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군체'까지, 연상호 감독이 계속해서 좀비영화를 찍는 이유
개봉 5일 만에 200만 돌파, <군체> 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 그가 10년간 끊임없이 좀비를 소환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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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최단기간 흥행 기록을 세웠다. <서울역>, <부산행>, <반도>에 이어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네 번째 좀비물이다. 대중은 그를 K-좀비 장르의 대표 격으로 인식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전체 커리어를 보면 특정 장르에만 매몰된 감독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연출작만 한 해 평균 2편, 각본과 기획까지 포함하면 3~4편을 소화하는 다작형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그가 참여한 그래픽노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는 총 39편에 달한다. 이처럼 방대한 필모그래피 속에서 그가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지속적으로 변주해 온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정의하는 좀비의 속성과 각 작품이 지닌 사회적 은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상호 감독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서 본인이 좀비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좀비는 악의가 없이 본능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좀비는 서사를 이끄는 절대적인 악인이라기보다, 인간을 극한의 한계로 몰아넣는 환경적 위기 장치에 가깝다. 장르적 공포 그 자체보다 좀비로 인해 발생한 통제 불능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역학 관계가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은 첫 좀비물이었던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부터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 작품은 바이러스의 기원이나 해결책을 추적하는 대신,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를 철저히 외면하고 격리하려는 냉혹한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고발하는 데 집중했다.
<부산행> 포스터 / 사진제공: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은 이러한 인간 군상의 이면을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풀어낸 결과물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군체> 시사회에서 “작품을 해오면서 가장 관심 있는 건 휴머니즘이었다”고 언급했다. <부산행>은 극단적인 재난 앞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숭고한 인간성의 대립을 영화의 뼈대로 삼는다.
일부 장르 팬들은 후속작인 <반도>에서 좀비의 비중과 타격감이 줄어들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으나, 이는 연상호 감독이 지향하는 클래식 좀비물의 특징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부산행>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좀비물의 핵심은 바로 좀비가 지닌 사회적인 함의라고 생각해요. 요즘의 좀비물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백신은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다루는 반면 고전적인 좀비물은 오히려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죠.”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어 좀비가 일종의 기후나 환경처럼 고착화된 <반도>의 세계에서, 그는 좀비의 파괴력보다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야만성과 생존 방식에 주목한다. 백신을 찾기보다 그 안의 인간을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그가 정의하는 고전적 좀비물의 본질이다.
<군체> 포스터 / 사진제공: 쇼박스
최신작 <군체> 역시 초기 기획 단계부터 좀비 영화를 목적에 두고 시작된 작품이 아니다. <군체> 시사회에서의 언급에 따르면, 영화의 출발점은 인공지능의 구동 방식에 대한 감독의 지적 호기심과 기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애초에 좀비 영화 만들려고 한 건 아니다. 당대의 잠재적 공포가 뭔지를 고민했다. 초고속 정보 교류로 생기는 집단 사고, 거기서 느껴지는 개별성의 무력함을 생각했다. 작품의 시작은 AI가 구동되는 원리가 재미있어서 보다가 인공지능이 보편적 사고의 총합 같은 느낌이더라. 그렇다면 그 힘이 너무 세지면 개별성이 무력해지는 거 같더라. 역으로 AI의 세상, 집단 지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다움이란 개별성이 아닌가 싶어서 생각해봤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군체> 속 좀비의 생태적 변화로 직결된다. 이번 작품의 좀비들은 무지성으로 폭주하는 개체가 아니다. 이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인간의 전술을 학습하며, 도구를 조작하고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는 등 집단지성 형태로 움직인다. 개성이 사라진 채 보편적 사고의 총합으로만 구동되는 이 진화형 좀비들은, 초고속 정보 교류 속에서 집단 사고에 매몰되기 쉬운 현대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기술적 은유다. 감독은 집단지성이 지배하는 시스템 안에서 역설적으로 개별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가치라는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연상호 감독이 10년간 좀비 세계관을 확장해 온 궤적은 장르적 재미의 반복에 머물지 않는다. 약자를 외면하는 시스템, 위기 속의 이기심과 휴머니즘, 문명 붕괴 후의 야만성을 거쳐, 기술 지배 사회의 집단 사고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루는 좀비는 당대의 사회적 공포를 비추는 반사판이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좀비 영화를 찍는 이유는, 악의 없는 괴물들의 폭주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인간성의 현주소를 가장 직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Credit
- 인터뷰 출처
- 파이낸셜포스트
- 메트로신문
- 이미지 제공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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