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 골든구스. 슬리브리스 톱 프롬아를. 팬츠 라멀마메종. 슈즈 컨버스. 벨트 세비지.
(자리에 앉으며) 네.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합니다. 오늘은 또 <에스콰이어> 촬영도 했겠다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나온 것 같고요. 뭐랄까, ‘내가 성공했구나’ 하는 그런 기분?(웃음)
없어요. 지금 메이크업도 받았고 머리도 예쁘게 해서 놀러 가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제가 싱글이거든요. 아, 이 말은 꼭 넣어주세요.
싱글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잖아요. 사람들이 잘 안 믿나 보죠?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그러게요. 왜 안 믿을까. 제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가끔 TV도 나오고 이렇게 잡지 인터뷰도 하니까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좀 화려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대부분 혼자 여행하고, 혼자 촬영하고, 혼자 편집하고, 그렇게 혼자 다 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사실 되게 외로운 직업이에요.
해외를 떠도는 게 일이 되면 국내의 연결 고리들은 점점 느슨해질 수밖에 없겠죠.
맞아요. 원래 친했던 사람들도 한번 모이자고 하면 일단 저는 빼놓고 생각하죠. ‘재일이(채코제의 본명인 박재일)는 한국에 없을 거다’를 디폴트로 생각하니까. 이게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여행과 그 여행 영상을 업로드하는 사이에 시간 텀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있으면서 여행 영상을 올려도 사람들은 제가 영상 속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3주 전에 한국에 왔는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는 발리 이야기가 올라가 있으니까 오히려 발리에 있는 사람들이 막 연락을 해요. “나도 지금 발리인데 너 지금 어디냐” “나 지금 한국” 이렇게.(웃음) 그래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정말 가까운 친구들 말고는 사람 만날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 채코제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니까 실제 채코제의 주변에도 사람이 많을 거라 지레짐작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죠. 스스로 생각하기에 채코제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근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궁금해요. 채코제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매력이 뭔지. 제가 여행하는 걸 69만 명이 봐주고 계신 거잖아요. 저는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노력도 하지만, 이유를 묻는다면 도리어 제가 여쭈고 싶어요. ‘왜 채코제를 좋아해주시나요?’ 다른 사람의 여행을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후원해주고, 사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못 할 것 같거든요.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아무튼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영상을 계속 만들어서 보여드리고, 최대한 구독자님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실제로 함께 있는 것처럼 여행을 하는 것밖에 없으니 그렇게 해온 거죠.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죠. 저한테 물으신 거라면, 저는 채코제가 어떤 종류의 건강함을 가진 사람 같아서 좋아요. 다들 스스로가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믿지만, 해외여행 같은 상황에서는 시니컬하거나 예민해지거나 다소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채코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반대로 ‘나는 좋은 사람이야’ 하는 부담스러운 표방도 느껴지지 않고요.
아이고.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제 생각에도 제가 사람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하고, 안타까운 것들 보면 잘 못 지나치고, 그런 면을 좋아해주시는 것 아닐까 싶긴 한데요. 모르겠어요. 생각하다 보면 그냥 감사하다는 마음만 먼저 생겨요.
이번에 다시 보니까 채널에 달린 바이오(소개)도 굉장히 건실한 편이더라고요.
‘여행을 좋아하는, 운동도 좋아하는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행복하고 정직한 삶을 지향한다’고 썼죠. 그건 제가 처음 채널을 만들 때 스스로에게 한 일종의 약속에서 비롯된 말이었어요. ‘이 채널을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와이프랑 애들이랑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들자.’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게 저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이제 5년 차 유튜버인데, 어떤 여행 영상을 올려야 조회수가 잘 나오는지는 대충 감이 있을 거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창피한 짓은 하기 싫은 거죠. 사실 저도 조회수 때문에 저답지 않은 뭔가를 해볼까 싶을 때도 있거든요. 사람이니까. 그런데 방금 말한 그 기준점 덕분에 지금껏 유혹들을 잘 피해왔던 것 같아요. 기준이 ‘스스로에게 창피한 것’이었다면 가끔 자기합리화도 하고 좀 흔들릴 수도 있을 텐데, ‘나중에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보기에 창피한 것’이 되면 그건 좀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많은 구독자가 채코제가 해외에서 마주친 여성들과 주고받는 호감이나 성적 긴장감 같은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작 채코제는 그 부분에서 조심스러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것도 동일한 이유일까요?
