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이 만드는 인공과 가상의 주문들
LG 구겐하임상을 수상하고 이제 곧 홍콩 엠플러스의 초대형 파사드 신작 공개를 앞두고 있는 김아영은 가공의 세계에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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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한국인 최초로 LG 구겐하임상 수상이 발표된 이후 2월부터는 베를린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에서 <Many Worlds Over> 전시가, 3월부터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플롯, 블롭, 플롭(Plot, Blop, Plop)>이 열렸지요. 정말 바빴을 것 같아요.
지난달에는 오스트리아 린츠에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 심사를 하러 다녀왔고, 곧바로 아부다비 컬처 서밋에 참여했어요. 이후 뉴욕에 가서 11월에 뉴욕현대미술관 PS1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그 공간을 보러 갔고, 가장 중요한 LG 구겐하임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했어요. 11월에 뉴욕에서 열리는 퍼포마 비엔날레에 새로운 퍼포먼스 하나를 선보이는데, 그 작품에 대한 논의를 하고 테스트 리허설까지 하고 돌아왔어요.
퍼포마 비엔날레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맥락 속에 있나요?
맞아요. 한국의 스턴트 배우님 두 분을 뉴욕으로 모셔서 모셥 캡처를 라이브로 하려고요. 모션 캡처 의상을 입은 배우님들이 과격한 액션을 선보이면 그 동작들이 곧바로 제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게임 엔진 세계 안에 있는 에른스트 모와 앤 스톰(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두 주인공) 캐릭터의 움직임이 되는 거죠.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창고처럼 굉장히 넓고 높고, 또 PS1과도 멀지 않은 곳을 퀸스에서 찾았어요. 저희가 모시려는 무술감독님이 <오징어 게임> 때 무술팀이셨고, 정호연 배우의 대역을 하셨던 김차이 감독님이신데, 정말 드문 여성 무술감독이세요. 그분과 한 번 작업했는데 너무 재밌었거든요.
옥상에서 싸우는 장면인가요?
보셨군요.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라는 한국에선 아직 전시된 적은 없는 가로로 넓게 펼쳐지는 3채널 영상 작업에 나와요. 세 명의 여성이 옥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액션 신을 짜주셨어요.
저 역시 그 장면에서 정말 놀랐어요. 실사로 영화처럼 정말 때리는 것 같았거든요.
(웃음) 스매시를 하고 발로 돌려 차지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봤던 어떤 유럽 큐레이터가 ‘액션물이면서, 사변적인 픽션이면서, 사회 비판물이다’라는 식으로 쓰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니, 내 작품이 액션물로 보일 수도 있단 말인가’라고 처음 생각하며 각성했어요. 아예 액션을 찍어보기로요. 그렇게 하니까 제가 직접 하는 건 아니더라도 보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스트레스도 해소되고요.(웃음) 그 실사 액션에 에른스트 모, 앤 스톰과 함께 ‘영부’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캐릭터를 연기한 금해나 배우님이 정말 잘 해주셔서 그분께도 반했어요.
에른스트 모와 앤 스톰의 싸움은 정말 섹슈얼하게 그려졌죠.
그게 목적이었어요.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다 굉장히 섹슈얼하게 얽혀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영부와의 과격한 싸움조차도 그런 여지를 남겼어요.
김아영 작가님을 세계가 발견하게 된 순간이 떠올랐어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때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갔을 때였어요. 당시 저는 국외 기자단들이랑 같이 투어 중이었는데, 외국인 기자들이 그때 전시 중이었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보고 넋이 나가서 ‘김아영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사실 뉴욕현대미술관 PS1의 전시도 그 전시를 통해서 잡혔고, 아마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하게 된 것도 그 ACC 미래상의 작품이 많이 작동했을 거예요. 그때 정말 좋은 미술관의 디렉터들이 모두 그 전시에 와서 열심히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해주시는 바람에 와보지 못했던 미술 관계자들 중에도 아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전시도 그 이후에 요청이 들어왔나요?
