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휴양지에 종일 누워있는 휴가 말고, 며칠동안 아름다운 산을 뛰어넘는 휴가

햇살 쏟아지는 산등성이, 녹은 빙하가 만든 연못, 안개 낀 숲. 스위스 베르비에의 산악 마을 위에서 알프스의 공기 속을 가르며 보낸 환상적인 휴가.

프로필 by 오성윤 2026.10.19
「

러너들의 천국, 베르비에

」

‘토블론’ 초콜릿에 그려진 마터호른, 수정처럼 맑은 공기, 다리가 후들거리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완벽하게 관리된 트레일까지. 스위스 알프스는 이 모든 것을 갖춘 곳이다. 바뉴(Bagnes) 계곡 위쪽 발레(Valais)주에 자리한 베르비에(Verbier)는 가파르고 웅장한 지형 덕에 겨울이면 상급 스키어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해발 3330m의 최고도 지점인 몽 포르(Mont Fort)에서는 몽블랑(Mont Blanc)과 마터호른의 숨이 멎을 듯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여름이면 알프스의 초원이 마치 이불처럼 대지를 덮고 있던 눈을 뚫고 돋아나와 생기를 뿜어낸다. 야생화가 피고, 나비들이 날아다니며, 마멋들이 땅을 파고 들어가고 검독수리들이 급강하하는 광경이 눈에 띈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이곳의 토착 러너들, 샤모아 산양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 동안 스키어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이곳의 경사 가파른 산비탈은 여름에는 두 발로 모험에 나서는 야심 찬 트레일 러너들의 놀이터가 된다. 발레 주정부는 500km에 달하는 베르비에의 유서 깊고 귀한 트레일(trail)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코스들을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지역 주도로 개발되어 하이킹 코스 겸 러닝 코스로 이용되는 총 21개의 트레일은 매해 봄,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표지판과 함께 완벽한 상태로 복구된다.

여름철에도 스키 리프트 9개가 운영되어 고지대로의 이동이 용이하다. 리프트 덕분에 러너들은 언제든 산비탈을 탐험할 수 있고, 다양한 러닝 코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2457m 고도에 위치한 숙소 카반 몽 포르(Cabane Mont Fort)로 향하는 길도 그중 하나다. 카반 몽 포르는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벙크베드 객실과 공동 식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키를 타기 위해 겨울에 베르비에를 찾은 방문객들은 카반 몽 포르를 비롯해 산비탈에 자리한 산장들을 휴식처 삼아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러다 기온이 오르고 눈이 녹으면, 이 산장들은 트레일 러너들의 출발점과 도착점으로 활용된다. 산장들 바로 문 앞까지 트레일들이 뻗어 있는 데다 산장들이 러너들을 반가이 맞이하기 때문이다.

트레일 러너들에게는 이들 산장의 존재가 고마울 뿐이다. 뻥 뚫린 하늘 아래에서 상어 이빨처럼 뾰족한 봉우리와 좁디좁은 ‘싱글 트랙 트레일(차가 못 다니는 길)’을 며칠간 달릴 힘을 충전하기 위해서는 휴식과 식사가 필수다. 러닝 애호가들은 어쨌든 베르비에의 험준한 지형이 가진 원초적인 매력에 늘 이끌려오게 되니까 말이다.

스포츠가 목적인 방문객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베르비에의 수많은 호텔은 이른 아침부터 트레일 러닝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말을 이용하는 짧은 일정으로도 베르비에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제네바에서 스위스 연방철도(SBB)를 타면 몇 시간 만에 이곳에 도착한다. 마음만 먹으면 48시간 안에 알프스 초원, 숲, 눈 녹은 호수, 바위 봉우리까지 전부 볼 수 있다.


MATT RAY

모험 스포츠 저널리스트이자 트레일 러너다. 20년 동안 험준한 고지대 트레일을 찾아다니며 그 기록을 자신의 블로그 adventurefella.com에 남기고 있다.



01 - 환경에 적응하기


맷의 첫날 일정은 새로운 고도에 적응하고, 구릉 지형을 오가며 앞으로 무수히 지나게 될 오르막과 내리막을 대비해 대퇴사두근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

맷의 첫날 일정은 새로운 고도에 적응하고, 구릉 지형을 오가며 앞으로 무수히 지나게 될 오르막과 내리막을 대비해 대퇴사두근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

