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예술품 도난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

명작을 훔치고 싶다면 공부부터 해야 한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6.11.03

작년 10월, 루브르 박물관의 한 갤러리에 건설 노동자로 위장한 도둑들이 침입해 8800만 유로 상당의 보석을 훔쳐 가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번 세기 들어 발생한 주요 미술품 절도 사건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일주일 후에도 시작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12월, 총으로 무장한 강도들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 르누아르의 작품 두 점과 렘브란트의 자화상 한 점을 훔쳤다. 그들은 고속 모터보트를 타고 도주했다. 2003년 8월에는 스코틀랜드 드럼란리그 성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실타래의 성모’가 도난당했다. 보도에 따르면, 범인들은 그림을 들고 창문을 통해 나오는 과정에서 한 구경꾼에게 “걱정 마시라, 우리는 경찰이다”라며 “이건 그냥 연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7년 12월, 상파울루의 한 미술관에서 5000만 달러 상당인 피카소의 ‘수잔느 블로흐의 초상’이 도난당했다. 2008년 2월, 취리히에서 에밀 뷔를레 컬렉션에 포함된 세잔, 드가, 고흐, 모네의 그림 1억6400만 달러 상당이 도난당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굵직한 사건만 먼저 나열한 것이다.

디지털카메라, 안면 인식, 정교한 동선 추적, 공항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영상 분석 등 보안 기술이 발전했으니 그만큼 박물관과 미술관 도난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처럼 보인다. 2023년 8월, 영국박물관의 선임 큐레이터가 수십 년에 걸쳐 보석과 로마 시대 카메오 수천 점을 훔친 혐의로 해고되었다. 박물관 관장의 사임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한 수집가가 이베이에서 일부 희귀품들을 발견한 후에야 세상에 드러났다. 2025년 9월,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지질학 전시관의 진열장에 있던 금 원석 6kg이 도난당했다. 절도 용의자 중 한 명이 2주 후 바르셀로나에서 용해한 금 1kg을 소지한 상태로 체포되었다.

일요일 아침 박물관 문이 열리고 30분 후, 해가 훤하게 뜬 와중에 벌어진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 이후 전 세계 미술 기관들은 그와 유사한 끔찍하고 대담한 사건이 자신들에게는 결코 닥치지 않도록 보안 조치를 강화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중에 사건이 또 발생했다. 2025년 12월, 무장한 절도범들이 상파울루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마티스의 판화 여덟 점을 비롯해 몇몇 작품들을 훔친 것이다. 절도범들은 판화들을 캔버스 가방에 넣은 후 정문을 통해 건물을 빠져나와 공회전 중인 차량까지 보도를 따라 걸어갔다. 경찰은 몇 달 후 한 용의자의 휴대폰에서 그가 범죄 조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는데,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 “내 진짜 전문 분야는 책이야. 아주 가치 있고, 아주 희귀한 책들. 내가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지. 이제 미술 시장에 뛰어들려고 해.”

2026년 3월 말,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 인근의 한 재단에서 복면을 쓴 절도범 네 명이 르누아르, 세잔, 마티스의 그림 800만 파운드 상당을 훔쳤다. 경찰이 ‘매끄러웠다’고 설명한 이 절도 작전은 마치는 데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도난 사건은 일주일 동안 언론에 비밀로 부쳐졌다. 작품 회수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또 기관이 망신을 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철저하게 감시가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걸까?

이러한 도난 사건은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사건들에서 공통적인 속성과 패턴, 즉 절도의 매뉴얼을 읽어낼 수 있다. 만약 미술관에서 어떤 귀중한 예술 작품을 슬쩍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 있다면(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래 내용을 알아두는 게 유용할 것이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이미 도난당한 적 있다


수많은 미술품 절도 사건들이 ‘세기의 절도’라 불리며,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세대에서 목격한 사건이 전례 없는 역대급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기의 절도’라는 표현에 걸맞은 사건은 ‘모나리자’ 절도 사건뿐이다.

1911년 8월 21일, 빈첸조 페루자라는 주택 도장업자가 두 시간 늦게 직장에 출근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 그림을 자신의 흰 작업복 안에 숨긴 채 빼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애국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이 이 그림을 가져갔다고 잘못 알고 있었고, 자신은 이탈리아를 위해 그 그림을 다시 훔쳐온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림을 복귀시켜 얻을 보상으로 가족의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훔쳐오는 과정은 쉬웠다. 페루자는 이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숙련공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 걸작을 유리로 보호하는 작업에도 관여했을 것이다. 페루자는 훔친 그림을 2년 동안 집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벽난로 선반 위에 모나리자가 그려진 엽서를 올려두었다. 그림은 사라졌다는 사실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림이 걸려 있을 때 그 그림을 본 관람객보다 그림이 걸려 있던 빈 벽을 바라본 관람객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페루자는 선고받은 1년 형에서 7개월을 복역한 후 원래 하던 장식공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 다만, 기대했던 것처럼 국민적인 영웅 대접은 받지 못했다.

