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사제지간, 그런 달달한 건 그라운드에 없다

적어도 그라운드에서는 그렇고, 그게 맞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12.02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지만, 완벽한 소통은 기적에 가깝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나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에 시차가 있고, 사람들은 언어의 틀(게다가 이마저도 각자 조금씩 다르다) 안에서 현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종종 멀미를 느낀다.

스포츠는 선수들이 보여주는 초인적인 집중력과 신체 능력 덕에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다. 20년 정도 스포츠계 테두리에서 살아왔지만, ‘그깟 공놀이’가 없어도 사람들이 전혀 아쉬움 없이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건 스포츠가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보여줄 때다. 헌신, 희생, 우정, 도전, 극복 등등의 가치들이 그라운드나 필드 혹은 트랙 위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재현될 때 우리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나 역시 그 땀냄새 나는 가치가 좋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도 언어와 현실 사이의 단차 때문에 어지럼증을 겪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사제 관계’라는 표현 혹은 단어가 특히 힘들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제 관계’라는 개념은 적어도 프로스포츠에선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사제 관계로 감독과 선수 관계를 파악할수록 현실과 멀어진다는 이야기다.

한국인들이 스포츠에서 감동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스승과 제자’라는 걸 고려하면, 많은 분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무슨 소리야! 스승이 보여준 믿음에 힘을 얻은 제자가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해서, 결국에는 보답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데!’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 나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4위를 차지했을 때를 떠올리면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박지성이 포르투갈과 한 조별리그 3차전에서 골을 넣고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 사제지간이라는 표현의 ‘사진적 정의’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프로축구계는 다르다. 현실은 이렇다. “프로축구계에서 사제 관계라는 표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양측 모두 구단과 계약을 맺었으나 역할이 다른 거죠. ‘내가 스승이니 무조건 따르라’는 말은 가치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감독들도 선수들이 자신을 평가한다는 걸 알아요.” 한 K리그 구단 현역 단장의 말이다. 지금도 여러 스포츠에서 비슷하게 감격적인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그걸 사제 관계라는 틀 안에 다 넣으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프로 감독과 선수는 모두 구단과 계약한 ‘고용인’이고, 둘 사이에 위계는 거의 없다. 감독이 팀 운영에 대한 전권과 경기 운영을 하기에 ‘선생님’처럼 보일 뿐이다.

“현대 축구에 맞는 외국인 감독님을 모시면 좋겠습니다.” ‘2022 카타르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대표팀이 청와대 만찬에 초청받았을 때 한 말이다. 이성적으로 들리는 말이지만, 뜯어보면 앞서 언급한 간극을 볼 수 있다. 제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스승을 고를 수는 없다. 선수들의 당연한 바람을 들어보면, 선수도 감독을 평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잠시 휴전 중인 신태용 전 울산HD 감독(이하 신 전 감독)과 울산HD 구단 그리고 선수단의 진실 공방과 설전도 같은 맥락이다. 신 전 감독은 인도네시아 대표팀에서 ‘역사를 만든 자(History Maker)’라는 칭송을 받고 지난 8월에 울산HD 지휘봉을 잡았으나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해임됐다. 성적이 가장 중요한 프로스포츠에서 계약 해지야 흔한 일인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신 전 감독은 “나는 바지 감독이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자신을 빼놓고 구단과 선수단이 팀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선수단이 호텔방에 모여 투표로 ‘신태용과 더 갈 수 없다’며 뜻을 모아 구단에 전달했고, 구단이 이를 수용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신 전 감독은 이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단이 자신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흠집 냈다고 주장했다. 서울로 가는 선수단 원정 버스에 실어 집으로 보내려 했던 골프 가방을 선수 중 한 명이 사진으로 찍어 구단에 보냈고, 구단이 이를 외부로 유출했다고 했다. 이 사진이 커뮤니티에 퍼졌고, ‘성적이 좋지 않은 구단 감독이 골프나 치러 다닌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골프를 친 것도 아닌데 선수가 감독의 골프 가방 사진을 찍어 유출하는 게 말이 되느냐!’ 신 전 감독을 비난하던 여론 중 일부는 신 전 감독의 이 같은 주장이 나오자 극적으로 방향을 바꿨다. 몇몇 팬은 이런 움직임을 주도한 선수를 특정해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울산HD는 사실과 다르다며 시즌 종료 후 대응을 예고했다.

