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 컬렉터가 들려주는 시계 수집의 여정
시계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취향과 철학을 담는 매개체로 바라보는 두 명의 컬렉터. 이제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시계 수집의 여정을 <에스콰이어>가 함께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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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인 준
빈티지아이 콜렉터스 클럽 대표
당신의 첫 시계는 뭐였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가 사주신 검은색 돌핀 전자시계였다. 그 시계를 무척 좋아해 몇 년 동안 열심히 착용했다.
그렇다면 직접 구입한 첫 시계는 뭔가?
스무 살 때 산 까르띠에 탱크 머스트 수동 모델이다. 직사각 케이스의 절제된 선과 로마숫자 인덱스, 블루 스틸 핸즈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 23.5mm의 작은 사이즈였지만 손목 위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뛰어났다. 이 시계를 계기로 스몰 워치에 대한 취향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스몰 워치에 대한 취향을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빈티지 워치는 크기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작고 단정한 디자인으로 균형미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현행 모델에서는 찾기 힘든 미적 완성도도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스몰 워치를 선호하게 됐다.
시계 컬렉션을 설명하고 있는 빈티지아이 콜렉터스의 송인준 대표.
어쩌다 시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걸 좋아했다. 스타일에 민감했고, 시계에 대한 관심도 그 연장선에서 비롯됐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대중적인 것보다는 희소성이 있고 개성이 뚜렷한 대상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한정판이나 핸드메이드 제품처럼 대량 생산되지 않고 고유한 개성을 지닌 것에 자주 끌렸다. 이런 취향이 빈티지 시계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한다.
빈티지아이 콜렉터스 클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시작은 2004년이었다. 운영을 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전당포처럼 단순히 시계를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와 가치를 중심에 두는, 감각과 취향이 살아 숨 쉬는 공간 말이다. 그래서 2008년 겨울 쇼룸을 마련했다. 빈티지아이 콜렉터스 클럽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취향과 안목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랐다.
그간 소장한 시계가 몇 점이었는지 기억하나?
지금까지 빈티지아이 콜렉터스 클럽을 통해 소개한 시계만 약 1만여 점에 이른다. 초창기에는 패셔너블하고 접근성 좋은 시계들을 주로 소개했지만, 점차 시계를 깊이 알게 되면서 수집하는 시계도 달라졌다. 시계 관련 장비를 확충하고, 엔지니어들이 합류하면서 전문성도 좀 더 갖추게 됐다.
컬렉팅의 방향성은 어떻게 바뀌었나?
초창기에는 귀한 시계를 모두 손에 넣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수집의 본질은 소유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발견과 복원, 시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울리는 주인에게 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곧 컬렉팅의 의미가 됐다. 지금은 소유보다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
당신의 시계 컬렉션이 궁금하다. 유독 많이 보유하고 있는 특정 브랜드나 모델이 있나?
장식이 화려한 것보다는 고유한 미학을 간직한 모델이 주를 이룬다.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당시의 원형을 중요하게 여겨서, 대부분 오리지낼리티를 유지한 시계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롤렉스, 까르띠에, 오메가를 들 수 있다. 이런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명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각각 시대를 정의하는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언어가 시계라는 오브제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텍 필립은 시간을 초월한 절제와 균형을, 바쉐론 콘스탄틴은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깊이를, 예거 르쿨트르는 기술과 실험 정신을, 롤렉스는 견고함과 대중적 신뢰를, 까르띠에는 디자인 코드의 혁신을, 오메가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구하기 힘든 고가의 시계를 추구하기보다 각 메종의 정체성이 어떻게 다듬어지고 계승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레퍼런스에 집중한다.
그의 컬렉션 중 일부. 특히 1970년대 파리에서 제작된 라운드 형태의 까르띠에 골드 워치를 수집한다.
그중 특히 자랑하고 싶은 시계가 있나?