아뇨. 그건 뭐,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미래의 아내를 만나기 전의 일이니까 상관없잖아요.(웃음) 남녀가 만나서 호감 생기면 손잡고 스킨십 할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건 낭만적인 일이죠. 저는 누구보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에요. 여행지의 노천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있는데 지나가던 누군가와 눈빛 교환이 일어나고, 연락처 주고받고… 저는 그런 부분에 열려 있는 사람인데 그냥 지금껏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에요. 정말 지난 5년 통틀어 그런 일이 거의 없었어요. 일반적인 관광지가 아니라 이상한 곳만 찾아다녀서 그런가….(웃음)
일단은 스파크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순간이 없었다는 얘기군요.
맞아요. 뭔가가 찾아오면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어요. 그런데 부자연스럽게 뭔가를 만들어가는 건 저한테 안 맞는 거죠.
방금 얘기한 것처럼 그간 생소하고 관광 인프라가 많이 개발되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녔어요. 익숙한 곳도 좀 다르게 여행하기도 했고요. 오토바이로 로드 트립을 한다거나, 캠핑카를 빌려 장기 여행을 한다거나.
채널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국은 제가 원래 그런 여행을 좋아해서 한 거예요. 그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여행 유튜버로서 제 장점을 하나 말하라면 저는 그런 험한 여행, 모험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지에 녹아 들어가고, 도미토리에서 자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끼리 모여 어디 놀러 가고…. 만약 제가 실제로는 5성급 호텔, 1등석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지난 5년간 정말 괴로웠겠죠.
혼자 캠핑카로 미국 로드 트립을 하던 때의 영상. 캠핑카가 고장 나고, 다치고, 길을 잘못 들고, 계획과 어긋나는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긍정적인 측면과 유쾌함을 찾아내는 채코제의 인간적 매력을 엿볼 수 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이발소에서 BTS 사진을 보여주고 이발을 하는 영상. 세계 각지에서의 이발 영상은 채코제의 인기 콘텐츠 중 하나로,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이발 영상도 레전드 에피소드로 꼽힌다.
인도 라다크의 누브라벨리에서 판공 호수까지 바이크로 여행하는 영상. 바이크 뒷바퀴가 펑크 나고 갑작스럽게 눈보라가 치는 바람에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채코제 본인은 이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꼽는다.
최근에는 현지의 특정 분야에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가진 분들을 만나 파헤쳐보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건 콘텐츠에 변화를 좀 주려고 시도해본 거였어요. 여행 유튜버가 너무 많이 생겼으니 차별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저는 변화를 주는 건 일단 뭐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기도 해서 시도했는데, 뭐 잘 되지는 않더라고요.
네. 구독자님들이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영상이 사실 다큐멘터리랑 경계가 좀 모호하잖아요. 여행 유튜브는 여행 유튜브만의 B급 감성 같은 게 있는데, 애매하게 섞이는 느낌이 있는 거죠. 아니면 단순히 제 인터뷰 스킬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요. 보완해서 다시 시도해보고 싶긴 해요. 어제 캡틴따거(여행 유튜버)랑 술을 마셨는데, 그 친구가 최근에 홍콩의 ‘닭장집’들을 심도 있게 다룬 영상이 좋았거든요. 그 친구는 중국어를 잘하니까 깊이 있게 들어가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했겠지만요.
채코제는 태국어를 잘하잖아요. (채코제는 한동안 태국에 거주한 적이 있다.)
할 줄은 알죠. 사실 그냥 일상 대화 정도인데 잘하는 척하는 거예요.(웃음)
태국 곳곳을 심도 깊게 다뤄봐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재미있겠죠. 요즘은 그렇게 한 곳을 깊게 파는 채널이 잘되기도 하고, 태국도 생각보다 넓어서 한국인이 많이 가는 방콕, 코사무이, 치앙마이 외에도 시골에 좋은 곳들이 정말 많거든요. 콘텐츠 많이 나올 거예요. 제가 가면 정말 잘할 것 같고요. 그런데 지금 그걸 하면 제가 재미없겠죠. 당장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태국에서는 이미 한동안 살아봤고, 세상에는 아직 제가 못 가본 곳이 더 많잖아요. 살다 보니까 저는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뭐든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잘 풀렸어요.
채코제가 다루는 여행지나 여행 방식도 매력적이지만, 저는 편집도 채코제 채널의 매력 중 하나라고 느꼈어요. 매끄럽기보다는 엉뚱한 곳에서 끊어지고 또 엉뚱한 곳에 집중하기도 하는데, 다 보고 나면 그런 부분까지 ‘채코제’라는 캐릭터로 남는 부분이 있달까요.