나는 트레일 러닝을 나가면 나만의 ‘10분 전환 테스트’로 코스를 빠르게 평가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짐을 던져 놓고, 재빠르게 러닝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가 아스팔트 도로에서 흙길로 얼마나 빨리 나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나는 베르비에에 대한 기대가 컸다. 미라보 호텔(Hotel Mirabeau)에서 창밖만 내다봤는데도 수백 년 된 오솔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솔길은 여름 기운 가득한 고지대 알프스 초원까지 이어져 있었고, 위 가파른 경사면에는 스위스식 별장인 샬레들이 저 멀리 서서히 작아지는 듯한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런던에서 온 내가 새로이 적응해야 할 해발고도는 1500m였다. 내일은 더 고도가 높은 지대로 이동해야 했기에 서둘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내가 알프스에서 가장 달리기 좋아하는 시간대인 ‘골든아워’가 곧 시작될 참이었다. 이 시간대에는 해가 지며 산그림자가 길어져 그 웅장함이 도드라진다. 마치 산들이 나를 둘러싼 채 천상으로 솟아오르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빨리 나가 테스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나는 내 직감을 믿고 베르비에 골프 클럽 위쪽의 하이킹 트레일로 향했고, 그렇게 7.8km짜리 ‘고도 적응 코스’를 달리게 되었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 놓인 그림처럼 아름다운 샬레들 사이를 지나, 계단식 목초지를 빙 돌아가는 트레일에 도달했다. 거리가 짧았음에도 지형이 낯선 탓에 다리 힘이 쭉 빠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수직 고도 346m를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알프스 러닝의 실체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몇 킬로미터나 수직 고도를 더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나온 경사면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상기되었다.

산비탈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오르는 동안 레 뤼네트(Les Ruinettes)로 향하는 마옌체트(Mayentzet)의 체어리프트가 보였다. 1850m 고도의 맑은 공기를 마시자 폐가 편안해 졌고 보폭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경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눈 녹은 개울물이 돌 사이로 거칠게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다리를 건넜다. 그 위로 마치 금가루 같은 햇살이 쏟아져 물가의 보랏빛 꽃들이 더욱 선명하게 색을 드러냈다.

1일 차 - 환경 적응 | 거리 7.8km | 총 상승 고도 346m

1일 차 - 환경 적응 | 거리 7.8km | 총 상승 고도 346m



02 - 독수리들이 날아드는 곳


맷과 엘레나가 바위 투성이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있다.

맷과 엘레나가 바위 투성이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있다.

황혼이 지면 산들의 전경은 짙어지는 그림자로 인해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황혼이 지면 산들의 전경은 짙어지는 그림자로 인해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더운 날씨와 가혹한 고도에서 잠깐의 시원한 물놀이가 반가운 안도감을 선사한다.

더운 날씨와 가혹한 고도에서 잠깐의 시원한 물놀이가 반가운 안도감을 선사한다.

다음 날 아침, 러닝 가이드가 되어줄 엘레나 보나노미를 만나기 위해 베르비에의 케이블카로 향했다. 카반 몽 포르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왕복 순환 코스를 계획 중이었다. 나는 완벽한 트레일 러닝 복장을 하고, 칫솔과 기타 필수품을 포함해 하룻밤 묵을 짐도 챙겨 산악 지형에서의 러닝을 최대한 만끽할 준비를 마쳤다. 돌아오는 날에는 잠깐 고지대에서 아침 러닝을 할 수 있다.

곤돌라를 타고 레 뤼네트(2200m)로 이동한 후, 다시 리프트를 타고 라 쇼(La Chaux)로 갔다. 우리가 순환 코스를 시작할 카반 몽 포르까지는 걸어서 올라갔다. 고지대 산속이었지만, 기온은 20℃ 중반대에 파랗게 갠 하늘에서는 늦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쏟아졌다. 수분 보충이 필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고도 3330m로 솟아 있는 빙하 덮인 몽 포르를 뒤로하고 자갈길을 따라 길을 나섰다. 우리가 있던 높은 지점에서는 반짝이는 몽블랑의 하얀 산비탈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터호른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먼지가 자욱한 트레일을 걸을 때 발밑에 닿는 느낌이 의외로 기분 좋았다. 엘레나에게 항상 달리기를 산에서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요! 이런 경치가 있으니 다른 데서 달리는 건 이제 지루하게 느껴져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사태로 인한 낙석들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은 구간을 지났다. 하지만 길은 점점 더 험해졌다. 비록 이 트레일들이 엄청나게 잘 관리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산봉우리 지역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힘을 막을 수는 없을 테다. 커다란 바위들 사이를 기어오르면서 산은 영구적인 형태로 서 있는 구조물이 아닌, 천천히 무너지는 돌 더미로 보는 게 옳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우리는 고도 3000m의 몽 젤레(Mont Gelé) 봉우리 아래를 우회했다. 그 후로는 지그재그식 도로가 가파르게 이어지며 길이 험준해지기 시작했다. 종아리에 엄청난 부담이 느껴졌다. 꼭대기까지 오르자 몽 젤레가 전면에서 내려다보였다. 자갈 깔린 울퉁불퉁한 회색빛 산비탈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위를 굽이굽이 뻗은 하얀 선이 가로지르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리조트라면 이 트레일을 정비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잘 활용해 자갈 비탈을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다시 산길을 올라 호수 라크 데 보(Lac des Vaux) 수면 위로 뻗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능선에 도착했다. 발아래 호수가 반짝이는 모양이 마치 돌 속에 사파이어가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길이 워낙 울퉁불퉁하다 보니 우리는 말 그대로 돌을 뛰어넘어 달려야 했다. 바위에 흰색과 빨간색 마커로 칠해 둔 표식이 없었다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고 양쪽으로 경사가 가파른 길을 달리자, 어느 순간 마치 하늘 위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중에서 상승 기류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독수리들처럼, 곧 호수를 가로질러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능선 정상 구간을 모두 달린 후, 우리는 급격히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을 지나 지그재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빙하가 녹아 흘러든 깊은 호수 근처까지 내려가는 동안 허벅지 근육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수의 얕은 부근에서는 산천어가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힘든 능선 구간을 오른 후 엄청나게 땀을 쏟아내던 터라,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유혹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거기서 한 차례 달리기를 쉬어 가기로 했다.

