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와 프리즈 바깥의 미술
2026년 프리즈 시즌을 겪으며 미술 전문기자가 보고 느낀 변화의 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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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이 자리에 없다. 코엑스 재개발에 따라 2027년과 2028년 프리즈 서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로 옮겨가고, 키아프는 코엑스에 남는다. 두 페어의 파트너십은 2031년까지 연장됐고 통합 티켓과 공동 프로그램도 유지된다. 하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두 페어 사이에 명백한 물리적 거리가 생긴다. 페어가 시작되고 사흘째 되는 날, 경제와 미술 담당 기자로 이 시장을 지켜본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에게 DM을 보냈다. 그의 첫마디는 “‘1+1’의 아트페어가 단순히 ‘1 그리고 1’로 돌아가는 문제가 아니에요”였다. 참가 화랑 수부터 프리즈 뉴욕 규모로 줄어들 것이고, 파트너 기업의 마케팅과 공공 예산의 화력도 분산된다는 것이다. “이미 철수를 시작한 해외 화랑 중에 메가 화랑조차 이탈이 나올 수 있어요.” 조짐은 올해 이미 있었다. 2022년 첫 회부터 네 번의 프리즈 서울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페로탕이 올해는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첫날 프리즈를 충분히 본 뒤 자연스럽게 키아프로 넘어가던 낙수 효과는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면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동에 숙소를 잡던 해외 갤러리스트들이 내년에는 장충동과 한남동을 고려할 테니 청담 나이트를 비롯한 강남권 갤러리는 소외될 수 있다. 동선이 한 번 끊기면 거기에 연결되었던 것들이 차례로 무너진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먼저 나온 것 같습니다.” 키아프 내부에서 다섯 해를 겪은 전시기획자이자 칼럼니스트 박준수는 문제를 규모가 아니라 정체성의 선택으로 본다. DDP의 전시 공간은 다 합쳐도 코엑스 B홀보다 작고, 사각형의 일반적인 컨벤션 구조가 아니어서 버리는 공간이 많다. “문제는 규모가 줄었을 때 ‘누구를 남길 것인가’죠.” 국제 메가 갤러리 중심의 부티크 페어로 압축하면 지난 5년간 프리즈가 강조해온 한국·아시아 미술시장과의 동반 성장이라는 메시지와 거리가 생기고, 반대로 한국 갤러리 비율을 유지한다면 처음부터 함께해 온 대표 화랑과 프리즈를 통해 주목도를 높인 젊은 갤러리 중 한쪽을 골라야 한다. 그가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꼽은 것도 바로 그 젊은 갤러리들이었다. 에이라운지, 실린더, N/A, 캡션, 드로잉룸, 띠오. “‘이를 갈고 나왔구나’ 싶은 곳들이 여럿 있었어요. 키아프가 이런 갤러리들을 조금 더 일찍 적극적으로 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리즈가 내놓은 성적표만 보면 올해는 나쁘지 않았다. 30개국 130개 이상의 갤러리, 나흘간 7만 명 이상의 관람객, 25개국 178개 미술관과 기관 관계자. 국제갤러리가 판매한 유영국의 1971년 회화 22억~25억원은 프리즈 서울 5년 역사상 한국 작가 최고가다. 아트드렁크를 뉴욕·런던·서울을 잇는 아트 미디어 플랫폼으로 키운 개리 예는 총액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국에 사는 컬렉터에게 팔린 건지, 다른 곳에 사는 사람에게 팔린 건지를 봐야죠. 전체 판매액만 봐서는 로컬 마켓의 실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원화 강세가 판매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관찰도 덧붙였다. 정작 내가 값을 궁금해한 건 따로 있었다. 타데우스 로팍 부스에 마르셀 뒤샹의 <L.H.O.O.Q.>(1919-64)가 걸려 있었다. 페어 둘째 날, 코엑스 1층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오는 로팍의 황규진 디렉터를 마주쳤다. “뒤샹 그거 팔렸나요?” 살 수 없는데도 그냥 확인해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에디션 35점 중 열일곱 번째, 약 10억원.
