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빅뱅과 나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빅뱅의 코첼라 무대를 보며 너무 많은 것을 느껴버린 한 음악평론가의 이야기.

프로필 by 박세회 2026.05.27

스물다섯 번째 코첼라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로 빅뱅의 무대를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디오 사막에서 두 번째로 큰 아웃도어 스테이지에 선 지드래곤, 태양, 대성의 무대를 계속 곱씹고 있다. 그 무대 말고 다른 멋진 무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깜짝 게스트 마돈나의 귀환을 예고한 사브리나 카펜터의 무대는 근사했다. 대규모 야외 페스티벌에서 노트북을 연결해 인터넷 스타로의 출발을 되새긴 저스틴 비버의 담백한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대단히 정치적이었던 스트록스와 디페쉬 모드를 연상케 하는 새로운 음악을 들고 나온 나인 인치 네일스의 프로젝트도 혁신적이었다. 케이팝 최초로 한국 남성 솔로 아티스트로 무대에 오른 태민은 무려 6개의 미공개 곡을 공개하며 새로운 도전에 불을 지폈다. 화려하고 빛나는 수많은 음악 이벤트 가운데 빅뱅의 이름이 아른거린다면, 그건 이 공연이 재미있는 추억을 넘어 어떤 의미를 담은 순간으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빅뱅으로부터 자유로운 케이팝은 없다. 창작하는 보이 그룹이라는 범상치 않은 시작에서부터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음악 장르를 신속하게 결합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기승전결 뚜렷한 팝송을 만들며 시대를 장악했다. 가장 세련된 그룹이 가장 통속적인 멜로디를 자신만만한 태도로 노래했다. 지디 앤 탑의 선명한 랩 콤비 플레이를 바탕으로 재능이 빛나는 보컬 멤버들이 다 함께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떼창’ 코러스를 완성했다. 한국화된 시부야계, 이른바 ‘케이-시부야케이’의 유행을 선도한 ‘거짓말’과 ‘하루하루’부터 전 국민이 따라 불렀던 ‘붉은 노을’, EDM 대유행의 시대에 발맞춘 ‘Tonight’과 ‘Fantastic Baby’, YG엔터테인먼트의 스타일을 완성한 ‘MADE’ 시리즈와 후속 싱글까지 빅뱅의 음악은 언제나 대성공이었다.

빅뱅은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그룹이었다. 단지 아이돌 그룹이라서는 아니었다. 빅뱅의 전성기를 관통하던 십 대 시절 나와 친구들에게 동방신기나 더블에스오공일, 슈퍼주니어는 잘생기고 춤 잘 추는 멋진 연예인이었다. 빅뱅은 달랐다. 음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지드래곤처럼 재치 있는 가사를 쓰고, 탑처럼 허스키한 목소리로 랩을 뱉고 싶어 했다. 미국 빌보드 차트를 챙기던 친구들은 태양에게서 어셔나 니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유쾌한 대성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를 웃겨주었고, 그 쾌활함을 트로트 사이드 프로젝트로 이어가며 수련회 장기자랑 단골 노래를 선물했다. 엄청난 죄를 짓고 인생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그 사람’도 당시에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막내였다. 아이콘과 위너 같은 소속사 직속 후배들부터 방탄소년단,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등 프로듀싱을 꿈꾸는 보이 그룹들의 목표는 언제나 빅뱅이었다. 심지어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인기 래퍼 나우아임영에 이르기까지 빅뱅의 영향력은 한국 힙합과 전자음악 신에도 지대하다. 음악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까지 뻗어나갔다. BTS 이전에 케이팝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만든 유일한 그룹이 바로 빅뱅이다.

코첼라 아웃도어 스테이지에 모인 팬들은 그 시기를 기억하는 집단이었다. 교포 및 유학생 네트워크와 그 인근에서 한국적이라 여겨지는 음악을 들으며, 응원봉이나 단체 응원 같은 케이팝 문화가 처음 번지던 시기를 말이다. 이 베테랑 케이팝 보이 밴드는 그 무대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20주년을 맞은 그룹은 봉사하기 위해 스테이지에 올랐다. 새로운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본인들의 솔로 프로젝트를 예고하거나, 곧 발표할 기념 앨범을 소개하는 순서는 없었다.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걸어온 시간,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자리였다. 데뷔 싱글 ‘눈물뿐인 바보’부터 ‘거짓말’, ‘Fantastic Baby’, ‘Bang Bang Bang’, ‘Loser’, ‘We Like 2 Party’, ‘맨정신’…. 지구 반대편 유튜브 생중계로도 전해지는 히트곡의 힘이 상당했다. 그나마 신곡인 것이 대성이 지난해 말 발표한 트로트 싱글 ‘한도초과’였는데, 부르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영화 <빽 투 더 퓨쳐>의 들로리안 타임머신을 탄 듯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질주하는 무대의 흐름상 트로트 타임이 올 줄은 알았다. 그렇다 해도 휘황찬란한 금빛 물결과 함께 “안녕하세요, 대성입니다”를 백스크린에 대문짝만하게 전시하며 능청스럽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트로트 넘버를 열창하는 대성의 모습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역설적으로 대성의 쉰 목소리는 지금이 2016년이 아니라 2026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섯이어야 할 무대 위 주인공은 세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XX는 당연히 빠지는 게 맞다. 하지만 ‘다중관점’으로 가요계 컴백을 선언한 탑의 빈자리는 컸다. 1주차 라이브에서 지난해부터 라이브 컨디션에 대한 우려를 빚고 있는 지드래곤과 대성의 가창이 완벽하지 않아 더욱 그의 공백이 두드러졌다. 세월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유일하게 구설수가 없는, 이름 그대로 빛나기만 한 태양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니가 사랑하는 나는 Sorry I’m a Bad Boy”라 노래하는 ‘Bad Boy’가 뭉클했다. 2012년 자유로운 연애관을 대변하던 패기 넘치던 청년들이 20년 차 아티스트로서 숱한 우여곡절에 대해 팬들에게 사과하는 듯한 따뜻함이 있었다.