바위 바닥이 보이는 호수의 물은 숨이 멎을 정도로 차갑고 상쾌했다. 이 달리기의 목표가 경험과 풍경에 온전히 빠져드는 것이었다면 나는 이미 성공한 셈이었다. 내가 입고 있던 러닝 쇼츠도 다행히 속건성이었고 말이다.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엘레나가 이끄는 대로 콜 데 미네(Col des Mines)로 향하는 가파른 산비탈 내리막으로 갔다. 순환 코스를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오자 눈앞이 다시 탁 트였다. 몽블랑의 웅장한 경관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몽블랑은 설화석고로 만든 거대한 도시처럼 초록색과 회색이 뒤섞인 봉우리들 위로 우뚝 솟아 빛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수마일을 달리는 동안 해는 점점 하늘 멀리 저물어갔다. 우리는 숨겨진 선사시대 공터 유적지 같은 곳에 다다랐다. 거대한 바위 옆으로 물줄기가 파도쳐 굴러떨어지며 다양한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커다란 돌들은, 마치 천 년 동안 살아온 거인들이 그곳에 던져 놓은 듯 기이하게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나는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통증도 잠시 잊은 채 경이에 차 그 바위들 주변을 돌았다.

위쪽으로 카반 몽 포르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쯤, 나는 산장의 주방 냉장고에서 차갑고 신선한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시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2457m 고도까지 이어지는 바위 투성이 싱글 트랙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머리 위로 유유히 날아가는 패러글라이딩 애호가들이 부러웠다.

드디어 카반 문 앞까지 도착하자 엄청난 만족감이 밀려왔다. 다시 산을 뛰어 내려가 베르비에의 숙소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도 밀려왔다. 저녁이 깊어가면서, 카반의 투숙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금 만난 사람들이지만 그 사이에는 진심 어린 동지애가 떠돌았다. 우리는 서로 집에서 만든 음식을 나누고, 어둠이 내린 후의 야외에 모여 부분 월식을 지켜봤다. 별들이 너무 가까이에서 빛나고 있어서, 내 캠핑 머그잔을 뻗으면 그 새까만 하늘에서 별들을 한 움큼 퍼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일 차 - 몽 포르 순환 코스 거리 | 14km | 총 상승 고도 1404m

2일 차 - 몽 포르 순환 코스 거리 | 14km | 총 상승 고도 1404m



03 - 안개 속 숲


맷과 엘레나가 교목한계선으로 들어가기 전 8.5km의 순환 코스를 따라 걷고 있다.

맷과 엘레나가 교목한계선으로 들어가기 전 8.5km의 순환 코스를 따라 걷고 있다.

맷이 바위 사이를 뛰어넘으며 자신의 용기와 트레일 러닝 실력을 시험해 보고 있다.

맷이 바위 사이를 뛰어넘으며 자신의 용기와 트레일 러닝 실력을 시험해 보고 있다.

베르비에의 트레일에서는 알프스 계곡의 시냇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소리와 차분한 소 방울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온다.

베르비에의 트레일에서는 알프스 계곡의 시냇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소리와 차분한 소 방울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온다.

다음 날 아침, 동이 트며 하늘이 파스텔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내 낮게 깔린 구름이 마치 용이 숨을 토해 놓은 것처럼 띠가 되어 산봉우리 사이를 감싸며 올라갔다. 아침이지만 벌써 다리에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다. 카반 몽 포르에서 고도 2265m에 있는 르 다후(Le Dahu) 산중 식당까지 내려가는 가벼운 워밍업 코스는 그래서 더 반가웠다. 식당에 도착해 짐을 맡긴 후 엘레나와 만났다.