(웃음) 감사합니다. 맞는 얘기 같아요. 저는 나름 열심히 한 건데, 저도 모르게 제 특유의 캐릭터가 깃들어 있겠죠. 사실 여행하면서 영상을 직접 편집까지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 번은 편집자를 구해 편집 파트를 맡기려 한 적이 있는데, 안 되더라고요. (제가 해오던 영상들과) 안 맞아요. 유튜브 영상은 콘텐츠가 진짜 좋거나, 그게 아니라면 출연자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조회수가 안 나올 것 같은 영상도 본인 마음에 들면 그냥 올린다는 점도 좋아 보였어요. 인도 마날리에서 레 가는 길의 풍경만 편집한 영상에도 ‘제가 하고 싶어서 만든 영상이라 좀 지루할 수 있다’는 말을 써놓았죠.
이게 일로서 하는 거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기록의 의미가 있거든요. 특히 채널 초창기 3년 정도는 조회수에 압박감을 갖지 않고 좀 자유롭게 했던 것 같아요. 옛날에 올린 영상 중에 이상한 거 진짜 많았어요. 뭐 ‘거울 10분 쳐다보기’ 이런 것도 올린 적이 있고.
하하하. 그건 뭐예요? 진짜 10분 동안 거울 보는 거예요?
맞아요. 그냥 영상 켜놓고 아무 말 없이 거울만 계속 보는 거죠. 미친 사람처럼. 저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멕시코였나 쿠바에 있었고 코로나19가 막 터졌으니까,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겠죠. 혼자 불교 사성제 외우고 그럴 때였으니까요. 나름은 의미가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하늘 볼 시간도 없고 자신을 마주할 시간도 별로 없는 현대사회에 대한 어떤… 성찰이랄까?(웃음) 그런데 혹평이 많이 달렸죠. 유튜브를 그딴 식으로 하고 있냐고. 그래서 지금은 내렸는데, 혹시 궁금하시면 보내드릴게요.
팬데믹 때 안 힘든 사람이 있었겠냐마는, 여행업계에 얽혀 있는 분들은 특히나 힘들었죠.
진짜 힘들었어요. 제가 인도랑 남아시아 쪽 돌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수중에 돈이 700만원 정도 있었거든요. 구독자는 한 5만 정도 됐는데, 그러니까 딱 여행에서 쓰는 만큼 유튜브 채널로 돈을 벌 수 있더라고요. 여행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 썼다면 200만원이 들어왔던 거예요. 그럼 700만원으로도 어떻게든 되겠다 해서 쿠바로 갔는데, 거기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죠. 쿠바 국경이 닫힌다고 해서 멕시코로 넘어가고, 거기서도 ‘곧 나아지겠지’ 하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여름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왔고요. 그때부터 전 재산 200만원으로 서울에서 옥탑방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막막했겠네요. 현재 상황도 상황이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다는 게.
그랬죠. 그래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게, 바닥을 치고 가장 절실할 때 뭔가가 ‘반짝’하기도 하잖아요. 결국 궁지에 몰려서 멕시코에서 인터넷으로 서울에 살 집을 알아보는데, 노량진 옥탑방을 보니까 그걸 수리하고 생활하는 걸 콘텐츠로 만들면 되겠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제가 그런 걸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거든요. 실제로도 많은 분이 그 ‘옥탑방 수리남’ 콘텐츠를 되게 좋아해주셨어요. 그때 구독자도 15만 정도까지 늘었고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MBC <피의 게임>)에 섭외됐던 것도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이미지 때문에 들어온 걸로 알고 있고요. 방송에서 얼굴을 알리니까 또 구독자가 더 늘었고. 궁지에 몰리니까 사람이 그게 되더라고요. 힘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계속 고민하면 또 기회가 와요.
요르단 로드 트립 영상. 채코제는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 의상을 입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데, 덕분에 요르단에서는 택시 기사로 오인한 여행객이 렌터카 뒷자석에 타기도 했다. (채코제는 그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옥탑방 앞에 노천탕을 설치하는 영상. 옥탑방 생활을 다루는 영상들은 팬데믹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콘텐츠지만, 채코제는 결국 이때 자신의 채널이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회자한다.
문제의 ‘10분 동안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았다’ 영상.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기 격리 중이던 남미의 숙소 화장실에서 촬영한 것으로, 구독자들의 농담 섞인 질타에 영상은 현재 ‘일부 공개’로 돌려진 상태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된 거군요. 그럼 지금은 채코제에게 어떤 시기일까요?
