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시스의 마침내!
제네시스가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출전한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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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코너에서 저 제네시스를 따라잡을 수 없는지 모르겠어!” 이몰라 서킷(Imola Circuit) 피트에 앉아 있던 엔지니어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다급한 레이서의 목소리. 이 짧은 무전이 담긴 중계 영상이 SNS에서 순식간에 퍼져 나간 이유는 간단하다. 제네시스 하이퍼카와 격차를 좁히지 못해 당황하던 주인공이 페라리 499P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페라리는 르망 내구레이스 탄생 100주년이던 2023년에 화려하게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최고 클래스로 복귀하자마자 보란 듯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작년까지 3연패를 기록한 레전드 팀이다. 이토록 놀라운 기록을 세운 페라리의 499P의 일거수일투족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애당초 모터스포츠의 영역에서 페라리와 제네시스가 한 문장 안에 거론됐다는 것만으로도 생경한 일인데, 페라리가 제네시스 차량을 두고 ‘찬사’를 보냈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제네시스가 출범한 고성능 브랜드 마그마 레이싱팀은 가장 치열한 내구레이스 시리즈에 한국차 최초로 도전장을 던졌고 지난 4월 WEC(World Endurance Championship) 개막전인 이몰라 레이스를 완주한 것으로도 모자라 5월 스파-프랑코샹 내구레이스에서는 깜짝 8위를 기록하며 데뷔 두 경기 만에 탑10에 진입해 포인트를 획득했다. WEC가 신규 참가자에게 불리한 BoP(Balance of Performance)를 적용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잠시 BoP에 대한 설명을 짚고 넘어가자.
과거의 레이스가 ‘누가 더 돈을 많이 써서 빠른 차를 만드느냐’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의 하이퍼카 클래스는 철저한 규제 속에서 효율성을 올리는 싸움이다. FIA(국제자동차연맹, WEC를 관장한다)와 ACO(프랑스 서킷 협회, 르망 24시를 운영)는 서로 다른 엔진 배기량, 실린더 수, 하이브리드 방식을 가진 다양한 제조사 차량들이 큰 편차 없는 랩타임 격차로 경합을 유도하기 위해 BoP를 팀마다 다르게 적용하여 각 차량의 성능을 강제로 조율한다. 중량과 하이브리드 엔진 출력을 RPM 구간별로 촘촘하게 통제해 너무 빠른 차는 느리게, 너무 느린 차는 빠르게 조정하는 식이다. BoP는 특정 팀의 독주를 막아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신생 팀에게는 거대한 장벽이다. 차량의 에어로다이내믹 특성과 타이어의 마모도, 엔진의 매핑을 BoP가 허용하는 좁은 구역 안에 정확히 밀어 넣으려면 방대한 실전 데이터와 노련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마그마팀이 초반 레이스에서 최하위권으로 완주한 것도 이 복잡한 BoP 규정에 적응하며 최적점을 찾아가는 성장통인 셈이다. 또한 스파-프랑코샹은 직선 주로가 무척 길고 초고속 코너에 가파른 오르막이 벽처럼 펼쳐지는 ‘오-루즈’ 코너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출력이 목마른 트랙이다. 그렇기에 얼마 전 이곳 6시간 내구레이스에서 보여준 제네시스 팀의 성적은 BoP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내구레이스에 맞는 경기 운영 전략과 판단, 거기에 행운까지 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마그마 레이싱팀의 GMR-001 LMDh(Le Mans Daytona h) 하이퍼카는 모터스포츠 전문 섀시 제조사인 오레카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든다. WEC의 최상위 클래스는 제조사가 모든 것을 독자 개발하는 LMH(Le Mans Hypercar)와 정해진 섀시 제조사의 골격을 바탕으로 파워트레인과 공기역학적 외형만 제조사가 제작해 얹는 LMDh로 나뉜다. 제네시스 마그마는 LMDh 쪽이다. 초기 섀시 개발 리스크와 제작 기간, 그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LMH와 달리 LMDh는 비용은 줄이면서도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 그리고 차량의 외관 디자인에 기술력과 정체성을 입맛대로 투영할 수 있다.
사실 현대자동차는 이미 다양한 모터스포츠 경험을 쌓아왔다. 양산차 기반의 TCR 투어링카 레이스와 사륜구동 랠리인 WRC 무대를 모두 평정했다. 하지만 모두 가로 배치 전륜구동 자동차 베이스로 다져진 대중적 모델을 활용한 결과였다. 반면 제네시스 마그마는 전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많이 만들어 본 적 없는 미드십 세로 배치 V8 엔진 방식을 쓴다. 레이싱에 적합한 V8 엔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현대자동차는 WRC에서 사용하던 직렬 4기통 1.6L 엔진 둘을 나란히 배치해 하나로 연결해 마그마 GMR 001 차량에 심었다. 하이퍼카 클래스 V8 엔진 치고 비교적 배기량이 작은 편(3.2L)에 속하는 이유다. 참고로 캐딜락 V8은 5.5L, BMW V8은 4.4L다.
처음 이몰라에서 GMR 001이 달렸을 때 묘하게 WRC 랠리카의 사운드 트랙이 연상됐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험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WRC에서 담금질한 엔진이니 팀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개발 부담이 대폭 줄었을 것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 역시 LMDh 규정에 따라 공통 규격의 보쉬 MGU, 윌리엄스 배터리, 레이스 전용 엑스트랙 기어박스가 결합된 구조라 단기간에 파워트레인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건 ‘그래서 제네시스가 르망 24시에서 포디엄을 노려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몰라와 스파에서 연달아 완주를 기록했다고 해서 이어지는 르망 내구레이스에서 쉽게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긴 이르다.