이 지점이 빅뱅의 코첼라 무대가 케이팝에 시사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나는 케이팝이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이 산업은 처음부터 끊임없이 젊음을 공급하고 찬란한 전성기의 기억을 재현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식으로 작동해 왔다. 무대 위 청춘을 불태웠던 아이돌들이 프로젝트성으로 모여 단기 투어나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 혈기 왕성했던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려 한다. 관절은 굳었고, 목은 상했다. 무대 위에서 예전의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팬들도 가수도 안다. 빅뱅의 코첼라 무대를 지켜봤던 이들 가운데 이 셋에게 여전한 역량을 증명하라고 가혹하게 요구했던 팬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빅뱅의 무대는 이런 딜레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굳이 휘청이는 음정을 보정하거나 페스티벌의 흥을 깨는 립싱크를 하지 않았다. 후렴부는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게 관객에게 넘겨주고, 추억이 담긴 노랫말도 대중에게 주도권을 양보했다. 나는 여기서 2015년의 본 조비 내한 공연이 떠올랐다. 당시 2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본 조비에게 팬들은 그가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고음불가의 ‘Always’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본 조비가 결국 그 노래를 불렀다. 팬들에겐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잘 부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노래는 우리가 다 불렀으니까. 그때의 감동이 2026년 유튜브 화면 속 빅뱅에게도 있었다.

케이팝에 나이 드는 경로가 아예 없지는 않다. H.O.T.는 여전히 특별 무대에 오른다. KBS 대기획 스테이지를 준비한 지오디도 있다.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처럼 따로, 또 같이 길게 활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동방신기는 얼마 전 일본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상징적인 닛산 스타디움에서 경력의 이정표를 세웠다. 빅뱅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자체 프로듀싱을 하는 그룹이라는 출발점부터 20주년 기념 앨범을 내는 지금까지 빅뱅은 계속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야 하는 야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 지드래곤의 ‘위버멘시’와 올해 탑의 ‘다중관점’이 보여준 모습은 올해 코첼라 무대에서 내가 발견한 메시지와는 달랐다. 니체의 초인이 되고 싶었던 ‘위버멘시’는 시간과 한계를 뛰어넘어 초월하고자 하는 야망이 돋보이는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음악은 그렇지 못했다. 앤더슨 팩, 나일 로저스, 다이앤 워런이라는 호화로운 객원 라인업을 동원하고도 음악적으로는 지드래곤 최악의 작품으로 남았다. “난 떠나 빅뱅!”이라 외친 탑의 솔로 데뷔작은 어떤가. 복귀 자체를 안 하겠다던 마음이 누그러진 것은 반갑고,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라는 다짐도 좋다. 하지만 그의 랩 디자인과 표현, 음악의 방향은 거부하려 해도 ‘MADE’ 시리즈와 찬란한 과거 전성기, 그리고 잃어버린 30대를 반추하고 있다. 시간을 외면하려는 두 아티스트의 회피는 상업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공허함만을 남겼다.

코첼라에서의 시간이 모두를 치유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룹의 마지막 노래는 “정들었던 내 젊은 날 이제는 안녕”이라 인사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지드래곤, 대성, 태양이 서 있는 위로 탑의 목소리가 원곡 그대로 흘러나왔다. 빅뱅은 그 빈자리를 애써 메우지 않았다. 코첼라의 메인 스테이지에는 보통 피처링이 함께하기 마련인데, 빅뱅은 그 흔한 객원 가수 하나 부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빅뱅의 노래를, 빅뱅의 히트곡답게 불렀다. 그리고 부둥켜안으며 역사적인 인디오 사막에서의 밤을 만끽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들의 노래 속에서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이 왔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스무 번 도는 시간 동안 그들을 지켜봤던 나의 마음도 어떤 기점을 돈 듯 새로운 감동으로 차올랐다. 나에게도 빅뱅의 겨울이 있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날린 적도 있고, 그들의 멤버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에 대해 크게 실망한 적도 있다. 코첼라의 빅뱅은 다시 봄이었다. 솔로 프로젝트에서는 내려놓을 수 없었던 혁신과 젊음에 대한 욕심,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대신 모두가 함께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환희만이 있었다. 내심 앵콜로는 ‘Last Dance’를 불러주길 바랐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도 저물고….” 20년 전 패기 넘쳤던 소년들처럼 기뻐하는 셋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을 쓰며 그들의 데뷔 싱글 중 하나였던 ‘Bigbang’을 듣고 있다. “자! 새로운 시대로 가자, 이건 우리들만의 party야.”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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