아녜요. 안소연 선생님(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디렉터)은 직관 같은 게 있으신 것 같아요. 전시가 열리기 전인 작년 봄과 여름 사이에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그리고 또 딜리버리 댄서 연작이나 미래주의적이고 사변적인 픽션의 영역은 한쪽에서 계속 해나갈 것 같으니, 그것과는 다른 리서치 베이스의 초기작, 현실에 더 닿아 있는 그런 작품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작가가 한참 해오던 작업의 방향성을 벗어나 다른 결의 작업을 한다는 게요. 물론 저는 제 아버지가 오랜 시간 일했던 사우디와 중동의 오일머니에 관한 작업을 반드시 하고 싶기는 했어요. 언젠가는요. 하지만 ‘딜리버리 댄서’ 연작이 이렇게 호응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10년 전 작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고,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지요.
작가님의 아버지께서 한양건설의 직원으로 파견 가서 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마터’ 아파트의 역사와 중동 오일머니의 흐름을 엮은 작품이 <플롯, 블롭, 플롭(Plot, Blop, Plop)>의 중심 작품인 ‘알 마터 플롯 1991’이죠. 이 전시의 오프닝 때 작가님은 제게 ‘앞으로는 ‘딜리버리 댄서’와 리서치 중심의 작품을 투 트랙으로 함께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 두 작품군이 나뉘어 있지 않고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두 개의 다른 대답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알 마터 1991’의 마지막에 ‘아버지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 동안 무언가가 그곳에 남았을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그게 마치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보려는 회의주의자의 노력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아주 멋진 해석이네요. 지금 약간 소름 돋았어요.(웃음) 그렇게 봐주시면 정말 감사한데요, 대부분의 사람은 형식과 토픽, 비주얼을 크게 보고 ‘아예 다른 사람이 한 작업 같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더라고요. 실은 이 작업들이 제 안에서는 다 일목요연하거든요. 다 하나의 선상에 있는 작업들이고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저 역시 정말 많은 것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1’에서 시작한 석유에 대한 주제 의식이 실은 ‘딜리버리 댄서’, 즉 배달 기사가 갖는 이동성까지 연결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전시 도록에도 있지만, 석유는 근대주의를 가능하게 한 권력이면서 물리적인 이동과 속도의 에너지원이지요.
제가 저 리서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정확하게는 11년 전이었어요. 유럽에서 공부하며 유럽의 근대에 비하면 한국의 근대는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어요. 유럽이 자기들이 손댔던 그 수많은 식민 국가에 대한 후기 식민주의 담론마저 벌써 선점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고요. 그게 반성의 의미였든 또 다른 신식민주의의 발로였든 그들은 그 학문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런데 한국의 근대는 어땠는가 하면, 아카이빙조차 제대로 안 되어 있고, 마구잡이로 뒤섞이고 얼룩져 있는 카오스 그 자체잖아요. 근대에 대해 조사하던 끝에 다다른 곳이 저희 가족의 이야기였지요. 대체 왜 아버지는 10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 가 있었을까? 어린 시절에는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는데 성인이 되고 비로소 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지요. 아버지를 앉혀놓고 며칠 동안 틈날 때마다 밥 먹다 말고, 또 따로 시간을 내서 여쭤봤어요. 아버지 기억이 굉장히 선명하게 있을 때 많은 걸 받아 적었지요. 그렇게 받아 적은 두꺼운 자료가 있었고, 문헌조사도 하고 국가기록원에서 아카이브 자료도 찾으면서 완성한 게 극작업이자 음악 작업인 ‘제페트’ 연작(2014년부터 선보인 퍼포먼스 및 사운드 설치 작품)이에요. 실은 시각 작업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도저히 펀딩을 감당할 수가 없었죠. 3D나 모션그래픽, 게임 엔진 등을 통해 소위 상상을 개인 컴퓨터에서 시각화하는 게 가능해진 시점을 저는 2010년대 중반 이후라고 보거든요. 그때부터 비로소 사변적 픽션이라는 걸 만들기 시작했지요. 이번에 ‘알 마터 1991’을 작업하면서 느낀 건 제가 모은 리서치 자료들로 만든 것들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에세이 필름 같기도 하다는 점이었어요. 전 개인적으로 에세이 필름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전 그 덜 가공된 느낌이 덜 좋더라고요.(웃음) 에세이 필름은 늘 제 우선순위의 마지막에 있었는데 이번에 그걸 했어요. 10년 전보다 조금은 더 희미해진 기억을 갖고 계신 아버지를 다시 소환해서 같이 얘기도 하고, 3D 스캔도 하고, 저희 가족 얘기를 아카이브 자료로 마음껏 동원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글거리는 영역까지 가야 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센티멘털해지는 걸 너무 힘들어하거든요. 편집할 때 이를 악문 적도 있어요.