드라이버로서 10년 전부터 뉘르부르크링 내구레이스에 도전해오며 깨달은 점이 한 가지 있다. 24시간 자동차가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내구레이스는 무조건 문제가 터진다는 사실이다. 24시간 레이스에 다섯 번을 출전했으나 한 번도 계획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다. 운이 좋다면 관중이나 중계진도 모르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기술적 문제로 그칠 수 있다. 때로는 피트 박스 안으로 밀려 들어가 분주하게 엔진룸에 얼굴을 파묻는 미캐닉들의 표정을 읽어가며 초조함을 달래야 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스틴트(피트에서 출발해 다음 피트인까지의 운행 파트, 드라이버 교대나 재급유의 기준이 된다.) 교대 전략도 시간 단위로 바뀐다. 레이스 도중 옐로 플래그 발령 구간에 따라 연료와 타이어 소비량 역시 변화무쌍하다. 결국 문제가 얼마나 작은가,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가에 승부가 달려 있다. 24시간 레이스는 고쳐가며 달리는 레이스에 가깝다.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크랙 하나로 시작한 균열이 종료 한 시간을 남겨두고 심각한 결함으로 이어지면서 사고를 발생시키는 게 내구레이스의 드라마다. 독일에선 타이어 펑처로 피트까지 복귀하기 힘들 시나리오를 대비해 트랙 중간쯤 펜스 뒤에 스페어 타이어를 숨겨두는 팀도 봤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 덩어리가 뿜어내는 지독한 열기,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버텨낼 수 있는 물리적 한계의 임계점 끝에서 24시간 동안 벌이는 처절한 ‘생존 보고서’에 가깝다.
게다가 르망 24시 내구레이스가 열리는 사르트 서킷은 경기장 자체부터 범상치 않다. 사르트 지역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공도 구간과 상설 트랙인 부가티 서킷 일부가 약 2:1 비율로 혼합된 13.6km 길이의 기다란 서킷에서 열린다. 공도는 말 그대로 평상시 시민들이 이용하는 2차로 도로다. 다만 갓길 구간이 넓어 4차로 폭이 나오는 구간이 대부분이다. 중간중간 회전 교차로가 있는데 이 구간을 활용해 시케인처럼 우회하여 달린다. 르망 경기가 없는 평일이면 출퇴근하는 차량들과 자전거를 탄 행인, 조거들이 뒤섞여 달리는 한가한 도로다. 연중 단 하루, 르망 레이서들은 제한속도 표지판보다 다섯 배쯤 빠른 속도로 공기를 찢으며 사라진다. 평균 속도가 매우 높은 고속 트랙, 그래서 르망은 파워트레인에 걸리는 최대 부하 시간 비중이 그 어느 트랙보다도 높다. 특히 하이브리드 기반의 하이퍼카들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며 MGU, 배터리, 구동 모터 온도를 위태롭게 끌어 올린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엔진과 터보차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전자제어 장비들을 고열에 장시간 노출시켜 에러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날씨를 비롯한 모든 상황이 최적의 조건이라고 가정했을 때 르망 내구레이스는 24시간 만에 약 5000km를 달린다. 그 사이 트랙 노면 조건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고로 인한 데브리(차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가 쌓이고 어둠이 내리고 비구름이 몰려온다. 르망 경기가 열리는 기간은 보통 비가 내리는 경우가 잦은데 울퉁불퉁하고 좁은 시골길을 오직 헤드램프에만 의지해 시속 300km로 달리는 선수들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경외감을 갖게 된다. 얼마나 맹렬하게 달리는지 차 뒤로 치솟는 물보라가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다.
드라이버들 역시 장시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24시간 완주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건 다른 클래스와의 트래픽이다. 하위 클래스 LMP2나 LMGT3 등의 다른 차량들과 함께 달리기 때문에 코너링 중 라인이 겹치는 경우, 혹은 다른 납작한 하이퍼카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코너로 진입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한다. 사르트 서킷은 일반 도로 가장자리에 펜스를 세운 구간이 많아 스핀해도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별로 없다. 스치는 듯한 콘택트 한 번으로도 마그마는 레이스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건 마그마 레이싱팀의 견고한 인적 자원 덕이다. 시릴 아비테불 감독부터 드라이버 라인업까지, 이미 이들은 지난 두 경기를 통해 유연한 순발력과 기지를 보여줬다. 이번 르망에서 제네시스 마그마가 꼭 해주었으면 하는 목표는 완만한 페이스 조절을 통한 ‘완주’다. 정확히는 성적을 위한 완주가 아니다. 24시간 동안 언제 어디서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 할 테스트베드로서의 활용을 위한 완주가 필요하다. 르망은 절대 첫 출전 팀에게 우승컵을 내어주는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다. 아무리 이몰라와 스파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해도, 24시간 레이스는 6시간 내구레이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내구성을 요구한다. 과연 제네시스의 붉은 두 줄은 무사히 어둠을 헤치고 르망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긴 어둠을 견디고 살아남기만 해줘도 뭉클할 것이고, 전통 강호팀 몇 군데를 눌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
강병휘는 자동차 브랜드 매니저에서 카레이서로 변신한 아주 드문 남자. 챔피언 드라이버나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매체의 신차 리뷰와 성능 비교 테스트 콘텐츠 등에 출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스테이션B>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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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박세회
- WRITER 강병휘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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