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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도시에서의 산책 'GTA'의 세계로 오세요

역대 최대의 단일 콘텐츠 수익을 올린 GTA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프로필 by 박세회 2026.05.27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게임은 뭘까? 관련한 머천다이즈까지 합하면 다른 답이 나오겠지만, 순수하게 게임 판매 금액만을 따지면 <GTA V>다. 출시 24시간 만에 약 8억 달러, 한화 약 8600억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단일 작품의 누적 매출로는 음악과 영화를 포함해 역대 모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높은 90억 달러, 한화 약 12조원을 돌파했다. 판매량은 마인크래프트에 이어 역대 2위다. 이 엄청난 관심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출시 예정인 <GTA VI>의 첫 트레일러는 공개 이후 유튜브 조회수 2억 5000만 뷰를 돌파했다. 게임 하나가 이토록 오랫동안,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마케팅의 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GTA>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늘 궁금해한다. 누군가와 대결하는 것도 아니고, 스테이지도 없고, 스코어도 없는 게임이 뭐가 재밌어?

비디오 게임을 연구하는 학문을 ‘루돌로지’라고 한다. 루돌로지는 라틴어 ‘루두스(ludus)’로부터 왔는데, 그 의미인즉 ‘놀이’라는 뜻이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풀기 전에, 놀이에 관한 조금 그럴싸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를 네 가지로 구분한다. 타인과 승부를 겨루는 ‘아곤’, 결과의 불확실성을 즐기는 ‘알레아’, 현실 감각을 잃을 만큼의 현기증을 느끼는 ‘일링크스’,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역할을 맡아보는 ‘미미크리’. 모두 어렸을 때 즐겼던 놀이를 떠올려보자.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놀이는 ‘아곤’일 것이다. 하지만 꼭 승패가 걸리지 않더라도, 그저 어울림의 분위기만으로도 즐겁지 않았을까? 잠시 ‘미미크리’의 작동도 생각해보자. 미미크리 놀이가 꼭 소꿉놀이만을 지칭하진 않는다. 어제 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따라 하는 행동, 좋아하는 가수의 창법을 흉내 내는 행위도 다 ‘미미크리’의 발현이다. 그렇다. 잠깐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다. 이런 변신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변신의 대상이야 필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변신한 내가 활약할 세계가 있어야 한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이번에 설명하려 하는 <GTA> 시리즈와 오픈월드라는 개념을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에 있어 오픈월드는 조금 독특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초기의 게임에서 세계는 선형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이머는 한 길로 이어지는 원통과도 같은 구조의 세계를 통과해야 했다. 세계는 스테이지라는 분절로 구성되어 하나를 해결하면 다음으로 넘어가게 된다. 오픈월드는 이러한 형식을 파기하는 구성이다. ‘세계(월드)’는 ‘열려(오픈)’ 있다. 플레이어인 나는 주인공이 되어 이 세계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물론 당면한 목표를 부여받긴 하지만, 그것을 먼저 처리할 필요는 없다. 원한다면 스토리 따위 무시하고 세계의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려도 된다. 이것이 오픈월드다.

물론 <GTA> 시리즈 전에도 오픈월드 게임은 있었다. 무한한 우주를 탐사하는 <엘리트>, 비록 공간적 분절은 있지만 판타지 세계를 비선형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울티마>나 <젤다의 전설>도 충분히 초기의 오픈월드 게임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GTA> 시리즈의 세계엔 차이가 있다. <엘리트>는 그 무한함을 해나 행성 같은 요소를 이용해 무작위로 만들어냈다. 따라서 세계에 ‘고정되어 있다’는 감각은 부재했다. 한편 <울티마>나 <젤다의 전설>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이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각종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반면 <GTA>는 현대의 도시라는, 고정되고 비적대적인 세계를 제공한다. 물론 주인공들은 언제나 범죄자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차를 훔치거나 타인을 공격해야만 한다. 그런 행위 결과, (별 마크로 표시되는) 범죄 단계가 증가하면 비로소 공권력이라는 적대성이 반응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세계가 먼저 적대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GTA의 공간은 생활성의 공간이다.