전시장에 달린 행잉 작품들은 전쟁과 관련한 상징이다. 가장 왼쪽,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원형 아이콘은 모르타르를, 십자 화살표 모양은 발목 지뢰를 상징하는 식이다. 몇몇 아이콘이 진득한 석유 부산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형태로 변형된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에 있는 검은 형체는 김아영의 그림자다.
센티멘털 좋아요. 저 역시 눈물을 흘렸거든요. 전 그 뒤에도 여러 번을 봤는데, ‘알 마터’ 주택단지에 관한 여러 배경지식을 찾아봤더니 좀 더 입체적으로 이야기가 다가오더군요. 예를 들면 알 마터가 세워질 당시 리야드는 수도가 된 지 한 20년밖에 안 된 도시였어요. 알 마터는 일종의 신수도에 세워진 타워 팰리스 같은 곳이었던 셈이죠.
알 마터에는 오랫동안 입주민이 없었는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쿠웨이트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지요. 쿠웨이트는 당시에도 지금도 인구에 비해 석유 생산량이 많은 엄청난 부국이었어요. 저 역시 작업을 하면서 처음에는 그 콘텍스트를 넣지 않았다가 나중에 넣게 된 이유가 있어요. ‘쿠웨이트 난민들이 와서 살았대’라고 하는 순간 마치 그 아파트에 살기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난민촌이라고 생각할 것 같더라고요. 그게 아니었어요. 그 아파트는 정말 부유한 쿠웨이트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바캉스 하듯이 와서 누리다 간 곳이었죠.
이 작품의 씨앗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생각하면 하나의 주제 의식이 작가 안에서 발전하고 변해가는지를 볼 수도 있어요.
제페트 연작의 시작부터 따지면 11년쯤 됐지요.
그 긴 시간 동안 두 가지 키워드가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는 것 같아요. ‘역청’과 ‘방주’죠.
도대체 왜 우리 아버지는 그 나라에 그렇게 10년 동안 가 있었지? 더듬어보니 결국 한국이 근대사에서 너무도 중요한 물질인 석유가 부족했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늘 석유를 수입했는데 석유파동이 벌어지면서 결국 그 석유를 수입할 돈을 벌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중동으로 사람들을 파견해야 했던 거지요. 그래서 석유가 뭔지를 찾아봤더니 성경, 코란,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두루 등장하더군요.
그 지역에서는 신화 속에 무조건 모세적인 인물이 등장하지요.
어린 모세를 살리기 위해 요람을 띄워서 보내는 장면의 디테일에 보면 ‘역청을 발랐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역청이 결국은 석유의 부산물이지요. 또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역청은 물론, 가스 형태의 석유, 끈적한 형태의 석유, 고체 형태의 석유 등 석유의 부산물들에 대한 다양한 묘사가 나와요. 노아의 대홍수 서사는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코란에도 등장하지요. 그런데 이게 에너지원으로 재발견되면서 전쟁과 대란이 20세기 내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석유는 정말 기이한 물질이에요. 마치 자의식을 가진 것처럼 20세기의 경제와 정치를 조종했다고까지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그런 접근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픽션이 있어요.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사이클로피디아>라는 철학 소설인데요, 그 책에서 석유는 고대 이란의 어떤 가문이 저주를 내린 악마로 등장해요. 이 데몬이 지하의 다공성 공간을 헤엄치고 다니면서 이 행성의 정치를 조종하는 것으로 묘사되지요.
