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셸 오토니엘은 말합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경고’
중세도시 아비뇽 전체를 사랑의 성좌로 바꿨던 오토니엘이 부산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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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F1963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중 ‘코스모스’가 설치된 방에 서 있는 장 미셸 오토니엘.
작년 늦여름 아비뇽에 갔다가 당신의 전시 <오토니엘 코스모스, 혹은 사랑의 유령>(2025년 6월 28일~2026년 1월 4일)을 직접 봤지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중세 도시 아비뇽 전역, 교황청을 중심으로 아비뇽 다리와 포메르 목욕탕 등 열 개 장소에 260여 점이 설치됐지요. 서울로 치면 광화문을 중심으로 종로 일대와 청계천, 남산타워까지 아우르는 정도의 스케일입니다. 실내와 실외를 모두 썼지만 대부분이 매우 공적인 공간이었고요. 한편 이번 전시는 많이 다릅니다. 부산 F1963에서 열리는 <사랑 안의 미로>는 당신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 전시지만, 좀 더 안으로 파고드는 형태를 지녔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공의 공간에서 선보이는 작업과 갤러리나 미술관에 전시하는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제게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비뇽과 부산으로 나눌 수는 없어요. 사실 아비뇽에서는 그 둘을 다 했거든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적인 공간에 무언가를 놓는다는 건 사람들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걸 했지요. 야외 달빛가든에 ‘황금 연꽃’ 두 점이 놓여 있고, 이 작품들이 여러분을 전시장인 석천홀로 초대합니다. 아비뇽 칼베 미술관의 연꽃 작품과 같은 시리즈예요.
아비뇽은 앞서 잠시 얘기했듯 성벽 안 구시가지가 도시 이미지의 전부라고 할 만큼 교황청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응축된 중세 도시이고, 부산은 산과 바다를 따라 길게 늘어지며 서면·남포동·해운대처럼 여러 중심이 각자 자라난 다핵적 거대 도시죠. 어째서 부산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실은 아비뇽 전시 개막식 때 모든 게 시작됐어요. F1963 재단 관계자분들이 그 자리에 오셨고, 전시를 보고 굉장히 감동하셨어요. 부산에서도 저와 전시를 하고 싶어 하셨지요. 시작은 재단 쪽의 바람이었던 겁니다. 제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새로운 관객을 만나러 간다는 것,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기가 환상적이었어요. 부산비엔날레(8월 29일~11월 1일)가 열리는 오프닝 시기에 전시할 수 있었으니까요. 동시대 미술을 보러 오는 아주 큰 관객층이 이곳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저를 기대하게 만들었죠. 부산이 큰 도시이고 제 전시도 규모가 크니 그걸 받아내 줄 큰 공간이 필요했지요. 정말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어요. 그냥 정확한 시기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연속성으로 따지면 아비뇽에서 온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작입니다.
아비뇽 전시에는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 즉 페트라르카의 라우라를 향한 사랑이라는 문학적 서사가 도시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반면 이곳 부산 F1963은 고려제강의 와이어 공장이었던 곳으로, 부산에서 아무 택시나 타고 “고려제강 가주세요”라고 하면 누구나 아는, 산업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하나는 문학적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적 서사인데, 이렇게 성격이 전혀 다른 장소의 배경이 전시의 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부산 공간에는 미로를 만들었습니다. 입구부터 아예 새로 냈어요. 사람들이 건물 뒤쪽에서 들어오도록 바꿨지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입구를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들어와서도 꽤나 복잡한 공간을 미로처럼 지나가게 됩니다. 보통의 전시장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발견할 시간을 주려고 했어요. 아비뇽의 주제가 러브 스토리였듯 이곳 부산도 러브 스토리입니다. 다만 아비뇽과는 방식이 다릅니다. 아비뇽에서는 작품이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었고 전체 규모가 아주 컸어요. 도시 전체를 걸어야 했죠. F1963은 거대한 하나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그 안을 더 복잡하게 나누고 미로처럼 헤매게 만들고 싶었어요. 호흡의 순간, 고요의 순간, 빛의 순간을 넣었지요. 각각의 공간이 제 작업의 새로운 변신입니다.
미로의 여정을 말로 한번 안내해주시겠어요?