페루자를 체포하기 전, 경찰의 관심은 잠시 다른 용의자에 쏠렸다. 1904년에 파리에 정착한 29세의 파블로 피카소였다. 피카소는 몇 해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던 작은 이베리아 조각상 두 점을 손에 넣은 적이 있었다. 피카소의 혁신적인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 속 인물들의 귀에 영감을 준 귀를 가진 조각상들이었다. 피카소는 도난 사건 연루로 체포되어 감옥으로 호송되는 동안 ‘격렬하게’ 떨었다고 한다. 피카소는 조각상이나 ‘모나리자’ 도난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했고, 경고만 받고 풀려났다.



모든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다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하루이틀이 지난 후 인터뷰하는 미술관 관장들은 언제나 흥분한 언론으로부터 도난당한 작품들의 가치가 얼마인지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관장들은 언제나 매우 높은 숫자를 언급한 후, 박물관 혹은 도시 혹은 예술계 혹은 우리 사회가 입은 손실은 그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작품들의 진정한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말이다. 이에 대한 가장 교양 있는 대답은 아마도 “그렇다면 더 잘 관리했어야죠”일 것이다.


이토록 현대적이고 철저하게 감시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여전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한 번 도난당한 그림은 두 번(혹은 그 이상)도 도난당할 수 있다


1994년 2월, 오슬로 동계올림픽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있던 때 두 남자가 노르웨이의 국립박물관 외벽을 사다리로 올랐다. 남자들은 창문을 깨고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의 여러 버전 중 하나를 훔쳤다. 절도범들은 그림을 벽에 고정하고 있던 와이어를 싹둑 잘랐다. 와이어에는 경보 장치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절도범들은 “허술한 보안 감사합니다”라는 조롱의 엽서를 남겼다. 10년 후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서 ‘절규’의 또 다른 버전이 개관 시간 중 도난당했다. 무장한 남자 두 명이 그림을 벽에서 떼어냈고, 그림을 훔치는 게 얼마나 쉬운지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자 나가는 길에 그림 한 점을 더 가져갔다.

고흐의 작품 두 점도 두 차례 도난당했다. 수채화인 ‘초원 위의 브르타뉴 여인들’은 1975년 2월 밀라노에서 도난당했다가 두 달 후 회수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주 후 다시 도난당했다. 두 번째로 도난당한 후에는 작품을 찾아내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고흐의 ‘양귀비꽃’은 1977년 카이로의 한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가 10년 후 쿠웨이트에서 회수되었다. 그리고 2010년 다시 도난당했는데, 이때 캔버스가 커터 칼로 프레임에서 분리되었다. 2010년 도난으로 보안상 허점들이 드러나며, 박물관은 10년 이상 문을 닫았다. 당시 모든 도난 방지 경보가 꺼져 있었고, 보안 카메라 43개 중에서는 단 7개만 작동 중이었다. 박물관은 2021년 재개관했으나, ‘양귀비꽃’은 여전히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2020년 8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위트레흐트 인근의 한 박물관에서 프란스 할스의 ‘맥주 잔을 든 두 명의 웃는 소년’이 도난당했다. 어쩌면 이 작품을 전시하고 보호하는 직원들보다 도둑들이 이 작품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작품은 이전에도 두 차례 도난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1988년이었고, 두 번째는 2011년이었다. 첫 번째 도난 당시에는 큰돈을 지불한 후 되찾았다. 하지만 미술품 도둑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는 단연 렘브란트다. ‘야콥 데 헤인의 초상’은 네 차례나 도난당해, 이제는 ‘테이크 아웃 렘브란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렘브란트는 전체 도난 작품 수가 피카소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도난당한 작품들의 보안이 좀 더 허술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도범들이 이 작가들의 이름만으로도 더 많은 돈을 손에 넣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판매할 수는 없다


2010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브라크, 모딜리아니, 마티스의 그림을 훔친 절도범은 재판을 받던 중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는 재판정에서 배심원들을 바라보며 누구든 유사한 절도를 생각하고 있다면 철저하게 시행할 수 있도록 ‘자원을 확보하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골치가 너무 아플 뿐이므로 단념하라”고 조언했다.

유명한 작품들은 도난 후 판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국제 도난 미술품 등록부에서 즉시 딜러들과 경매사에 경보를 발령하기 때문이다. 소수 권력층 부호들조차도 도난당한 사실이 알려진 작품들을 손에 넣었을 때 발생할 일을 극도로 경계한다.