최근에는 까르띠에의 골드 라인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볼드한 시계보다 역사적 맥락과 심미성을 갖춘 시계가 주목받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까르띠에의 골드 워치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970년대 까르띠에는 파리, 런던, 뉴욕 세 곳에만 매장을 두었는데, 나는 그중 파리에서 제작된 라운드 형태의 골드 시계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 1970년대 초 파리에서 제작된 미사용 신품 엘립스 모델을 약 40점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방돔, 베누아, 그리고 1970년대에만 존재했던 다양한 모델들을 추가로 수집할 계획이다.
그동안 만난 시계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모델이 있다면 무엇인가?
1985년형 파텍 필립 노틸러스 Ref. 3800. 8년 전 스위스 파트너사에 갔을 때 딱 나를 위한 제품이 있다며 꺼내준 시계였다. 스포츠 타입의 일체형 시계 중에서는 늘 노틸러스를 좋아했고, 게다가 내가 태어난 해에 생산된 모델이기도 했다. 오리지널 박스와 보증서까지 갖춘 완벽한 제품이었지만, 솔직히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기회를 놓쳤는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이제는 더더욱 갖기 어려운 시계가 됐다.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도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컬렉터에게 소유만큼 중요한 건, 어쩌면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과 선택일 것이다.
딱 하나만 남기고 시계를 모두 처분해야 한다면?
고민되지만, 결국 답은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다. 군더더기 없는 선과 면, 절제된 비례… 칼라트라바는 시계라는 오브제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를 보여준다. 많은 시계가 화려함과 복잡함으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단순한 균형이라고 믿는다.
시계를 컬렉팅하는 기준이나 원칙은 뭔가?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름다움이다. 또 동일한 모델 가운데서도 우수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부품이 교체되지 않은 오리지널 상태의 시계를 적절한 가격에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시계가 현재까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단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컬렉팅하는 시계와 평소에 착용하는 시계가 다를 수도 있을 거다. 평소엔 어떤 시계를 차나?
소장하는 시계와 매일 착용하는 시계는 다르다. 평소엔 심플하고 실용적인 모델을 즐겨 착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빈티지 까르띠에 탱크 머스트다. 요즘엔 1969년형 롤렉스 Ref. 1675도 자주 찬다. 펩시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레전드 피스다. 운동을 즐기게 되면서 스포티한 시계에 손이 간다.
시계는 어디에 보관하나?
컨디션 유지를 위해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보관함을 사용한다. 특히 가죽 스트랩은 습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교체하거나 별도로 보관한다. 현재는 오브제로도 활용할 수 있는 보관함을 연구 중이며, 준비되는 대로 소개할 예정이다.
손목시계 외에도 수집하는 다른 시계가 있나?
여행용 시계를 수집하고 있다. 손목시계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형태와 기능이 다양한 여행용 시계 또한 수집 대상으로 의미가 있다.
죽기 전에 꼭 손에 넣고 싶은 시계가 있다면?
롤렉스 Ref. 6062. 1950년대 초반 제작된 이 모델은 롤렉스에서 보기 드문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 워치로, 브랜드 역사 속에서도 전설로 평가받는다. 스테인리스스틸, 옐로 골드, 로즈 골드로 소량만 제작되었으며, 특히 스타 다이얼은 현재까지 수집가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다. 당시 제작된 초기 문페이즈 시계들은 기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 빈티지 수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계가 아닌 다른 카테고리도 수집하나?
오래된 필름 라이카 카메라, 빈티지 조명과 의자를 수집한다. 최근에는 싱글 몰트 위스키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시계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주는 깊이를 가진 대상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컬렉팅이라는 것은 어떤 취미 혹은 행위인가?
나에게 컬렉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가깝다.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감각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컬렉팅의 즐거움은 소유에 있지 않고, 이를 통해 세계를 더 섬세하게 파악하며 자신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있다.
다양한 디자인과 사이즈의 빈티지 까르띠에 워치들.
현재 우리나라의 워치 컬렉팅 문화는 어떤 상황인가?
