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대한 여덟 가지 중얼거림
우리는 왜 이 연분홍색의 덩어리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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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사랑의 상징이 됐고, 위장은 식욕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뇌 만큼은 조금 다르다. 심장과 위장은 인간이 사용하는 기관이지만, 뇌는 그 기관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이기도 하다. 사랑을 느끼는 것도, 식욕을 느끼는 것도 뇌다. 뇌는 세상을 해석하는 기관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해석하려 드는 유일한 장기다.
1. 뇌의 존재 : 호두까기 아버지
폐 X-RAY사진과 나무 사진 , 출처 drpriyankahomeopathy
처음 뇌의 존재를 의식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호두를 까주며 늘 같은 말을 했다. "호두 먹어. 뇌에 좋대." 이유는 단순했다. 호두가 뇌를 닮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논리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복잡한 주름과 좌우로 갈라진 모양은 어린아이에게도 꽤 설득력 있는 증거였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호두를 받아먹었다. 한때 영재교육원까지 다녔으니, 어린 시절의 나는 그 효과를 꽤 진지하게 믿었던 듯하다. 흥미로운 건 지금은 호두를 거의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에는 미래를 위해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뇌를 위한 투자가 이미 끝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낯선 장기를 설명할 때 늘 익숙한 사물을 끌어온다. 뇌는 호두를 닮았고, 폐는 나무를 닮았으며, 소장은 국수를 닮았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사람들은 비유를 통해 몸을 이해했다. 어쩌면 “호두가 뇌에 좋다”는 믿음 역시 영양학보다 먼저, 형태에서 출발한 가장 오래된 상상력의 흔적일지 모른다.
2. 뇌의 모습 : 해마, 아몬드, 솔방울
Drawing by Henry Vandyke Carter from Henry Gray’s book , Anatomy of the Human Body
뇌를 처음 해부한 사람들은 꽤 곤란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을 설명해야 했지만, 정작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름 없는 덩어리와 주름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익숙한 것들을 빌려왔다.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Hippocampus)는 바다의 해마를 닮았고, 공포와 정서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도체(Amygdala)는 그리스어로 아몬드를 뜻한다. 멜라토닌을 분비하는 송과선(Pineal Gland) 역시 작은 솔방울을 닮았다. 신기한 일이다. 인간이 발견한 가장 복잡한 기관의 지도 안에는 해마와 아몬드, 솔방울이 함께 살고 있다. 과학은 객관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믿지만, 정작 뇌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자연과 상상력에서 태어난다.
3. 뇌의 90%는 어디로 갔을까
뇌만큼 많은 소문을 달고 다니는 기관도 드물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인간은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남은 90%를 깨우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은 수많은 영화와 자기계발서의 단골 소재가 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MRI 촬영만 봐도 우리는 걷고, 말하고, 기억하는 동안 뇌의 다양한 영역을 끊임없이 사용한다.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 역시 상당 부분 과장된 개념이다. 실제 뇌는 좌우가 나뉘어 경쟁하기보다 함께 협력하며 작동한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뇌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 대한 환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능력, 숨겨진 천재성, 잠재된 초능력 같은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물론 모든 믿음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처리할 때 일부 유사한 신경 회로를 사용하며, 그래서 꿈에서 본 장면을 실제 경험으로 착각하는 데자뷔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호두 역시 뇌를 닮았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메가-3 지방산과 항산화 성분 덕분에 실제로 뇌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완전한 거짓도, 완전한 진실도 아닌 셈이다.
4. 카프 박사의 머리는 왜 그렇게 컸을까
로보트 태권브이 만화 속 카프 박사, 유투브 캡쳐
어린 시절 만화에는 이상한 공식이 있었다. 똑똑한 과학자는 이마가 넓었고, 천재는 머리가 컸으며, 악당 과학자는 머리가 엄청나게 컸다. ‘로보트 태권 V’의 카프 박사는 정확히 그 계보에 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거대한 머리는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 ‘천재’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시각적 언어였다. 근육이 많은 캐릭터의 팔을 크게 그리듯, 뛰어난 지능 역시 머리 크기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머리 크기와 지능은 단순한 비례 관계가 아니다. 사람의 지능은 뇌의 크기보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얼마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카프 박사의 머리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거대한 두개골은 단순히 높은 지능이 아니라, 끝없이 생각하고 계산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천재라서 머리가 큰 줄 알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것은 생각이 너무 많아진 인간의 초상화에 가깝다.
