고 윤가은의 모든 영화들. 놀라운 재능들이 충무로에 쏟아졌다. 여성 감독의 시대가 열렸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나는 이들이 독립영화라는 경계를 지우거나 파괴한 뒤 재빨리 상업영화 메가폰을 잡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성 감독들이 끝없는 태작으로 끝없이 돈을 잃고도 끝없이 차기작을 만드는 가운데, 여성 감독들은 차기작은커녕 독립영화 경계에서도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들 역시 언젠가는 좀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받아 상업영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 남궁선 감독은 올해 첫 상업영화 <고백의 역사>(2025)를 넷플릭스로 공개했다. <82년생 김지영>(2018)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두 번째 상업영화 <만약에 우리>도 곧 개봉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너무 느리다. 지난 역사를 좀 돌아보자. 충무로 여성 감독들은 한국 영화 역사에 남을 영화를 만들고도 멈추어 선 뒤 좀처럼 다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1998)과 <집으로>(2002)의 이정향은 지금 어디 있을까? <고양이를 부탁해>(2001)와 <태풍태양>(2005)의 정재은은? <질투는 나의 힘>(2002)과 <파주>(2009)의 박찬옥은? <카트>(2014)의 부지영은? 나는 이경미 감독의 차기작을 정말이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어깨너머의 연인>(2007) 이후 <탐정: 리턴즈>(2018)를 거쳐 올해 <대도시의 사랑법>까지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며 지속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언희 감독은 드문 사례다.

사실 나는 <에스콰이어> 남성 독자들에게 여성 감독들을 소개하려 이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러분이 이 이름들을 다 기억해 주길 바란다. 되도록 <세계의 주인>을 보러 극장에 가시기를 소망한다.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여러분의 2025년 베스트 리스트 순위는 바뀔 것이다. 수렁에 빠진 한국 영화의 미래를 구원할 이름은 여성의 이름이 될 것이다. 젠더 이야기 아니라고 해놓고 결국 젠더 이야기 아니냐고? 예술에 젠더가 어디 있나. 여자들이 영화를 너무 잘 만드는데 영화제도 제작사도 투자자도 그들을 패시브 어그레시브하게 패스하는 게 안타까워하는 소리다. 아주 오래전 한 영화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자 감독들은 같이 일하기 까탈스러워서요.” 같이 일하기 까탈스러운 사람이 영화는 제일 잘 만든다. 저 말을 한 영화인은 이제 영화계에 없다. 과거의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어쩔 수가 없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