바깥의 물과 연꽃(‘황금 연꽃’)에서 시작합니다.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서면 시적인 물이 있지요. 바닥에는 약 2000개의 유리 벽돌이 강처럼 깔려 있고(‘푸른 강(Rivière Bleue)’, 2026), 구슬 묶음이 공중에 떠 있어요(‘매달린 연인(Amant Suspendu)’ ‘목걸이(Collier)’ 연작). 그다음엔 꽃을 주제로 한 석판화 연작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지요. 훨씬 내밀하고 아주 어둡습니다. 그리고 다시 빛이 있는 방으로 나오면 황금 꽃과 분수를 만나요. 그다음이 코스모스입니다. 모든 것이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자리지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가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반대말이니까요.
코스모스가 카오스의 반대말이라고요?
맞아요. 그리스어에서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 장식을 뜻하고 카오스는 텅 빈 틈을 뜻해서 서로 반대말로 쓰였어요. 그리고 코스모스를 지나면 마지막 방이 나오죠. 저에게는 이 방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 가고 싶은 곳이거든요. 건축에 대한 작업, 공간에 대한 작업이지요. 이 작업은 제가 지금까지 유리 벽돌로 만든 것 중 가장 큰 설치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사원에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아비뇽이 아홉 개의 행성이 사랑과 역사적 공간들 주위를 도는 것 같은 우주적 스케일이었다면, 부산의 전시는 미로를 통해 내면을 파고드는 느낌이에요.
이 전시를 감상하는 일은 정말로 하나의 파르쿠르(parcours, 여정)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리적인 파르쿠르이면서 마음속의 파르쿠르죠. 이 공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계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에 들어와 작품을 발견하되 자기 감정이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 관조의 순간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죠. 말씀대로 그래서 아마 내면을 향한다고 느끼셨을 겁니다. 경험은 방을 하나씩 지나면서 천천히 자라납니다. 자기 감정의 발견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는 게 무척 복잡한 것이라는 데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자기 감정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이 전시에서 보여주려는 것이에요.
지난 해 아비뇽 곳곳에서 열린 <오토니엘 코스모스 혹은 사랑의 유령 (OTHONIEL COSMOS or the Ghost of Love)> 전시 중 교황청 광장(Place du Palais des Papes)에 세워진 높이 10~11m의 기념비적 조각 ‘라스트롤라브(L’Astrolabe)’의 전시 전경. ©E.Nove- Josserand/Avignon Tourisme
저는 종종 프랑스에서 쓰는 ‘파티나’라는 개념과 당신의 작품을 연관 지어 상상하곤 합니다. 청동에 앉은 푸른 녹, 오래된 가구의 손때, 돌계단이 닳아 생긴 윤기처럼 시간이 사물의 표면에 남기는 흔적인 ‘파티나’를 프랑스에서는 손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해진 가치로 여기잖아요. 당신의 작품이 파티나를 입으면 어떨까 상상해요. 너무 멋질 것 같아요.
파리에는 제가 만든 지하철 입구가 있어요. 파리 지하철 개통 100주년을 기념해 2000년 팔레 루아얄-루브르 박물관역에 세운 ‘야행자들의 키오스크(Le Kiosque des Noctambules)’라는 작품인데, 베네치아 무라노섬의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거든요. 아마 프랑스에서 제 작품 중 가장 유명할 겁니다.(웃음) 파리의 모든 가이드북에 실려 있으니까요. 그게 26년 전에 만들어졌으니 이제는 파티나가 생겼죠. 사람들이 금속을 계속 만지니까 손이 닿는 자리마다 색이 달라지고 윤이 나면서 처음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지요. 그런데 그게 이야기를 가져와요. 파티나가 이야기를 데려오는 겁니다. 이 작품에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여자들 사이에 그런 미신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임신했을 때 이걸 만지면 딸을 낳는다고.
예? 정말요?
정말이에요. 출산을 앞둔 여성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시간이 금속의 표면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바꾼다는 사실이요. 작품이 모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이요. 도시가 스스로 만들어낸 동화 같은 거죠. 언젠가 한 여성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 덕분에 딸을 낳았어요.” 제가 그랬죠. “왜요, 제가 아버지도 아닌데요.” 그랬더니 이러는 거예요. “당신 작품을 제가 만졌거든요.” 작품이 정말로 도시의 일부가 되거나, 그것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 일부가 될 때가 좋습니다. 정원에 제 작품이 놓여서 자연과 놀고, 꽃과 놀고, 바람과 놀고, 비와 놀고. 거기에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얹을 수도 있고요. 아마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이 오랜 시간에 걸친 과정 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일 겁니다. 누군가의 삶의 일부가 되고, 그 주위로 이야기가 쌓여가는 것.