엄청나네요. 실제로….
그러니까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마치 자의식은 석유에 있고 우리는 석유에 조종을 당하고 있는 존재인 것처럼요.
작가님 작품들에 방주의 심벌이 세 번이나 등장하는 건요?
‘제페트’ 연작이랑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에 나오고 또 한 번은 어디에 나와요?
저는 ‘알 마터’가 방주라고 생각했어요. 쿠웨이트의 오일머니로 만들어진 방주죠.
어머. 저 그렇게는 생각을 못 했는데, 맞네요. 난민들이 피신했던 방주네요. 이거 너무 중요한 얘기 같아요. 난민, 피신, 방주!
작가님은 의식적으로 방주를 다루기도 했지만, 무의식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과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라는 작품을 협업하면서 국립오페라단의 극장인 팔레 가르니에의 구조를 낱낱이 조사했어요. 도면도 봐가면서요. 그 건물은 정말 방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페라의 유령>의 모티브가 됐던 호수 같은 게 지하에 있고, 건물이 그 위에 둥둥 뜬 구조이거든요. 마치 청계천처럼 뚜껑을 덮어서 그 위에 떠 있는 거지요. 파리의 지반이 굉장히 약한데, 그래서 지반 공사 때 계속 물난리가 났다고 해요. 그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역청을 바른 벽돌로 그 물을 막아서 아예 지하에 인공호수를 만든 거예요. 그게 너무 흥미로웠어요.
작가님의 여러 작업들에 탄탄한 과학적인 리서치가 뒷받침된다는 생각도 해요.
과학은 늘 자문을 열심히 받고,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예요. 또 이번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랑 ‘0°의 리시버’를 작업할 때는 라이프니츠의 무한히 갈라지는 미로의 개념을 차용했어요.
보르헤스가 아닌가요?
저도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에서 그 얘기를 처음 읽었어요. 보르헤스가 빠져 있던 게 라이프니츠의 무한히 갈라지는 미로나 제논의 역설 같은 거였죠. 그의 많은 에세이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 보르헤스의 ‘죽음과 나침반’이라는 단편의 엔딩에 라이프니츠의 직선의 미로에 대해서 서술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게 너무 매력적이어서 제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도 인용했어요. 그 엔딩에 나오는 앤 스톰의 대사가 그거였어요. “너는 a로부터 b까지 뭘 배달해야 되는데 사실은 그 중간 지점 c를 지나야 하고 c로 가려면 그 중간 지점인 d를 지나쳐야 해. 이러한 중간 지점은 무수히 많아질 테니 넌 영원히 b에 도착할 수 없어.” 그게 제 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이자 또 결국은 제논의 역설에 대한 오마주이자 다시 생각해보면 라이프니츠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더라고요. 과학을 해석하는 방식은 종종 되게 문학적이고 철학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분들, 물리학·천체물리학 그리고 수학자들에게 자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 대사도 기억나요. “틈이 발생할 때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라는 대사죠. 그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적인 대사였어요. 또 전 앤 스톰와 에른스트 모가 서로 다른 멀티버스에서 살고 있는데, 세계의 시간을 무시하는 어떤 길에서 빛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다가 서로의 우주가 마치 웜홀처럼 이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해석했거든요.