20년 이상 미술품 범죄 사건을 담당해온 전직 FBI 특수요원 제프 켈리는 “이 분야는 재범이 매우 적어요”라고 말했다. “한 번 절도를 저지른 사람은 아마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미술품을 훔치는 건 쉽게 해내지만, 훔친 다음 현금화하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현금화는 1990년에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벼룩시장이나 골동품 매장에 나온 그림을 구글 이미지 검색하면 그게 도난품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든 휴대폰만 있으면 작품의 출처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이죠.”

한 가지 예외는 보석류다. 루브르 박물관 절도범들도 보석을 노렸고, 2019년 드레스덴 성의 그린 볼트 박물관에서 발생한 1억 유로 규모 절도 사건의 표적도 보석이었다. 보석류는 적어도 조각을 내 다시 세공한 후 재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그 가치는 원래 상태일 때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대부분의 작품은 결국 회수된다


앞서 언급된 사건 중 2004년 도난당한 뭉크의 ‘절규’는 도난 2년 후 발견되었다. 두 번 도난당한 고흐의 작품들은 두 번 다 회수되었다. 상파울루에서 도난당한 피카소의 작품은 3주 후 발견되었다. 2008년 취리히에서 도난당한 세잔의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은 2012년 세르비아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1990년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작품은 아직까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사베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은 화려하게 장식된 빈 프레임들을 슬픔과 희망의 상징으로 삼아 여전히 전시해두고 있다. 1990년 3월 18일 이른 시간, 경찰관 두 명이 침입 신고를 받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미술관에 출동했다. 그러나 이들이 떠난 후, 야간 경비원들은 제압되어 있었으며, 미술관에서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마네, 드가 등의 그림 열세 점이 사라져 있었다.

그들은 진짜 경찰관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박물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다. 경찰은 절도범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전부 삭제한 것을 보고 조직범죄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술 전문가는 아니었는지 티치아노,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무시하고 덜 유명한 작품들을 택했다.

제프 켈리는 최근 FBI에서 20년 이상 수사한 경험을 담은 책 <열세 명의 완벽한 도주자들(Thirteen Perfect Fugitives)>을 출간했다. 그는 절도 사건이 발생한 지 36년이 지난 지금도 수사에 진전이 없는 점을 답답해하지만, 그러면서도 작품들이 언젠가 발견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는 “다락방을 확인해보세요”라고 농담 삼아 제안한다. “침대 아래도 살펴보시고요.” 제프 켈리는 당시 절도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이제 모두 사망했을 것이라고, 또 그중 몇몇은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족에게 지식을 전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이제 각각의 예술 작품들을 도주 중인 사람으로 여기며 대한다.



대부분의 절도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와 다르다


스티브 맥퀸 주연의 1968년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1999년 영화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은 모든 것을 가졌으나 너무나 갈망하는 모네의 아름다운 베네치아 석양 그림은 갖지 못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트로이 목마 전략과 서류 가방 몇 개를 활용한 작전으로 보기 좋게 그림을 훔친다. 그런 후 자신의 은신처에서 훔쳐온 그림을 보며 싱긋 웃는다. 좋은 영화지만, 현실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사관들은 이런 현상을 ‘닥터 노 신화’라고 부른다. ‘닥터 노 신화’는 초부유층이 그러한 은신처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가장 멋지고 신사적인 스타일로 직접 절도를 저지른다는 잘못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명칭은 최초의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살인번호>의 한 장면에서 유래했다. 제임스 본드가 자신의 숙적인 닥터 노의 은신처에서 고야의 ‘웰링턴 공작의 초상’을 보고 깜짝 놀라 다시 쳐다보는 장면인데, 이는 실제로 영화 촬영 몇 달 전 이 작품이 내셔널 갤러리에서 도난당한 사실을 이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켈리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절도 사건의 80%는 내부자들의 소행이며, 직원이나 직원과 연줄이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범죄는 기관 쪽에서 평판을 지키기 위해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좀 더 화려한 절도 사건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보통의 범죄 조직 소속인 개인, 혹은 범죄 조직이 고용한 개인이 범인이다.