제가 올해로 유튜버 5년 차인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 3년 정도는 제가 봐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12개월 중에 10개월은 해외에서 보냈거든요. 그런데 4년 차, 5년차 되니까 이제 더 이상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고요. 짬밥 좀 먹었다고 편한 게 좋아진 건지.
사실 저는 그렇게 자주, 오래 여행하면서 한결같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여행이라는 게 적절한 템포가 없으면 나중에는 뭘 보고 뭘 경험해도 무감각해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현실감도 떨어지고, 그냥 ‘저건 전에 봤던 뭔가랑 비슷하네’ 싶어지고.
맞아요, 맞아요. 눈앞에서 피라미드를 봤다, 에펠탑을 봤다, 그러면 ‘와’가 나와야 하는데 계속 여행을 하다 보면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또 진심이 아닌데 감격한 척하는 걸 못하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모르는 게, 그냥 카메라를 들고 여행하는 거랑 여행 유튜브를 만드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거든요. 여행 유튜브를 계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그냥 일이 돼요. 그래서 저도 최근 2년은 사실 여행이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은데 억지로 끌고 온 부분이 있고, 그만큼 비교적 상업적인 성격의 유튜브로 운영한 부분이 있죠. 제 나름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저한테는 유튜브로서 채코제의 역할도 있지만 또 누군가의 아들 역할도 있고, 친구 역할도 있으니까요. 제안이 들어온 것 중에서도 제 채널의 결에 어긋나는 건 하지 않겠다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제 옛날 모습을 좋아해주셨던 구독자들은 광고 같은 요소들에 피로감을 많이 느꼈을 거예요.
원동력이 달라진 거라고 할 수도 있겠죠. 여행에 대한 열망은 이제 예전만큼 강력한 힘이 될 수 없으니까, 어머니와의 약속을 원동력으로 삼았다든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성장 과정에서 형, 여동생,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채코제는 어머니께 언젠가 아파트를 사드리겠다고 약속했고, 얼마 전 그 약속을 지켰다.) 정말 엄청 좋았죠.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집을 사드리고 나니까 무기력증 같은 것도 함께 오더라고요. ‘이제 뭘 해야 하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올해를 안식년으로 삼기로 했죠. 최근 제주도에 1년 동안 살 집을 구했어요. 제 인생 첫 차도 샀고요. 250만원짜리 중고 갤로퍼로. 거기서 머물며 글도 좀 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정리해보려고 해요.
그럼 여행 유튜브 활동은 잠깐 멈추는 걸까요?
아뇨. 여행 유튜버가 좋은 점이, 범주가 굉장히 넓다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 노량진에 사는데 성수동 가서 밥 먹는 걸 찍어도 ‘성수동 여행 브이로그’가 되는 거죠. 제주 1년살이도 저한테는 안식년의 의미가 있지만 어쨌든 여행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게 지내다가도 제가 가고 싶은 곳이 생기거나 매력적인 협업 제안이 들어오면 또 해외로 나갈 수도 있는 거고요. 어쨌든 지금처럼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는데 의무감 같은 걸 품고 해외로 나가지는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군요. 이런 질문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 두려움은 없어요? 일단 1년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채널의 큰 기조가 바뀌는 거잖아요.
그냥 제 마음이 향하는 걸 따르는 거라서 가타부타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막연한 자신감은 있어요. 해외를 계속 돌아다닌다고 해서 제가 얼마나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 있다고 해서 크게 안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거죠. ‘옥탑방 수리남’ 시절을 좋아해주셨던 것처럼 제주도로 간 채코제의 생활도 좋아해주시지 않을까요?
해외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의 의미로 채코제를 보는 분들도 있겠지만 특유의 인간적 매력 때문에 보는 분도 많을 테니까.
두려움이라는 게 어떤 뜻인지는 알아요. 친구들도 다들 그러거든요. 한창 잘될 때 좀 더 유지하고 노를 젓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저는 그래도 잘될 때 떠나야 보시는 분들도 제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저 친구가 그래도 자기가 하는 일에 소신이 있네’ 하고요. 만약 나중에 조회수도 빠지고 하향세일 때 ‘다 접고 제주도 갑니다’ 하고 발표한다고 생각해봐요. 멋이 없잖아요.(웃음)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뭔가를 꾸며내지 않고 그냥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까 좋아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