팬들의 마음이 드리프트한 건 ‘하극상’ 프레임 때문이다. 팬들이 ‘사제지간’이라는 틀로 신 전 감독과 울산HD 사이 일을 해석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 세계에서는 ‘스승을 제자가 내쫓을 수는 없고, 감독은 선수보다 윗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능력을 보이지 못한 스승을 구단이 해임할 수는 있어도 선수단이 실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양쪽 입장을 다 들었지만, 아직 사실 관계는 모른다. 그리고 ‘누가 더 나쁘다’라고 판정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 일은 프로스포츠를 좀 더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프로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는 사제지간이 아닌 동업자 혹은 동료이며,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한쪽도 절대적인 권력을 갖지 않는다.

이 사건을 보면서 놀란 이가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선수단이 감독과 같이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구단이 공식적으로 인정(*적극적이진 않을 수 있다)한 내용이다. 적어도 한국 스포츠계에서 이런 상황이 이번처럼 자세하게 보도된 적은 없었다.

해외 스포츠계로 눈을 돌리면 비슷한 상황을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해외 구단(특히 유럽)에서 경기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말하지 않나. “유럽 선수들은 우리와 좀 다르더라고요. 마음에 안 들면 감독하고 악수도 안 하고 나가거나 언쟁을 벌이기도 합니다”라고. 유럽 선수들이 특히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감독과 선수 관계가 그렇다.

한 번만 같은 팀에 있어도 ‘은사’라는 표현을 쓰는 한국 스포츠계가 놀란 일이 있다. 골키퍼로 활약하는 케파 아리사발라가(당시 첼시)가 경기 도중 감독이 낸 교체 사인을 거부하고 필드에 남아 플레이한 일이다. 유럽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고, 선수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프로선수로 뛰고 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었고, 선수에게도 자기 의견을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한 사례도 있다. 선수 시절에 뛰어난 실력보다 카리스마로 더 유명했던 파올로 디카니오는 선덜랜드에서 체면을 구겼다. 그가 다소 투박한 축구를 구사하고 권위적인 리더십을 보이자 몇몇 선수가 팀 미팅 때 운영 방식과 전술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디카니오가 스스로 팀을 떠났다. 사실 이런 예는 허다하다.

음악계도 그렇다고 들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콘트라베이스>에는 지휘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원끼리 발을 구르며 리듬을 맞춘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난 11월호 <에스콰이어>에서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처음 만날 때면 단원들이 지휘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싸움을 벌인다’는 현역 지휘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회사라고 안 그럴까? 우리는 모두가 서로를 평가하고, 미묘한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팬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무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감독과 선수도 다른 의미에서 이해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줄다리기가 일상이라도 서로를 좀 더 존중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감독은 선수를 제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설득할 상대로 보고, 선수는 감독이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팀을 위해 일한다는 전제에서 이해하는 포용이 필요하다.

감독과 선수가 일종의 동료라는 걸 인정하면 더 크고 다양한 세계가 열린다. 선생님과 학생은 위계가 명백한 일방적 관계지만, 동료는 좀 더 수평적이다. 게다가 팀은 학교가 아니라 직장이다. 직장 상사도 직장 동료라는 범위 안에 있다. 이윤 창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한 회사에 다녀도, 동료는 성향이 달라서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스포츠팀도 마찬가지다.

팀에서도 다툼이 있을 수 있으니 무슨 일이든 덮자는 게 아니다. 매 사건을 떼어내 객관적으로 보면 될 일이다. 인간은 기승전결이 맞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사실 세상일은 결과가 같아도 이유는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프로스포츠라고 다르지 않다. ‘악덕 구단’, ‘권위적인 감독’, ‘연약한 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사제 관계’라는 공식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쉬울 수도 있겠다. 걱정 없다. 좀 더 다극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맛볼 수 있다. 감독은 선생님 같을 수도, 아버지 같을 수도 있다. 감독은 냉혹한 이론가일 수도 있고, 형 같은 리더일 수도 있다. 선수 유형도 제각각이다. 이 다양한 수를 조합해보는 만큼의 즐거움이 스포츠의 다양성이다.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 세계관은 달콤하고 안정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불안정을 넘어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제지간이라는 오래되고 달달한 필터를 빼면,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팀 내 관계(권력, 인간 등)를 좀 더 수월하게 포착할 수 있다.


류청은 <풋볼리스트> <포포투>에서 축구 전문기자로 활약했으며, 현재 국내 축구 전문 매거진 <히든K>의 편집인 겸 아시아 축구 플랫폼 <골포스트> 대표로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류청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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