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민과 베자르 발레 로잔 공연의 사진이 드디어 공개됐다
이 사진들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 공연 때의 소름이 다시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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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의 '멜로디' 역을 맡은 무용수 김기민의 모습.
서울 GS아트센터에서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펼친 내한 공연이 뜨거운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BBL의 서울 무대는 무려 25년 만의 귀환이었다. 그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 '현대 발레의 혁명', '경계를 허문 무용단', '전통과 전위가 공존하는 성지'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김기민과 베자르 발레 로잔(Béjart Ballet Lausanne·BBL)이 볼레로를 공연한 지난 25일 5시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끝나고, 거의 모든 청중이 기립해 환호했고, 커튼콜이 너무 오래 이어져 횟수를 세는 것을 잊어버렸다. 서울 GS아트센터에서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펼쳐진 베자르 발레 로잔의 내한 공연은 9분만에 전석이 매진됐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공연이었기에 이런 난리가 난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촬영이 금지됐던 이날 공연의 분위기를 주최측이 공식 배포한 사진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해보자.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의 '멜로디' 역을 맡은 무용수 김기민의 모습.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1927~2007)가 196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20세기 발레단'(Ballet du XXe Siècle)으로 출발해, 1987년 스위스 로잔에서 재창단한 BBL은 전통 발레의 우아한 틀을 깨부수고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와 철학적 사유를 무대 위에 올려놓은 혁명적인 발레단이며 세상의 모든 발레단 중 순수 예술 그중에서도 동시대 예술에 가장 가깝다.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의 '멜로디' 역을 맡은 무용수 김기민의 모습.
발레단이 수천 석의 대형 공연장을 관객으로 가득 채우는 걸 본 적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들의 위상을 체감하기 쉽다. BBL은 도쿄 NHK홀,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아테네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 팔레 데 콩그레 드 파리처럼 수천 석을 자랑하는 거대한 공간을 매진으로 채울 수 있는 세계 극소수의 무용단 중 하나다. 세계 3대 발레단으로 불리는 파리 오페라 발레는 다른 무용단을 잘 초청하지 않기도 유명한데, BBL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초청받은 네 번째 무용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 이후 수십년 동안 반복 초청받았다.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의 '멜로디' 역을 맡은 무용수 김기민의 모습.
BBL의 레퍼토리는 그 자체로 현대 무용의 교과서다. <봄의 제전>, <제9 교향곡>, <Ballet for Life> 등 굵직한 작품들이 세계 무대를 누비며, 이 레퍼토리들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볼레로>다.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의 '멜로디' 역을 맡은 무용수 김기민의 모습.
BBL 레퍼토리의 왕관인<볼레로>는 일종의 '제의(祭儀)'다. 무대의 형식부터가 그렇다. 모리스 라벨의 동명 음악을 바탕으로 1961년 초연된 이 작품에서 베자르는 클래식 발레가 그토록 집착하던 서사와 우아한 형식을 모두 지워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과 관능, 그리고 반복되는 멜로디와 리듬이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무대 중앙에 거대한 붉은 원형 테이블이 설치되고 그 위에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올라가 선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는 '라 멜로디(La Mélodie·선율)'가 되어 17분간 독무를 펼친다. 천천히 멜로디의 춤이 층위를 쌓으며 반복되는 동안 테이블 아래를 38명의 무용수들이 둘러싸고 멜로디의 춤을 대위하는 '리듬'이 되어 선율과 합일하는 음악의 형태를 완성한다.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의 '멜로디' 역을 맡은 무용수 김기민의 모습.
아마 누구라도 '볼레로'의 도입부를 들으면 '아 이 노래!'라고 외칠 것이다. 라벨이 악보에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적어 넣었다는 이 노래는 두개의 파트로 된 서른 두 마디의 동일한 선율이 18번 반복된다. 반복되는 동안 악기들의 구성이 변하며, 쌓이고 또 쌓여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폭발한다. 39명의 무용가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관능의 에너지가 마치 눈에 보이는 듯 화산의 용암처럼, 화산재처럼, 버섯 모양의 핵운처럼 폭발한다.
'햄릿'의 커튼 콜.
베자르는 두스카 시프니오스에게 영감을 받아 '라 멜로디'를 만들었으며, 그 역할을 단순한 주인공이 아닌 신과 인간을 잇는 사제(司祭)로 설계했다. 처음에는 여성 무용수만을 위한 역할로 만들어졌으나, 1979년 전설적인 발레리노 호르헤 돈(Jorge Donn)이 이 자리에 오르면서 성별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역할로 확장됐다. 이후 실비 기옘(Sylvie Guillem) 등 무용계의 살아있는 신화적 인물들만이 이 '붉은 제단'에 오를 수 있었다. 모리스 베자르 재단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허락되는 '라 멜로디' 역을 맡는다는 것은 곧 시대가 인정한 최고의 무용수라는 증명이다.
'햄릿'의 한 장면.
이번 공연에서 이 계보를 이은 김기민(34) 역시 이미 전설이다.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 남자. 특히 이번에 '라 멜로디'를 맡는 것 역시 한국인으로서 최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김기민은 해외 유학 한 번 없이 국내에서 기량을 연마한 뒤, 2011년 동양인 최초로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해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올랐다.
'햄릿'의 한 장면.
15년간 마린스키의 거의 모든 레퍼토리에서 주연을 섭렵한 그는 이미 세계 발레계에서 '마린스키의 별'로 불리며 확고한 위치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극적이었다. 지난해 11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잠시 무대를 떠났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백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볼레로>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마린스키의 빽빽한 공연 일정 탓에 번번이 성사되지 못하던 '꿈의 역할'이 부상이라는 예기치 못한 계기로 현실이 됐다. 준비 과정도 범상치 않았다.
'햄릿'의 한 장면. 오필리아 역을 맡은 이민경의 그량 쥬떼.
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볼레로>의 특성상 안무 순서를 익히는 것 자체가 극난이도의 과제인데, 김기민은 오케스트라 전체 연주를 통째로 외워버리는 방식으로 이를 돌파했다. 예를 들어 멜로디를 연주하는 목관은 플루트에서 클라리넷, 바순으로 이어지는데, 이처럼 악기의 등장 순서를 전부 기억해두면, 음악만 들어도 동작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07년 베자르 타계 이후 한때 볼레로의 멜로디 역할을 맡기도 했던 안무가 줄리앙 파브로(Julien Favreau)가 예술감독의 바톤을 이어받아 베자르의 유산을 지키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BBL은 파브로 감독의 지휘 아래 <볼레로>를 비롯 <불새>, <햄릿>, <라 루나> 등 BBL의 무용 철학을 보여주는 레퍼토리의 정수들을 한국 관객 앞에서 펼쳐 보였다. 한편 BBL의 유일한 한국 단원인 이민경은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아 매력적인 연기와 춤을 선보였다.
줄리앙 파브로(왼쪽)는 <햄릿>에서 죽은 왕의 유령 역을 맡았다.
Credit
- PHOTO (주)인아츠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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