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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고 다니는 남자 서도호

집이 품은 사람, 집을 품은 사람 서도호의 최대 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8.27
서도호, ‘자화상’, 2026, 수제 종이에 실, 167.6x132.1cm

서도호, ‘자화상’, 2026, 수제 종이에 실, 167.6x132.1cm

기와도 창살도 서까래도 색색의 실이 지나간 자국으로 존재한다. 수천 가닥의 실이 폭포처럼 곧게 떨어지고, 실이 떨어지며 만든 경계에 사람이 서 있다. 집이 그의 정수리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집이 그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목은 ‘자화상’이다. 얼굴 대신 집이 보이는 자화상.

실은 종이 위에 얹힌 것이 아니라 종이 속에 갇혀 있다. ‘자화상’의 배경이 되는 하얀 종이는 목재 펄프로 만든 종이가 아니다. ‘handmade cotton paper’, 즉 손으로 만든 면지다. 단단하고 강한 면지는 마치 플라스틱처럼 원하는 형태로 성형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서도호는 물에 풀린 면 펄프를 몰드로 떠낸 뒤 종이가 마르기 전에 실을 ‘심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실은 부피 없이 평면의 일부를 이룬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조각이라고 느낀다. 이 조각은 종이 안에 갇힌 채로 말랐을 뿐이다. 종이 안에서 부피를 가진 가늘고 긴 실들이 얽히고설키고, 서로 다른 신경회로로 이어진 기억들이 서로를 간섭하고 회절한다. 작품이 보여주는 알레고리는 명확하다. 그는 집이 품은 무엇이고, 그는 또 집을 품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평면에 갇힌 입체다.

그가 그리는 집은 성북동 260-10번지의 그 집이다. 1970년대, 수묵 추상화가인 서도호의 부친 서세옥은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실측해 그대로 본떠 그 자리에 한옥을 지었다. 서예가 손재형이 일제강점기에 헐린 궁에서 나온 춘양목을 사들여 자기 집을 짓고 남긴 목재를, 서세옥이 다시 사들여 썼다고 한다. 여의도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그가 자란 집은 처음부터 원본이 아니었다. 복제된 집에서 자란 아이가 평생 집을 복제한다. 그는 대문을 밀고 나설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담 안쪽은 조선이었고 담 바깥은 콘크리트였다. 그의 집이 언제나 ‘잘못된 자리’에 놓이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다. 두 집 사이에 낀, 육교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힌 한옥을 연상해보라.

종종 서도호의 ‘직물 건축’(fabric architecture) 작품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째서 이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크게 움직이는가? 그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기억의 치수를 재고, 이를 재현하는 방식이, 꿈을, 기억을, 추억을 손으로 더듬어보는 것과도 같기 때문은 아닐까? 문고리와 콘센트와 소화전을 1:1로 떠내고, 반투명한 천의 형태로 옮긴 다음, 접어서 가방에 넣는다. 서울에 가서 펼치고, 런던에 가서 펼치고, 뉴욕에서 널어둔다. 서울과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산 사람이 발견한 것은 이것이다. 지구적으로 산다는 건 집을 두고 떠나는 일이 아니라 집을 지고 다니는 일이라는 것. 이민자든 유학생이든 전세 만기를 앞둔 사람이든, 이동하는 인간은 결국 자기 몸에 집 한 채분의 치수를 새기고 다닌다.

이번 서도호의 개인전은 그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서도호>. 이름 석 자가 전부다.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4·5전시실과 MMCA 스튜디오에서 열린다. 학생 시절의 초기작부터 대표작, 지금도 진행 중인 최근작까지 아우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13년 전 새로 문을 연 미술관 천장에 집 한 채를 매달았던 그가 이번에는 미술관 전체에 집을 짓는다. 그의 정수리에서 지금 자라고 있는 것은 어떤 집일까.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리만머핀/빅토리아 미로 제공 ©서도호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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