어떤 절도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2005년, 긴 코트에 두꺼운 스카프 차림을 하고 가짜 수염을 붙인 한 남자가 영국박물관의 벽에 작은 고대 유물을 부착한 후 달아나며 자신의 수많은 팬에게 그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 남자는 뱅크시였다. 그가 남긴 물품은 가죽에 창이 꽂힌 버펄로와 쇼핑 카트를 밀고 있는 선사시대 생물의 그림이 그려진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이 작품 ‘페컴 록(Peckham Rock)’은 절도를 반대로 행한 작품이었다. 작품에는 원형의 글자체를 정확하게 재현한 꼬리표도 붙어 있었다. “원시 미술이 훌륭하게 보존된 예로, 무기력증의 시대 후기에 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유형의 작품 대부분은 아직까지 남아 있지 않다. 대다수가 벽 위를 칠하는 행위의 예술적 이점과 역사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열성적인 지역 공무원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뱅크시는 자신의 설치가 성공했음을 알리며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은 들어가는 물건들보다 나가는 물건들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게 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죠.” 그의 설치 작품에 그려진 이미지가 암시하듯, 어쩌면 미술품 절도는 그저 고대에 먹잇감을 찾아다니던 행위를 요즘 시대에 맞게 변형해 재현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현대 런던에서 수렵 채집의 원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6월, 영국박물관에 다시 장난을 친 사람이 있었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원에 다니는 브라질 출신 개념미술가 일레 사르투지는 화폐가 전시된 위층의 68번 전시실에 들어가 체험 데스크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자원봉사자가 관람객들에게 몇 가지 물품을 직접 들고 살펴보도록 권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17세기 영국 내전 당시 사용됐던 다이아몬드 형태의 동전이었다. 사르투지는 이전에 방문해 몇 차례 살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동전에 대해 잘 알았다. 상당히 비슷하게 생긴 복제품을 주문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사르투지의 계획은 단순했다. 원본 동전을 3D 복제품으로 바꿔치기한 후, 전시실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 원본 동전을 입구 근처에 있는 아크릴 기부함에 넣는 것이었다. 그는 이 과정을 몰래 촬영해서 자신의 예술전문석사 졸업 논문의 일부로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한 자원봉사자가 의심을 품어, 사르투지와 친구들이 프로젝트를 도중에 포기한 것이었다.

그들은 다음 날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사르투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수염을 깎고, 다른 체험 데스크 시연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르투지가 만든 9분짜리 영상은 그가 원본 동전을 가짜로 바꾼 후 다시 기부하는 모습을 담았다. 사르투지는 이것이 결코 절도가 아니며, 일시적인 이동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그가 이후 연 전시회 중 하나에 전시된 서신에 따르면, 영국박물관 법무팀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AI가 우리의 걸작들을 구해줄지도 모른다


전시품들을 최대한 공개적이고 접근성 높게 전시하고 싶어 하는 박물관 관장과, 모든 것을 미국의 금 보유고인 녹스 기지처럼 모든 것을 잠가버리고 싶은 박물관 보안 책임자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갈등이 벌어진다. AI가 그 타협점이 될지도 모른다.

제프 켈리는 이렇게 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박물관에는 경비원들이 카메라 100대의 화면을 지켜보는 관제실이 있었죠. 그곳에 경비원들이 앉아 무언가 놓치는 일이 없도록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모든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요. 하지만 이제 훨씬 저렴한 AI 기능 탑재 카메라들이 있어서 일반 관람객과 범죄 의도를 가진 사람의 차이를 구분해 냅니다. ‘지난주에 왔던 빨간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또 왔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창문을 보는구나’ 하면서요.”

도난은 일반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사실 대부분의 미술 도난 사건은 기관이 아니라 개인 주택에서 발생한다. 현재 보안 컨설턴트로 일하는 제프 켈리는 부유한 사람들이 롤렉스 시계를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과 자신이 호크니 작품을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 사이의 괴리에 어리둥절함을 느낀다. “10만 달러짜리 시계를 그냥 책상 위에 올려두지는 않을 거잖아죠. 금고에 보관하겠죠. 하지만 100만 달러짜리 작품은 그냥 벽난로 선반 위 고리에 걸어둡니다. 집에 설치한 일반 경보 시스템만 켜두고, 집에 오면 그 시스템을 해제하고요. 그리고 다시 외출할 때 경보를 다시 설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게다가 수리공이나 청소부까지 하루 종일 집을 드나들죠.”



영원한 관계


아직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일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왜 이러한 귀중한 작품들은 원래 있던 벽에, 또 보관함에 그대로 남아 있지 못할까? 그럴듯하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한 가지 가설은, 절도범들이 미술관의 소장품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만큼이나 미술관들도 도둑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 즉 미술관과 절도범들이 강력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설이다. 미술품 보험 업계는 물론, 범죄 조직, 미디어, 할리우드까지 이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조직에 맞서는 개인이라는 점, 짜릿한 추격전이 벌어진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마음 한 편에서 이 범죄자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러한 범죄로 손해를 본다. 미술품 절도는 시각적 역사에 틈을 만들고, 예술이 주는 소중한 즐거움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AI가 급속하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중 앞에 공개된 물리적인 작품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절도에 환호를 보낼 것인가, 혹은 이를 비난할 것인가? 두 가지 마음을 다 갖는다면 잘못인 걸까? →

Credit

  • EDITOR Simon Garfield
  • ILLUSTRATOR Joanne Joo
  • TRANSLATOR 박수진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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