아직 성장 단계에 있다고 본다. 시계를 역사적 맥락이나 미학적 가치로 판단하기보다는 가격이나 타인의 시선에 더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 해외에는 브랜드의 전통과 디자인, 문화, 언어를 공유하는 두터운 마니아층이 있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은 특정 브랜드와 일부 인기 모델에 관심이 집중되며, 충분히 매력적인 가치를 지닌 브랜드조차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해 철수하기도 한다. 빈티지 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히 시장 규모 때문이 아니라, 컬렉팅의 깊이와 다양성이 아직 충분히 확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시계를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시대의 미학과 문화를 압축한 작은 유산으로 인식한다면, 한국의 워치 컬렉팅 문화도 성숙하고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시계를 컬렉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컬렉팅은 단순히 시계를 사 모으는 게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모아 하나의 집합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값비싼 시계를 많이 모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컬렉션이 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가격, 희소성, 투자 가치, 타인의 평가 같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컬렉션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컬렉팅에는 정답이나 끝이 없다. 다만 시계를 많이 경험할수록 안목이 생기고, 이해와 취향이 쌓일수록 컬렉션은 더욱 풍부해진다. 시간이 지나며 취향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 궤적 역시 자신의 역사로 남는다. 이러한 경험들이 모여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결국 당신에게 시계는 어떤 대상인가? 당신은 시계를 왜 좋아하나?
시계의 본질은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다. 하지만 어떤 시계들은 첨단의 미학과 정교한 기술,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품이기도 하다. 작은 세계 속에 인간의 문화와 역사, 기술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나를 압도한다.
이 상 문
시계 멤버십 커뮤니티 ‘페니워치’ 대표
당신의 첫 시계는 어떤 시계인가?
첫 시계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출장 다녀오는 길에 선물해주신 지샥 시계다. 꽤 오랫동안 유용하게 착용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수영장에서 한 번 착용했는데 방수를 위한 고무 개스킷이 너무 오래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마지막을 맞이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시계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왜 그 시계였나?
이제까지 직접 구매한 시계가 200개는 더 될 것 같은데, 아직도 첫 번째 ‘기계식 시계’ 구매는 기억이 생생하다. 해밀턴의 ‘엑스 윈드’라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서울에서 천안까지 내려가서 중고로 구매했다. 사실 단방향 자동 로터라 와인딩이 되지 않을 때는 로터가 헛도는 증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것도 모르고 헛돌 때의 진동이 꼭 시계가 살아 있는 것 같아 손목에서 시계를 계속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시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컬렉팅이란 행위 자체에 관심이 갔다. 농구화부터 축구 유니폼 레플리카, 쿼츠 시계(특별히 지샥)를 꾸준히 모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기계식 시계로 넘어오게 됐는데, 쿼츠 시계들이나 지샥과 달리 기계식 시계가 주는 독특한 아날로그 감성이 좋았다. 밸런스 스프링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과 ‘틱톡’거리는 팔렛 포크 소리를 듣는 것이 특히 좋았다. 마치 사람의 심장박동과 비슷한 느낌의 시계가 살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재는 대략 몇 점의 시계를 보유하고 있나? 그중 몇 가지 모델을 자랑해달라.
작년 이맘때는 22개의 시계가 있었는데, 최근 독립시계 제작자의 시계를 주로 컬렉팅하다 보니 많이 정리됐다. 현재는 12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고, 3개의 시계를 기다리는 중이다. 랑에 운트 죄네의 자이트베르크 루멘, 예거르쿨트르의 리베르소 투르비용 1993 같은 모델은 국내에 가지고 있는 컬렉터가 많지 않고, 특히 F.P. 쥬른의 투르비용이나 그뢴펠트의 1941 르몽투아와 같은 모델은 더욱 흔치 않아 컬렉터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F.P. 쥬른과 그뢴펠트 두 제품 모두 르몽투아 기능을 갖춘 시계다. 르몽투아처럼 ‘보이지 않는 기능’을 좋아하는 이유는?
