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미국 도시 특집 Pt3.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우리의 오해

유튜브에서 우리가 본 샌프란시스코는 마약과 범죄 주택 문제로 망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본 샌프란시스코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12.31

우리의 마음속엔 미디어가 주입한 도시의 심상이 있다. <애틀랜타>를 본 사람이라면 그 도시의 모든 흑인이 힙합 뮤지션이거나 힙합 뮤지션의 친척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8 마일>을 본 에미넴의 팬이라면 디트로이트 다운 타운에 발만 디뎌도 총을 맞을 수 있다며 두려워할 것이다. 유튜브로 샌프란시스코 랜선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 소굴이 되었다고 여길 테고, 라스베이거스가 여러 영화에서 다뤄진 방식을 생각하면, 그곳이 지난 20년 사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다음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직전, 우리가 그동안 발견한 미국의 다섯 도시의 조금 다른 실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SAN FRANCISCO
지난 10월 말,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체크인만 하고 곧바로 2km쯤 떨어진 재팬 타운으로 향했다. 진주만 습격 이후 미국 전역에서 핍박받는 일본인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동네, 오사카 시민들이 선물한 거대한 일본식 석탑이 아직도 중심가 쇼핑몰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지역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바로 그 동네다. 그러나 내가 찾은 곳은 재팬 타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식 레스토랑 ‘반상’이었다. 반상은 지난 2023년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올해 최고의 요리 23선’에 ‘물회면’으로 이름을 올리며 급격한 성장세를 탔다. 그리고 같은 해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이름을 올리고 ‘캘리포니아의 푸디들이 빨리 가봐야 할 여섯 개의 식당’ 중 한 곳으로 칭송을 받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캘리포니아로 건너와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을 시작했어요.” 반상의 임진 헤드 셰프가 말했다. “반상의 셰프가 되기 전에 쿡으로 일할 때는 정말 요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쉬는 날도 가게에 나가서 일하겠다고 하고 돈도 안 받고 출근해서 일했어요. 전 지금도 그래요. 일이 너무 재밌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같은 대학 선배인 민승현 셰프와 함께 반상을 꾸렸지만, 지금은 혼자 반상을 책임지고 있다. 그날 우리는 정말 오랜 시간 캘리포니아의 미식 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 이야기들이 아니라 그의 음식이 가진 맛 때문이었다. 우리는 종종 해외에서 한식을 만드는 과정을 ‘번역’에 비유하곤 한다. 해외에선 같은 요리를 만들더라도 재료가 가진 맛이 미묘하게 달라 최종 결과물에선 종종 큰 차이가 발생하곤 한다. 김장을 한다고 쳐보자. 미국에서 재배한 거대한 배추는 과장 좀 하면 무처럼 단단해 잘 안 절여지고, 역시나 거대한 마늘은 알싸한 맛이 좀 떨어지며, 새우젓이나 액젓은 종종 생략된다. 그렇게 만든 김치는 김치이기는 한데, 김치가 아니다. 각 단어를 최대한 같은 뜻으로 늘어놨지만, 원문의 뉘앙스와는 조금 다른 문장으로 옮겨지는 번역과 이런 점에서 비슷하다. 그런 관점에서, 임진의 번역은 무척 훌륭했다. 그의 음식들은 프레젠테이션은 다를지언정 그 맛의 본질이 같았다. ‘전통을 고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인이 느끼는 맛의 에센스를 외국 재료의 언어로 무척 훌륭하게 표현해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것이 샌프란시스코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진짜 외국 요리’가 많아요.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프렌치 식당이나 한국인이 하는 스시집이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프렌치 식당들이 있지요. 그리고 이건 인종 다양성이 풍부한 실리콘밸리라는 특수한 환경이 가진 포용성 때문일 거예요.” 임진 셰프가 말했다. ‘집시들의 도시’ ‘자유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오랜 정신은 포용성이다. 거리 어디에서나 무지개 깃발을 만날 수 있고, 도심지와 해변에서 가까운 금싸라기 땅에 미국에서 가장 어센틱한 중국인 시장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바로 옆에선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이탈리아 할아버지들이 에스프레소를 내려주는 도시.
반상의 임진 헤드 셰프의 모습.