해석이 좋네요. 그렇게 이해하셔도 돼요. 사실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저는 스크립트 쓰고 픽션화할 때 논리적으로 쓰진 않아요. 논리로 쓰기 시작하면 구멍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오히려 두루뭉술하게 구멍들을 만들어두고 지금처럼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지기를 바라죠. 이게 조금 더 재미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작들에 비해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나 ‘알 마터 1991’ 등의 최근 작들은 훨씬 더 논리가 단단해지고 구멍이 채워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요새 제 고민 중 하나예요. 제 작품들이 풍부한 무규정성 상태로 있으려면, 많은 사람이 더 사유할 수 있고 개입하고 관여할 수 있는 작품이 되려면 구멍이 조금 더 많아야 하고, 조금 더 불가해해야 하는데, 내러티브가 촘촘해지면서 그 여지들이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선형적 서사가 생겨버리니까요. 시와 산문이라고 얘기해보면 저는 워낙에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또 현대미술로서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시의 무한한 풍부함을 가지고 있어야겠죠.
첫 작품인 ‘Ephemeral Ephemera’ (2007-2009) 작가의 말에는 “결국,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나오지요. 어쩌면 그 답을 내기 위해 인공적인 세계를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멋진 해석인데요. 그런데 기자님은 그 허망함에 늘 닿아 있나요?
저요? 저는 그런 허망함 때문에 문학(혹은 예술)이 발명됐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는 그런 질문에 답을 찾을 수가 없으니 우리가 만든 세계에서, 내가 만든 인물들에게서 답을, 그러니까 표상의 세계에서 표상의 답을 내보는 유희를 발명한 거죠.
사실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그 허망함을 극복할 길이 없어서거든요. 아무 의미도 없고 그냥 그냥 ‘ephemeral’(한시적)일 뿐인데, 덧없을 뿐인데…라고 생각해요. 의미 있는 것은 없지만 그냥 꾸역꾸역 해보자, 내가 의미를 부여한 뭔가를 그냥 조금씩 해보자. 세상이라는 자극에 반응해보자. 그 반응으로 작품을 만들어보자. 그게 제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면서 이곳에 있을 작은 자리를 만들어주는 존재의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작품을 계속 해나가다 보니까 그 허망함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었어요. 예전에 디자인을 하던 시절에는 정말 염세주의가 하늘을 찔렀거든요. ‘왜 사는 거야 정말?’ 같은 생각을 많이 하다가 작업을 하니까 그게 해소가 됐어요. 정말 너무 다행이에요.
그러니까요.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앤 스톰과 에른스트 모. 문학에서 얘기하는 ‘더블’들이 평행 우주에 생긴 아주 작은 틈을 통해 만나고 함께하잖아요. 그 결론이 허망함을 가진 존재인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의 제스처로 느껴졌어요.
맞아요.(웃음) 사실 제가 이 더블의 내러티브를 한 게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가 처음이 아니거든요. 사실은 ‘다공성 계곡’ 연작에서도 그 더블의 내러티브가 나와요. 다공성 계곡 1편 ‘이동식 구멍들’이라는 작업에서 페트라 제네트릭스라는 그 금속 덩어리가 데이터 센터를 통해서 복제된 자기 자신과 만나 결합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작품에도 자기 연민이 당연히 녹아 있었고,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도 비슷한 자기 위로와 자기애의 이야기가 흐르죠.
그런데 이제 ‘딜리버리 댄서’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모르겠네요.(웃음) 지금 올해 ‘딜리버리 댄서’ 연작 안에 두 가지 작업이 있어요. 하나는 10월 셋째 주부터 110m 높이의 홍콩 엠플러스 파사드에서 시드니 파워하우스와 공동 커미션한 ‘딜리버리 댄서’ 연작을 공개할 예정이에요. 또 하나는 아까 얘기한 퍼포마 비엔날레 때 공개되는 모션 캡처 퍼포먼스 작품이에요. 롯데월드몰 같은 아시아 특유의 미로 같은 몰을 배경으로 3명의 에른스트 모가 딜리버리 콘테스트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짓누르며 생존 경쟁을 벌이며 애크러배틱 액션을 펼치는 내용이에요.
우와! 너무 멋지겠다.
미치광이 같은 속도에 히스테리컬하게 열광하는 작품이에요. 대사도 많이 없고 파사드니까 영상으로 보여줄 생각이에요.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송시영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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