반대로 작품이 젊은 상태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실은 선택지가 두 가지입니다. ‘황금 연꽃’을 예로 들면 3년마다, 5년마다, 혹은 10년마다 금박을 다시 입힐 수 있어요. 금은 아주 강한 재료라서 사실 크게 변하지는 않지만, 어느 시점이든 더 빛나게 하고 싶다면 다시 입히면 되지요. 유리는 그냥 닦기만 하면 됩니다. 아주 쉬워요. 하지만 진짜 변화는 자연 그 자체가, 빛의 변화가 만드는 것이지 재료의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황과 밀랍에서 시작해 유리구슬로, 다시 금박과 스테인리스스틸을 거쳐 지금은 유리 벽돌에 이르셨습니다. 재료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당신 안의 내적 계기가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바깥에서 온 요인이 있었습니까?
그 과정은 실험에 가깝습니다. 저는 저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재료를 쓰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그걸 관객에게 돌려주는 게 제 작업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즐거운 동안에는 그 재료를 씁니다. 유리는 정말 놀라워요. 다른 종류, 다른 색, 다른 크기를 다 만들 수 있으니까요. 순수한 즐거움을 주지요. 유리를 발견하고 유황을 그만뒀습니다. 유황을 15년 썼거든요. 그때는 다들 저더러 “당신은 유황 조각가”라고 했어요. 저는 “맞다”고 했지요. 지금은 다들 “유리 작가”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해요. 10년쯤 뒤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찾을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사랑과 같지요. 자기 감정을 따라가는 거예요. 재료를 바꾼다는 건 일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황으로 작업할 때는 스튜디오에서 저 혼자 작업했어요. 유리로 작업하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건축적 스케일도 다루는 지금은 아주 큰 스튜디오를 운영합니다. 아마 이 큰 스튜디오가 저를 건축으로 데려온 것 같아요. 재료의 변화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실험을, 다른 종류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합니다. 회화나 드로잉을 할 때는 혼자 일하는 게 좋습니다. 유리 작업을 할 때는 장인 서너 명과 일하는데 그것도 좋아요. 스무 명이 함께 하는 스튜디오 작업도 좋아합니다. 스무 명이 되면 에너지의 문제, 도전의 문제, 더 크게 만드는 꿈의 문제로 치환되거든요. 그게 제가 천천히 건축에 가까운 조각으로 가고 있는 이유기도 하지요.
저는 아비뇽에서 교황청 앞 광장에 들어서서 ‘라스트롤라브(L’Astrolabe)’를 봤을 때 ‘이건 건축이다’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지금 진행 중인 건축적 규모의 프로젝트가 또 있나요?
예, 있어요. 하나는 그리스, 하나는 남프랑스예요. 둘 다 파빌리언 형태가 될 겁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완전한 파빌리언이죠. 제가 만드는 것이니 결국 조각인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각인 셈입니다. 제가 만든 큰 유리 파도(‘더 빅 웨이브(The Big Wave)’)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워낙 커서 이런 공간 전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에요.
아, 정말 기대되네요. 제가 프랭크 게리의 팬인데, 그런 자유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와서 봐주세요. 실제로 게리는 작은 조각을 만들고 그걸 크게 짓는 방식으로 일했어요. 저는 그의 작업을 좋아합니다. 아주 야생적인 건축이에요.
종종 당신의 작업에는 ‘그냥 아름다울 뿐’이라는 말이 따라다닙니다. 그런 시선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1년 전 아비뇽의 전시와 이번 부산의 전시가 가진 차이는 무엇입니까?
아비뇽의 전시는 현실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경험케 해주는 것이었어요. 현실을 떠나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가 아름다움과 마주하고, 자신의 감정을 안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 관객들이 그러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제 전시에서 아름다움이란… 취약함을 자각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요. 영어로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아름다움은 경고입니다. 아름다움은 세계의 취약함에 대해 당신에게 경고해요. 지난 전시와 비교해 이번 전시의 새로운 점은 아름다움의 힘이 관객을 세계의 취약함에 더 예민하게 만드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와… 아름다움은 경고군요.
아름다움은 취약함과 연결되고, 취약함은 어떤 감정과 연결되지요. 우리는 아름다운 걸 보면 이렇게 말하죠. “이걸 지켜야겠다.” 그건 결국 세계에 대해 더 자각해야겠다는 태도입니다. 제 작업이 천천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세계가 그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맥락이 저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시의 힘입니다. 시는 당신을 세계에 대해 자각합니다.
아름다움이 카오스에 맞서는 것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맞아요. 아름다움은 카오스에서 벗어나 코스모스로 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당신으로 하여금 실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든다면, 그건 피상적인 게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결국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죠. 그것은 거울입니다. →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ART DESIGNER 김동희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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