우리는 베르세제르(Versegères) 마을 위쪽의 안개 낀 숲을 탐험하기 위해 교목한계선 바로 위를 지나 그 안으로 이어지는 8.5km 순환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길은 높은 고도와 험준한 지형, 가파른 경사가 겹쳐 굉장히 힘들었다. 이곳에서의 8km는 마치 10km가 넘는 거리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구간은 바위가 많고 앞이 탁 트여 있는 오르막이었다. 몽블랑 단층 지괴와 그 아래 계곡의 장엄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었다. 모퉁이를 돌자 굽이치는 강이 트레일을 가로질렀다. 그 어느 때보다도 트레일 러닝화 밑창의 돌기들에 크게 의지하며, 커다란 바위 징검다리를 건너뛰었다. 갑자기 재미있는 보너스 과제처럼 느껴졌다.

이날은 기온이 상당히 내려갔다. 소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그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 지역 검은 소들은 곧 비가 올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는 게 분명했다. 한 무리의 소들이 나무들 사이로 난 트레일을 따라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무뿌리들이 바위 위로 감겨 점점 험하고 까다로워지는 길이었다. 소들의 목에 걸린, 정말이지 스위스다운 딸랑거리는 소 방울 소리가 거칠게 몰아쉬는 내 숨소리 사이로 간간이 끼어들었다.

고도 1850m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 레 샤리에르(Les Charrières)까지 경사면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긴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이 순환 코스의 총 상승 고도는 467m였고, 그 구간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했다.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싱글 트랙이었다. 갈수록 나무들이 빽빽하고 고요하게 에워쌌다. 때로는 화석화된 거대한 뱀 같은, 길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나무뿌리들 때문에 경로를 벗어나기도 했다.

이 미로 같은 길을 확실히 빠져나갈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쉴 틈이 없었다. 발목을 접질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나무의 습기와 고요한 정적이 점점 숨이 막힐 듯 압박해 오던 차에 우리는 탁 트인 초원으로 빠져나왔다. 여름의 마지막 나비들이 야생화 사이를 날아다니고, 경사로가 다시 한번 구불구불하게 높이 치솟아 있었다.

우리는 포도밭에 물을 대는 스위스식 수로인 비세를 따라 이어지는 매끄러운 자갈길로 들어섰다. 르 다후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오르막길을 앞뒀을 때, 근육이 개운하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작 48시간 만에 산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정취를 경험했다.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멋진 광경들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현지 치즈와 가공육으로 구성된 고단백 점심을 입속에 밀어 넣으면서 생각했다. 베르비에는 지금까지 내가 달려본 곳 중 가장 매혹적이고, 보람 있고, 지고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치열한 트레일 러닝에 도전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단 이틀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3일 차 - 숲 순환 코스 | 거리 8.5km | 총 상승 고도 467m

3일 차 - 숲 순환 코스 | 거리 8.5km | 총 상승 고도 467m


DETAILS

가는 방법 제네바공항에서 스위스 연방철도(SBB)를 타고 르 샤블(Le Chable)까지 이동한다. 르 샤블에서 곤돌라를 타고 20분 이동하면 바로 베르비에다.

숙소 베르비에 중심가에 있는 미라보 호텔은 매우 훌륭한 숙소다. 레 뤼네트로 향하는 중앙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도보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mirabeauhotel.ch

교통 7월부터 9월까지는 베르비에 지역 내 무료 셔틀버스가 운영된다. 여름철에도 고고도 지대까지 스키 리프트 9대가 운영되어 따로 렌터카나 택시 등 이동 수단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식사 베르비에 시내에도, 산중에도 수준 높은 식당들이 많다. 시내에 있는 식당들은 모두 추천할 만하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술집들이나 비슷하게 캐주얼한 분위기인 페라슈발(Fer à Cheval)도 좋고, 스테이크 전문 프랑스 식당 레 샤무아(Les Chamois)와 미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레퀴리(L’Ecurie)도 훌륭하다. 산 위에 있는 카반 드 밀(Cabane de Mille)의 세심한 가정식 점심 메뉴들은 산장 레스토랑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다. 카반 몽 포르가 모든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공동 저녁 식사도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다.

대회 트레일 러닝계의 최고 스타들이 ‘트레일 베르비에 생베르나르 UTMB(Trail Verbier St Bernard UTMB)’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로, 28km부터 140km까지 총 4개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2027년에는 7월 9일부터 1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verbier.utmb.world/

코스 베르비에에는 표지판이 설치된 트레일 러닝 코스 21개와 트레일 러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500km가 넘는 하이킹 코스가 있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찾는 코스에 대한 소개와 함께 트레일 러닝 가이드를 찾아볼 수 있다. verbier.ch/en

Credit

  • EDITOR Matt Ray
  • PHOTOGRAPHER Chris Lanaway
  • TRANSLATOR 박수진
  • ART DESIGNER 안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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