드론으로 내려다보는 감각의 톱뷰인 1, 2에서 벗어나 2001년의 <GTA III>에 이르자 3D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감각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물론 앞선 1999년에 세가의 <쉔무>가 마을 단위의 생활감을 먼저 구현해내기도 했으나, <GTA III>는 그보다 ‘더 다양한 행동을’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무차별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GTA> 시리즈의 생활감은 도시를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 세계는 이미 알고 있는 도시와 상당히 유사하다. 높은 건물이 있고,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사람이 있고, 지하철역도 있고…. <GTA>의 재미는 이렇게 ‘익숙하면서 적대적이지 않은 세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물론 시도 그 자체로만 끝나지도 않는다. 도시는 ‘나’의 행동에 반응한다. 누군가를 때리면 그 사람은 도망가거나 덤벼온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 도망자의 삶이 시작된다. <GTA>에는 표면적인 생활감 묘사와 더불어 그곳에 끼어들 수 있는 행동과 결과가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행동을 하면 합당한 기대 반응을 얻는 것이다. 이 세계의 반응이야말로 ‘미미크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어떠한 미미크리가 재미있는 반응을 이끌어낼까? 일단 게임의 요구대로 범죄에 투신해볼 수 있다. 평범하게(?) 행인을 때리고 자동차를 훔쳐서 내달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더 존재감 있는 범죄자처럼 굴고 싶다면 스토리를 진행하면 된다. 노르웨이의 비디오 게임 학자 루네 클레비어는 <컷신에 대한 변명>에서 “<GTA III>의 컷신(게임 플레이를 잠시 멈추고 영화처럼 스토리를 감상하는 파트)을 보면 영화 <좋은 친구들>이나 <밀러스 크로싱>과 같은 장르 세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썼다. GTA의 스토리는 복수, 조직 간의 경쟁, 암흑가의 성공 신화 등 상당히 흥미로운 범죄 드라마를 제공한다. 때때로 마주하는 분위기를 흐리는 황당한 미션은 오히려 게임적 흥미를 유지시키는 장치가 되어준다.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범죄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을 ‘미미크리’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범죄가 싫다면 세계에 흩뿌려진 다양한 미니게임들을 즐겨도 된다. 택시를 훔치면 기사가 되어서 돈을 벌 수 있다. 앰뷸런스를 훔친다면 환자들을 이송한다. 구난차를 타면 버려진 차를 견인해 센터로 배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최신작인 <GTA V>에서는 차량 미션이 다수 삭제되었다.) 그 외에도 특정 포인트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있다. 시리즈에 따라 다르지만, 도박이나 테이블 게임, 테니스, 골프 등을 마치 독립된 게임처럼 제공한다. 물론 합당한 보상을 챙겨주는 것은 덤이다. 마지막으로 운전이 중요한 게임인 만큼 레이싱도 즐길 수 있다. 레이싱에 타고 나갈 차는 널려 있으니 잘 골라잡으면 된다. 이 방법은 도시의 활동가라는 ‘미미크리’다. <GTA V>는 각 활동이 캐릭터의 성장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테니스를 열심히 치면 캐릭터의 체력이 상승한다. 역시나 ‘반응’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역시 ‘관광’이다. <GTA V>의 세계는 걷는다면 직선으로 1시간, 외곽을 돈다면 5시간이 걸리는 거대한 공간이다. 이 안에는 부촌과 빈민가가 있고, 거대 쇼핑몰이 있고, 해변과 운하가 있고, 코리아타운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GTA IV>는 특히 시민들의 AI를 상당히 정교화한 시리즈로 평가받는다. 행인들마저도 서로에 대해 반응을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로 부딪히면 싸우고, 한 명이 쓰러지면 구경꾼이 앰뷸런스를 부른다. 애석하게도 <GTA V>에선 상당히 간소화되었지만, 좋은 차를 보면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여전히 그럴싸한 반응을 보인다. 또한 <GTA> 시리즈 대대로 존재하는 라디오도 즐길 만한 요소다. 각 차는 차 주인에 따라 다른 주파수가 세팅되어 있고, 원한다면 주파수를 바꿔 듣고 싶은 방송을 들어도 된다. 게임이 제공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해변 도로를 드라이브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야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꽤 즐겁다. 가상 세계의 관광객으로 ‘미미크리’ 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다. <GTA>를 플레이한다는 것은 제작사가 제공하는 세계, 요한 하위징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법의 원’ 안에서 즐기는 ‘미미크리’의 집합이다. 다른 게임들처럼 주어지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스토리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이 선사하는 즐거움의 절반도 누리지 못한다. <GTA>는 살아있는 듯한 디지털의 세계를 제공한다. 이 재미가 오픈월드 게임의 특권이다. 생동감 넘치는 가상 세계를 어슬렁대는 것이 바로 열린 세계와 조응하는 핵심이다.

하지만 혹시 현실의 도시에 지나치게 물려서 <GTA>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는 늘 대안이 있다. 서부 개척시대를 다룬 <레드 데드 리뎀션>, 판타지 세계를 그리는 닌텐도 스위치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나 <티어스 오브 더 킹덤> 말이다. 각 역사의 대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도 좋은 선택이다. 만약 삼류 범죄자의 삶을 따라가는 게 별로라면 미래 도시에서 다양한 문제와 마주하는 <사이버펑크 2077>, 복수라는 목표를 위해 중세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 그리고 슈퍼히어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마블스 스파이더맨>을 권한다.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든 상관없다. 세계의 강제성에 저항하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세계를 즐길 마음만 있다면 준비는 충분하다.

드라마 <빅뱅이론>의 주인공 셸든은 연인 에이미와 갈등이 생기자 <레드 데드 리뎀션>을 켜고 게임 속에서 산책을 즐긴다. 시트콤에 걸맞은 우스꽝스러운 설정 같지만, 사실 이보다 더 올바르게 그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없다. 가상의 산책이라도 그것이 나에게 안식을 준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미미크리’다. 그럼, 그랜드 투어리즘 아케이드에서 좋은 여행 되시길.


이선인은 게임과 만화 평론가다. 게임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지만 되도록 혼자 하는 쪽을 즐긴다. 지금은 게임, 만화, 영화에 관해 썰을 풀거나 강의를 하며 살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이선인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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