반전 매력을 좋아한다. 다이얼 사이드는 심플하지만, 무브먼트 사이드는 복잡하거나 기술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중 르몽투아는 시계의 본질인 정확도를 높이는 매우 전통적이고 기술적인 기관이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페니워치와 랑앤하이네가 협업한 한정판 게오르그 워치.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시계를 경험했을 텐데, 유독 기억에 남는 모델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에 있는 그 누구보다 하이엔드 시계와 독립시계 제작자의 시계를 많이 접하고 다뤄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시계 커뮤니티가 하이엔드 독립시계 제작자와 협업해 자기 이름의 시계를 디자인하고 에디션을 내는 일은 또 다른 일이라 생각한다. 최근 페니워치가 랑앤하이네와 협업해 페니워치 에디션을 7개 한정판으로 선보였는데 어떤 컬렉팅보다 의미 있었다. 페니워치 창립 7주년을 맞이해 기획한 프로젝트로, 이 시계가 다른 어떤 좋은 시계들보다 가장 기억에 남고 애정하는 시계가 됐다.
협업 과정은 어땠는가?
시작은 랑앤하이네를 수입하는 컬렉터스 하우스 대표님이 제안했다. 커뮤니티 멤버들 역시 협업에 긍정적이었고 수월하게 첫발을 디뎠다. 레이아웃부터 핸즈, 용두, 다이얼 컬러 등 세부 디자인을 모두 결정해야 했는데, 실제로 제작에 돌입하니 다이얼 컬러 하나 결정하는 데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역시 제작은 새로운 영역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하지만 랑앤하이네와 멤버들과 많은 대화 끝에 모두가 만족하는 에디션이 완성됐다. 9월 중 공식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실패한 컬렉팅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떤 시계였나?
모든 시계의 고유한 매력을 좋아하기에 실패한 컬렉팅은 떠오르지 않지만, 시계와 관련해 사기를 당한 적은 한 번 있다. 되돌리고 싶은 과거지만 컬렉팅 초기에 마음이 급한 나머지 컨디션을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하고 송금부터 한 게 실수였다. 그렇게 시계를 받지 못한 채 판매자와 연락이 두절되어 낙심했던 일이다. 후에 경찰에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컬렉팅과 구매에서 과정을 제대로 밟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F.P. 쥬른, 그뢴펠트, 파르미지아니, 젠티에를 비롯해 블랑팡, 예거 르쿨트르, 루이 비통 등 각각 매력이 다른 다양한 시계를 수집하고 있다.
딱 하나의 시계만 남기고 모두 처분해야 한다면, 마지막에 남을 시계는 무엇인가?
그동안 종종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때까지는 예거르쿨트르 리베르소 1931이었는데, 이유는 첫째 아들이 리베르소 1931을 나중에 물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아들이 언제 그랬냐며 발뺌을 해 과감하게 처분했다. 그래서 현재는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점보(15202st)다. 점보를 남기고 싶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변화무쌍한 내 컬렉션에도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켜온 시계이기 때문이다.
시계를 컬렉팅하는 당신의 기준이나 원칙은 무엇인가? 기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을 텐데, 그 변천사도 궁금하다.
질문처럼 내 컬렉팅에도 약간의 트렌드가 있었던 것 같다. 초기에는 각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모델들을 컬렉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다음에는 무브먼트의 기능별로 시계를 컬렉팅하기도 했고, 한 브랜드의 시계들을 집중적으로 모으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시간을 지나 현재는 독립시계 제작자의 시계를 컬렉팅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컬렉팅의 원칙은 현재 내가 관심이 가고 흥미 있는 시계를 컬렉팅하되, ‘퀄리티’가 좋은 시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취향’과 ‘퀄리티’를 세심하게 살피면 좋은 컬렉터가 되는 것이다.
컬렉팅하는 시계와 실제로 착용하는 시계는 또 다를 수도 있을 거다. 평소에는 어떤 시계들을 차는가?