5. 늙어가는 뇌와 숏폼의 시대
뇌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변한다. 특히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 중 하나가 해마다. 바다의 해마를 닮은 이 작은 구조물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사건의 순서와 맥락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누군가와 어디서 만났는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기억하는 능력도 대부분 해마 덕분이다. 해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기억은 저장되지 않는다. 술을 과하게 마신 다음 전날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블랙아웃 현상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말하지만, 사실 필름이 지워진 것이 아니다. 알코올이 해마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면서 애초에 기록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저장되지 않은 기억은 나중에 꺼낼 수도 없다. 문제는 술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기억보다 소비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다. 숏폼 영상은 끝없이 새로운 정보를 보여주지만, 대부분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다음 영상이 곧바로 이전 영상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해마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이미 저장된 기억을 반복해서 꺼내보는 것이다. 일기를 쓰고, 여행을 기록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행동이 모두 해마의 훈련이 된다. 기억은 저장 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꺼내고, 연결하고, 다시 떠올릴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을 유난히 자세하게 물어봐 주는 사람들은 꽤 특별한 존재다. “어제는 뭐 했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 같은 질문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다. 잊혀가던 기억을 다시 꺼내게 만드는 작은 호출 신호다.
6. 성인의 몸에 아기의 뇌를 넣으면?
영화 ‘가여운것들’ 태아의 뇌를 이식받은 여주인공 벨라 , 공식 영화 포스터
성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넣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벨라는 성인의 몸을 가졌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갓 태어난 아이에 가깝다. 돈도 처음 보고, 사랑도 처음 보고, 권력도 처음 본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규칙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동시에 그 규칙들이 얼마나 이상한지도 가장 먼저 발견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괴물이나 천재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벨라의 눈에는 어른들이 너무 많은 규칙을 가진 존재처럼 보인다. 돈에 집착하고, 체면을 지키고, 사랑에도 조건을 붙인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것들 대부분은 사실 뇌가 오랜 시간 학습한 결과에 가깝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뇌가 바뀌자 세계 전체가 새롭게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뇌가 번역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7. 뇌의 맛
뇌와 호두 Brain and Walnut , Getty Images
생각해보면 인간은 꽤 오래전부터 뇌를 먹어왔다. 어떤 부족은 용기를 얻기 위해 적의 뇌를 먹었고, 어떤 문화는 동물의 지혜가 뇌에 담겨 있다고 믿었다. 생선 눈을 먹으면 눈이 좋아지고, 뇌를 먹으면 똑똑해진다는 믿음도 비슷한 계열에 속한다. 논리는 단순하다. 힘은 근육에서 오고, 지혜는 뇌에서 온다. 그렇다면 뇌를 먹으면 지혜도 함께 옮겨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뇌를 먹는다고 기억력이 좋아지지도 않고 수학을 잘하게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믿음 자체는 흥미롭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하는 기관을 특별한 것으로 여겨왔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상상했다. 실제로 프랑스에는 송아지 뇌 요리가 있었고, 터키에는 뇌 수프가 있으며, 파키스탄에서는 염소 뇌를 볶아 아침 식사로 먹는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뇌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뇌를 먹어왔다. 그래서 결국 뇌의 맛은 무엇일까. 요리사는 크림 같다고 말하고, 과학자는 지방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 가장 자주 맛보는 뇌는 접시 위에 있지 않다. 오래된 노래를 들었을 때 문득 떠오르는 학창 시절의 운동장, 첫사랑의 이름, 이유 없이 밀려오는 불안과 설렘 같은 것들이다.
8. 멍게와 개불
동대문 횟집 수족관 속 개불과 멍게 , 직접 촬영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멍게와 개불을 만나게 된다. 둘 다 횟집 수조에서는 흔한 생물이지만, 뇌를 대하는 방식 만큼은 인간과 정반대다. 멍게는 어릴 때 자유롭게 헤엄치는 유생이다. 눈도 있고 꼬리도 있고, 원시적인 형태의 신경계 뇌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바위를 찾으면 몸을 붙이고 정착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의 뇌를 흡수해 먹어버린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꽤 합리적인 선택이다. 뇌는 원래 철학을 하기 위해 생긴 기관이 아니다.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고, 어디로 움직일지 결정하기 위해 발달했다. 이동이 끝난 멍게에게 복잡한 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개불 역시 흥미롭다. 흔히 뇌가 없는 생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경계는 존재한다. 다만 인간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중앙 본부가 없을 뿐이다. 필요한 만큼 반응하고, 필요한 만큼만 움직인다. 수조 속 개불은 가끔 몸을 부풀리며 위로 둥실 떠올랐다가 다시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필요한 만큼만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가끔은 멍게와 개불이 부럽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왜 이런 기분인지 분석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존재한다.
Ryoji Ikeda , data-verse 1, 2019. Courtesy of the Artis and Audemars Piguet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자무싸’ 마지막 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Human Doing이 아니라 Human Being이라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고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선 존재하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멍게와 개불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실천하는 생물들이다.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않고, 무엇을 성취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곳에 있다. 물론 인간은 멍게가 될 수 없다. 뇌가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질문은 끊임없이 증식한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기분인지.하지만 잠시 ‘멍게 모드’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의미를 찾지 않고, 미래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 순간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인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뇌를 가진 동물이면서도, 가끔은 자기 뇌를 먹어버린 멍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Credit
- WRITER 류경진 jinjonjam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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