반상의 임진 헤드 셰프의 모습.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포용성의 도시는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간다고 말을 하자 대부분의 지인은 걱정의 말을 던졌다. 그 지난한 걱정들을 요약하자면,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거리 에는 마약중독자들이 득시글거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도심에서 강도와 약탈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유튜브 영상 속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이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모습이다. 도시의 중심이라는 유니언 스퀘어의 상점들이 범죄 때문에 지금은 모두 공실이라고 말한다. 조회수에 목마른 유튜버들은 엄청난 규모의 녹지가 조성된 생태공원 프레시디오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피어 39’과 그 인근의 해안가 보드워크가 얼마나 쾌적하고 안전한지도 말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MoMA(모던 뮤지엄 오브 아트)의 야외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는 게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도. 아니, 우리가 우범지대라 일컫는 몇몇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샌프란시스코 도심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절대 말하지 않는다. “텐더로인 지역에 중독자들과 노숙자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느 대도시나 겪고 있는 문제 아닐까요? 그리고 안 위험해요. 위험하다기보다, 보고 있자면 그저 슬퍼요.” 그날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관광청의 로리 링컨이 한 말이다. 나는 다음 날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를 방문해야 했고, 픽업 장소가 텐더로인 한복판이라 개인 렌트 차량을 빌렸다. 아침 10시. 텐더로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니언 스퀘어에는 공실이 가득했고, 유니언 스퀘어를 지나 텐더로인에 더 가까워지자 길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을 했다. 몇몇 노숙자들이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것도 보였고, ‘좀비’ 상태인 환자도 한두 명쯤 먼 곳에서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보다 로리의 말대로 슬퍼졌다. 그 길을 걸어가는 경험에서 명확하게 연상된 건 종로였다. 종로와 을지로 사이, 한땐 저녁이면 술 마시는 회사원들로 가득 찼던 ‘피아노 거리’는 지금은 공실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나타나는 탑골공원의 냄새는 또 어떤가. “어느 도시에나 그런 곳이 있으니까요. 로스앤젤레스의 스키드로도 그렇고 뉴욕은 말할 것도 없지요.” 로리가 말했다. 나파 밸리에 다녀온 날 나는 미션 디스트릭트에 있는 플라워 앤 워터에서 식사를 했다. 플라워 앤 워터의 헤드 셰프 토머스 맥노튼은 ‘미션 디스트릭트’의 미식 영주다. 안국역 인근에서 런던 베이글을 운영하는 회사가 바로 근처의 아티스트 베이커리와 레이어드 카페 역시 소유하며 미식 영지를 펼쳐 나가듯, 맥노튼의 ‘플라워 앤 워터 호스피탈리티 그룹’ 역시 미션 디스트릭트 일대에 4개가 넘는 업장을 운영 중이다. “농담 좀 더하자면 저희가 이 동네를 아예 소유한 셈이죠.” 플라워 앤 워터의 어시스턴트 제너럴 매니저 야야 카레노가 말했다. 가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플라워 앤 워터에 도착하고 보니 며칠 전 ‘지금 가장 핫한 코리안 다이닝’이라는 소개를 받고 찾았던 ‘산호원’이 불과 50m 거리에 있었다. 산호원은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베누의 총괄 셰프인 황정인이 오너 셰프인 코리 리와 손을 잡고 2021년에 문을 연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으로 올해 처음으로 미쉐린 별을 달았다. “맞아요. 미션 디스트릭트는 정말 핫해요.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레스토랑이 정말 많은 이유죠.” 야야가 말했다. 플라워 앤 워터에서 카치오 에 페페, 블랙 트러플을 올린 스포르마토, 탈레조 치즈를 넣은 스파피노치로 이어지는 완벽한 파스타 코스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바로 건너편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 안에서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미호테’(Mijoté)라는 상호명을 보고 곧바로 구글 가보고 싶은 장소에 저장한 뒤 찾아보니 미션 디스트릭트에서 가장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 우리 일행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 뒤 페니 로마라는 이탤리언 캐주얼 레스토랑에서 부르고뉴 마흐사네의 피노 누아 와인을 한 병 샀다. 가게에 들여온 와인을 할인해 소매로도 판매한다는 그 레스토랑이 플라워 앤 워터 호스피탈리티 그룹의 브랜드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다. 한국에 돌아오고 한 달여 지났을 무렵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 한 유튜버가 샌프란시스코의 ‘충격적인 일상’이라며 현지인들도 벌벌 떨며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유니언 스퀘어에서 텐더로인으로 이어지는 길, 미션 디스트릭트의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영상은 결국 유튜브 광고로 이어졌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1번 부둣가에서부터 ‘프레시디오 터널 톱스’를 지나 ‘리전 오브 아너’까지 뛰어갔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2022년 골든게이트 브리지와 연결되는 골든게이트 국립공원에 새롭게 문을 연 14에이커 규모의 거대한 생태공원이다. 이곳을 지나면 지평선이 보일 듯 광활한 잔디밭 ‘크리시 필드’가 펼쳐지는데,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컥했던 그때의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유튜버가 찍은 영상과 내가 한 여행 사이 어딘가에 샌프란시스코가 있다. 그리고 그 도시는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미션 디스트릭트에 있는 파스타 레스토랑 플라워앤워터의 모습.

미션 디스트릭트에 있는 파스타 레스토랑 플라워앤워터의 모습.



3 MUST-SEE PLACES

PRESIDIO TUNNEL TOPS

골든게이트 국립공원 인근 프레시디오 터널 상부에 조성된 녹지 공원. 2022년에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연 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는 곳이다. 울타리도 없이 인근의 습지대 ‘크리시 필드 마시’로 이어지는데, 해변에 접한 길이 무척 아름답다.

LEGION OF HONOR

골든게이트 묘지가 있던 땅 위에 설립된 레지온 오브 아너는 프랑스의 명예 훈장 ‘레지옹 도뇌르’에서 따왔다. 비록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매우 정교하게 캐스트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 미술관 중앙에서 멋지게 사색하고 있다. 유럽 페인팅과 조각의 미술사적 흐름에 따라 정리된 전시품를 살피다 보면 로댕이 얼마나 중요한 작가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PIER 39
샌프란시스코라고 하면 파이어 39에 가서 앨커트래즈섬을 보고, 바다사자들의 한가로운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크랩 하우스에서 던저니스 크랩을 먹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지극히 관광객적 공식이지만, 정말 모든 것 하나하나가 가치가 있다. 미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바다사자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데는 그만한 기쁨이 따른다.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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