사실 컬렉팅하는 시계와 착용하는 시계가 같다. 실생활에서 착용할 수 없는 너무 큰 시계나 불편한 시계는 컬렉팅을 지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좋은 시계들을 많이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모아온 시계들을 편애하지 않고 돌려가면서 차려고 한다. 또한 늘 시계에 맞춰 그날의 룩을 결정한다.
오늘 착용한 시계는 어떤 시계인가?
1993년 제작된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투르비용이다.
만약 당신이 워치메이커라고 한다면, 어떤 시계를 만들고 싶은가?
독립시계 제작자의 시계를 컬렉팅하는 기준과 같다. 기성 브랜드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추고, 케이스는 착용할 때 편해야 하며, 무브먼트와 다이얼 피니싱은 핸드 크래프트로 제작해 아름답고도 조화로운 시계를 만들고 싶다. 개인 취향을 좀 더 넣는다면, 다이얼은 심플한데 무브먼트는 복잡하고 화려해 대비가 확실하면 더 좋겠다.
그뢴펠트의 1941 르몽투아와 F.P. 쥬른의 투르비용.
얼마 전 독립시계 박람회에 다녀왔는데, 한국에 새로운 독립시계를 들여온다면 어떤 브랜드를 소개하고 싶은가?
최근에는 많은 독립시계 제작 브랜드가 공식 딜러나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에 정식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입이 되지 않는 브랜드들이 있다. 그중 3개만 꼽자면, 레젭 레제피(Rexhep Rexhepi), 시몽 브렛(Simon Brette), 아즈만 모낭(Hazemann Monnin)이다. 레젭 레제피의 시계는 현재 기준으로 모든 것을 갖춘 시계를 만들고 있다. 디자인, 기능, 피니싱, 브랜드 밸류까지 모두 최상급으로 올라선 곳. 시몽 브렛은 철저한 분업이 매력이다. 12명의 각 분야 아티장과 함께 시계를 만들고 있는데 이는 제네바 워치메이킹 전통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아즈만 모낭은 시몽 브렛과 정반대인데, 아즈만과 모낭 두 청년은 전통적인 워치메이킹 방식으로 A부터 Z까지 모두 자신들이 만들고 싶어 한다. 다른 좋은 브랜드들이 많지만 세 개 브랜드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선정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컬렉팅 문화, 더 작게는 워치 컬렉팅 문화는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은 압도적으로 롤렉스를 많이 찾고 하이엔드 쪽으로 넘어가면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오데마 피게의 로얄 오크를 많이 찾는다. 한국 소비자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15년 이상 컬렉팅을 하면서, 그리고 페니워치를 7년 이상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은 브랜드와 모델의 인지도와 인기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근래에는 몇몇 브랜드와 모델들에 프리미엄이 형성이 되면서 프리미엄도 시계 선택의 큰 기준이 되고 있는데, 아쉽게도 돈이 되는 시계(또는 감가가 없는 시계)와 돈이 안 되는 시계로 나뉘면서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시계 문화가 형성되기 전에 이런 투자 활동이 늘면서 주류와 비주류 시계들이 나뉘게 되었고, 요즘처럼 유동성이 줄어든 시점에서 수요까지 급격히 줄어 해외 마켓 시세보다 더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시계를 컬렉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개인적인 바람은 자산 가치로서의 시계 컬렉팅도 좋지만 시계 자체를 다양하게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시계는 시간, 역사와 같이 인문학으로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자인 흐름을 감상하거나 수학·물리학·천문학·공학이 집약되어 있는 무브먼트의 정교함까지 느낄 수 있는 무궁무진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된 브랜드의 역사나 문화를 감상하거나 컬렉터들의 모임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시계 컬렉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퀄리티’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컬렉팅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려면 결국 공부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결국 시계라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물건인가?
내게 시계(Watch)는 곧 삶(Life)이다.
시계 멤버십 커뮤니티 페니워치의 대표이자 GPHG 아카데미 멤버로 활동하는 이상문의 오피스.
Credit
- PHOTOGRAPHER 김민석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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