1919년 뒤샹은 루브르 근처 리볼리 거리에서 흔하게 팔던 <모나리자> 기념품 복제화를 사서 연필로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고 하단에 다섯 글자를 적었다. 프랑스어로 소리 내어 읽으면(“Elle a chaud au cul.”) 음란한 농담이 되는 언어유희. 1919년은 다빈치 사망 400주기이자 다다이즘 절정에 이른 해였고, 뒤샹 본인은 훗날 이 개입을 다른 형태의 평화주의 시위였다고 설명하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깔린 불안한 공기를 그 다섯 글자와 연결시켰다. 그보다 2년 전, 그는 상점에서 산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만 갈긴 반망막적 작품 <샘>으로 예술이 오브제가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선언했다.
뒤샹을 볼 수 있는 곳은 코엑스만이 아니었다. 한남동 마이어리거울프의 <마르셀 뒤샹: 파리지앵 컬렉션>. 파리의 한 컬렉터가 30여 년간 모은 작품과 아카이브 250여 점으로, 완성된 작품보다 뒤샹이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책과 인쇄물, 전시 카탈로그, 포스터에 집중한 구성이다. 조슬린 울프 대표는 이 전시를 서랍에 비유했다. 서랍을 열면 잡다한 물건이 담겨 있듯, 각 작품이 저마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품고 있는 걸 들여다보는 전시라고. 그리고 컬렉션 전체를 하나로 묶어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화로 약 25억원. 개별 작품으로 흩어지면 의미가 없고 한 사람이 통째로 가져가야 완성되는 컬렉션이라는 것이다. 레디메이드라는 아이디어가 출판과 복제를 통해 어떻게 순환했는지를 확인하는 일. 올해 ‘키아프리즈’가 선사한 짜릿한 지적 우연이었다.
전후 미술을 만든 세대가 하나둘 떠나고 있다. 올해만 셋이다. 4월에 게오르그 바젤리츠, 6월에 데이비드 호크니, 8월에 쿠사마 야요이. 1960년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회화를 다시 짜맞춘 이들이다. 서소문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바젤리츠 회고전은 그가 떠난 뒤 세계에서 처음 열리는 미술관급 회고전이다. 말년의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렸고, 화폭에는 물감뿐 아니라 손수레 바퀴 자국과 보행 보조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회고전이 열리는 바로 그 주에, 코엑스에서는 화이트 큐브가 바젤리츠의 작품을 약 13억원에 팔았다. 데이비드 즈워너 역시 쿠사마의 2005년 회화를 팔았다.
그 세대가 하나둘 떠나는 사이, 아트 위크에 가장 널리 회자된 이름은 서도호였다. 광주비엔날레 개막일에 판화와 종이를 다루는 싱가포르 STPI의 에미 유 총괄 디렉터를 마주쳤다. 인사를 건네며 서도호 전시를 다들 너무 좋아한다고 했더니 답이 바로 돌아왔다. “이번 아트 위크의 슈퍼스타죠!” 서도호의 솔로 부스는 프리즈에서 두 곳이었다. 하나는 창립 30주년을 맞은 리만머핀이고 다른 하나는 2009년 첫 레지던시 이후 여덟 차례 협업해온 STPI다. 한 작가에게 한 페어에서 솔로 부스가 둘이고, 같은 도시의 국립미술관에서는 대규모 서베이가 열리고 있다. 슈퍼스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솔로 부스라면 포커스 섹션이 통째로 그런 자리다. 페어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도 여기였다. 로마의 갤러리 마테리아가 데려온 벡바타르 엔흐투르는 스무 살까지 몽골에서 자랐고 지금은 토리노를 기반으로 작업한다. 부스의 연꽃들은 개조한 등산용 아이젠에 밀랍을 씌워 만든 것이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발 밑을 붙들기 위해 쓰는 아이젠이 뒤집히자 연꽃밭이 되었다. 뒷벽에는 아홉 장 한 세트의 샌드페이퍼 드로잉. 사포는 무언가를 갈아 없애는 물건인데 그 위에 부처의 형상을 그렸다. 그리는 행위가 곧 지우는 행위인 그림이 아홉 장, 조금씩 다르게 지워진 채로 걸려 있었다. 도쿄의 갤러리 ‘CON_’(이하 ‘콘’)은 일본 작가가 아니라 서울에서 활동하는 김민희를 택했다. 지난해 이 갤러리는 거대한 돌이 회전하는 요코테 다이케이의 설치로 페어장에서 화제가 됐는데, 그 반응이 이후 비엔날레 참여로 이어졌다고 했다. “다른 데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연결이 여기서 만들어져요.” 디렉터 가토 히사토모의 말이다. 올해도 그랬다. 콘은 김민희의 회화 여러 점을 팔았고, 서울의 한 컬렉터에게서 새 커미션 의뢰를 받았다. 페어가 사람을 불러오고, 그렇게 온 사람들이 작가를 데려간다.
