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라는 캔버스 위의 마술, 데이비드 호크니의 스테이지 디자인
현대 미술의 살아있는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를 드로잉과 페인팅으로만 알고 있다면 그가 만든 세계의 절반을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2차원의 캔버스를 넘어 3차원의 입체적 공간 즉 무대 위에서 빛과 색채의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색감의 대가 호크니의 탐미주의적 취향과 독창적 시각이 집약된 무대들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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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원 캔버스를 넘어 3차원 무대 위에서 원근법과 색채의 한계를 깨는 실험적인 스테이지 디자인을 선보여 온 데이비드 호크니.
- 판화 기법을 무대로 옮기며 시각적 반전을 선사한 <난봉꾼의 행각> , 아방가르드한 입체주의 의상 미학의 정점을 찍은 <퍼레이드.
- 이안 팔코너와 협업해 건축적 실루엣과 강렬한 원색이 만난 '입는 예술'로서 오페라 디자인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투란도트>.
- 배우와 의상이 조화를 이루며 실시간으로 맥동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입체적인회화 작품인 호크니의 무대.
호크니의 무대 디자인 이력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작품은 2021년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보(The Rake's Progress)>입니다. 이 작업은 호크니의 무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그니처와 같은 엣칭기법이 무대 전체 스타일로 해석된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죠. 18세기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가느다란 가로세로의 격자무늬인 크로스 해칭으로 무대 세트와 의상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흑백 판화 속으로 살아있는 배우들이 걸어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에게 2차원과 3차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묘한 미적 경험을 선사했죠. 특히 의상들 역시 잉크로 갓 찍어낸 듯한 질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고전적인 실루엣 속에 호크니 특유의 선적인 그래픽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이죠.
이어지는 198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발레극 <퍼레이드(Parade)>는 호크니의 팝아트적 감각과 아방가르드한 실험 정신이 절정에 달한 작품입니다. 1917년 파블로 피카소가 작업했던 초연의 오마주이기도 한 이 무대에서 호크니는 프랑스 삼색기를 모티프로 한 컬러를 사용하여 무대를 거대한 장난감 상자처럼 변모시켰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영향을 받은 의상 디자인입니다. 인체의 비례를 무너뜨린 기하학적인 패턴의 수트와 서커스 단원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스트라이프 의상들은 오늘날의 런웨이에 올려도 손색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감각적이죠. 호크니는 이 작업을 통해 무대 의상이 단순히 인물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닌, 공간의 조형미를 완성하는 하나의 오브제로 전환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1992년의 <투란도트(Turandot)>는 호크니의 무대 중 가장 패셔너블하고 화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투란도트의 감각적인 무대 이면에는 호크니의 예술적 비전을 패션으로 완벽하게 구현해준 최고의 조력자, 이안 팔코너(Ian Falconer)가 있습니다. 당시 호크니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팔코너는 훗날 디자이너 톰 포드의 영화 <싱글맨> 주인공의 모델이 될 만큼 당대 패션계의 아이콘이었죠. 호크니가 강렬한 원색의 대비로 압도적인 동양적 미장센을 구축하면, 팔코너는 그 거대한 색채 속에서도 배우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의상을 설계했습니다. 특히 투란도트 공주의 의상은 대담한 패턴과 입체적인 조형미가 조화를 이루어, 비평가들로부터 "오페라 의상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는 찬사를 받았죠.
데이비드 호크니가 설계한 무대들은 캔버스의 제약을 벗어나 관객과 호흡하는 하나의 거대한 회화 작품과 같았습니다. 막이 오르는 순간 거대한 캔버스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환상을 선사했으니까요.
Credit
- EDITOR 한유주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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