같은 주에 코엑스 바깥에서도 페어가 하나 열렸다. 파빌리온 서울이다. 홍콩 소재 갤러리 PHD 그룹이 시작한 대안 아트페어로, 올해 1월 타이베이와 3월 홍콩에 이어 서울이 세 번째 도시다. 프리뷰에 찾아갔더니 지혜진 디렉터가 이름의 내력부터 들려주었다. “PHD는 프로퍼티 홀딩스 디벨롭먼트의 약자입니다. 부동산 개발사 이름을 흉내 낸 농담이면서 박사학위를 가리키는 말장난이기도 하죠.” 삼각지에 있는 옛 금성출판사 사옥 3채를 단장한 ‘KCS’(Kumsung Cultural Space)에서 열렸는데, 밤에 도착하니 검은 파사드에 창들만 노랗게 떠 있었다. 분명히 갤러리들이 모인 페어인데, 안에는 부스가 없다. 규격화된 칸막이 대신 목조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과 흰 벽, 마대 위에 합판을 얹은 좌석이 공간을 채운다. 상업 갤러리와 비영리 공간이 한자리에 섞인 모습이었다.
신선한 광경과 갤러리 라인업에 들떠서 돌아다니다 컬렉터이자 미술교육자인 이소영을 만났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왔는데, 작품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높지 않아요? 올해 1회인데 내년이 더 기대돼요!” 그러면서 다윗과 골리앗을 꺼냈다. “다윗에게는 온통 던질 돌뿐이잖아요. 여기서 돌은 작은 갤러리들이고요. 돌이 많으니까 멀리 볼 때 길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화랑협회도 프리즈도 아닌 갤러리들이 들어올 빈틈이라는 것이다.
페어가 문을 닫으면 골목이 열렸다. 네이버후드 나이트는 을지로, 한남, 청담, 삼청으로 나흘에 걸쳐 이어졌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이 프로그램에 있다는 걸 나는 새삼 확인했다. 마지막 삼청 나이트의 인파는 예상을 훌쩍 넘었고 몇몇 갤러리와 미술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나와 함께 트레바리에서 미술책을 읽는 사람들과 한남 나이트에 갔고, 다들 처음 경험하는 밤의 미술관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대 미술 강의에서 네이버후드 나이트를 안내했더니 실제로 다녀온 분들이 있었다. 5년 전 키아프의 외연은 코엑스 안에 있었지만 지금 그 외연은 서울 전체다. 올해는 그 장이 남쪽으로도 늘어났다. 광주비엔날레가 9월 5일에 문을 열었고, 부산비엔날레는 프리즈 전주인 8월 29일로 프리즈 서울에 오프닝 날짜를 맞췄다. 2026년을 부산비엔날레-키아프리즈-광주비엔날레로 이어지는 아트 시즌이 완성된 첫해로 봐도 될 것이다. 앞 뒤에 붙은 제주비엔날레와 경기도자비엔날레까지 합하면 8월 말에서 9월 중순에 4개의 비엔날레가 줄을 잇는다.
내년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개리 예는 DDP 이전을 오히려 기회로 본다. “이미 많은 해외 컬렉터와 작가가 강북에 묵고 있어요. 페어가 그쪽으로 옮겨가면 차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겁니다. 그만큼 전시와 행사에 쓸 시간이 늘어나는 거죠.” 주최 측이 그 동네의 문화적 다양성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남는 건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맺어진 것들이다. 도쿄 갤러리가 서울 작가를 데려와 서울 컬렉터에게서 커미션을 받고, 부스 없는 페어에서 작은 갤러리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밤의 골목에서 처음 미술관 문턱을 넘은 사람이 다음을 기약한다. 이런 것들은 코엑스에 묶여 있지 않다.
안동선은 <하퍼스 바자>에서 아트를 담당하며 <바자 아트>의 편집자로 오랜 기간 일했다. 2023년 저서 <내 곁에 미술>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미술 콘텐츠 기획과 미술 취재를 병행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안동선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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