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니첼 소시지 말고! 풍향고의 그곳, 비엔나 미식 여행의 모든 것
유재석 씨가 출연하는 유튜브를 통해 지금 가장 핫해지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비엔나 소시지와 슈니첼로 유명한 도시 비엔나. 그러나 막상 가보니, 우리는 이 도시의 광활한 미식 지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슈테파니 헤르크너의 레스토랑 ‘주르 헤르크네린’은 매일 영업하는 공간이 아니다. 특별한 행사를 열거나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 Stefanie Herkner
01 : 오스트리아의 진정한 가정식은?
」독일어인 그리스녹켈(Grießnockerl)의 뜻을 그대로 풀면 ‘세몰리나 덤플링’이다. 말 그대로 이탈리아 밀가루인 세몰리나(그리스)로 만든 덤플링(녹켈). 다만 우리가 아는 ‘만두’는 아니다. 속이 따로 없이 그냥 세몰리나 반죽으로 가득 차 있어서 뇨키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지난 1월 말 나는 레스토랑 ‘주르 헤르크네린’(Zur Herknerin)의 주방에서 슈테파니 헤르크너와 함께 이 오스트리아 뇨키를 만들고 있었다. 달걀 2개와 동량의 녹인 버터 그리고 그 두 배의 세몰리나 밀가루에 소금을 한 꼬집 뿌리고 맨손으로 싹싹 잘 섞은 뒤, 두 개의 유럽식 대형 스푼으로 마치 파인 다이닝에서 아이스크림을 낼 때처럼 럭비공 모양의 퀘넬 스타일로 쓱쓱 문질러 물에 삶았다.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에서 온 10명의 기자들이 다들 손에 스푼 두 개를 들고 내 퀘넬이 예쁘네 네 퀘넬이 예쁘네 자랑하는 모습은 참 유치원 같고 즐거웠다. 그리스녹켈은 물에 삶자 그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15분쯤 끓이자 두 배 반까지 불어났다. 이제 할 게 없다. 불을 끄고 식힌 뒤 맑은 양지 육수에 넣는다. 그게 끝이다. 그리스녹켈수페(Grießnockerlsuppe), 세몰리나 덤플링 수프는 이렇게나 간단하다. 물론 양지 육수를 우려내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육수를 한 번 대량으로 끓여놓기만 하면 라면보다 쉽다.
나는 이게 그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이 덤플링의 질감은 한중일의 온갖 만두와 국수로 단련된 까탈스러운 한국 출신 미식 기자인 나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숟가락을 찔러 넣으면 ‘쓱’ 하고 잘릴 정도로 부드럽고, 입에 넣으면 수프와 함께 스르륵 부서진다. 수프는 고기만 넣고 끓인 진한 곰탕을 생각하면 된다. 추운 겨울 영혼이 따뜻해지는 음식이다. “이게 바로 진짜 비엔나의 가정식이에요. 저희가 어릴 때는 이 그리스녹켈 수프를 먹고, 토프펜크뇌델로 식사를 마무리했죠. 그게 전부였어요.” 슈테파니가 말했다. 토프펜크뇌델은 크림치즈와 빵가루를 주재료로 버무린 뒤 물에 삶아 만든 디저트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슈테파니와 우리가 함께 만든 토프펜크뇌델은 감칠맛과 단맛이 풍부하고 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히 탄수화물인 상상하기 힘든 식감으로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다. 오스트리아라고 하면 비엔나 소시지와 슈니첼을 떠올리지만, 그것들이 비엔나의 가정에서 먹는 음식은 아니다. “슈니첼은 진짜 특별한 날에 공들여 해 먹거나 그냥 밖에 나가 전문점에서 사 먹는 음식이죠. 집에서는 그리스녹켈수페 같은 음식을 해 먹었죠.” 비엔나 미식 신에 전통 가정식 돌풍을 일으킨 슈테파니의 말이다.
02 : 비엔나 소시지의 사정
」비엔나 관광청이 전 세계에서 10명의 기자를 불러 모은 이번 트립의 타이틀은 ‘비엔나 바이츠’(Vienna Bites)였고, 그 목적은 비엔나가 가진 미식의 넓은 폭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스녹켈수페가 그 시작이었다는 건 살짝 나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었다. 나 역시 유튜브 채널 ‘풍향고’의 유재석 씨 일행처럼 슈니첼이나 비엔나 소시지가 우리의 첫 식사가 될 것이라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비엔나라고 하면 음악과 예술, 수많은 박물관이 먼저 떠오르지만, ‘유럽의 도축장’이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오늘날 슈니첼과 비엔나 소시지가 이 도시의 정체성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한 미식 취향이 아니라,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 형성된 거대한 도축·유통 시스템과 깊이 맞닿아 있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비엔나는 유럽에서 가장 체계화된 도축 도시 중 하나였다.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는 오스트리아 전역은 물론 헝가리 평원, 보헤미아, 갈리치아 등지에서 끊임없이 가축을 공급받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1873년, 오늘날의 장크트 마르크스(Sankt Marx) 지역에 중앙 도축장(Zentralvieh- und Schlachthof)을 설립했다. 이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도축·가공 단지로, 검역, 분류, 가공, 유통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근대적 식품 산업 시설이었다. 심지어 가축들이 길로 다니며 생기는 교체증과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밖에서 중앙 도축장으로 향하는 직행 기차 노선을 만들었을 정도다.
이 중앙 도축장의 등장은 비엔나의 식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고기의 안정적 공급’이었다. 대량 도축과 냉장 기술의 발전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육류를 도시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고기는 더 이상 축제나 종교적 행사에만 등장하는 음식이 아니었고, 노동자 계층까지 포함한 일상 식재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조리할 수 있는 ‘상업’ 고기 요리들이 발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준비만 해두면 조리 시간이 짧은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과 언제든 삶아 대량으로 낼 수 있는 비엔나 소시지, 즉 ‘비너 뷔르스트헨(Wiener Würstchen)’이다.
이 비엔나 소시지는 ‘프랑크푸르터 소시지’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매우 흥미롭다. 19세기 초 프랑크푸르트의 한 정육업자가 비엔나로 이주해 소시지 사업을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사람답게 그는 처음에는 100% 돼지고기만을 갈아 넣은 훈연식 소시지를 만들어 팔았는데, 비엔나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이후 돈육과 우육을 혼합하고 이를 더 잘게 갈아 훨씬 부드러운 질감의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소시지가 인기를 얻자, 비엔나 사람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사람이 만든 소시지라는 의미로 ‘프랑크푸르터’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비엔나에 여행을 왔다가 이 소시지를 맛본 사람들은 비엔나에서 맛본 소시지니 당연히 ‘비엔나 소시지’라 불렀다. 결국 둘 다 각자의 논리로 말이 되는 이름들인 셈이다.
로지 바이즐의 웨이터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멋진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매력적인 손님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WienTourismus/Gabriel Hyden
03 : 오스트리아식 유머
」육식 상업 요리의 발원지인 비엔나 미식의 지형은,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다. 점심시간에 자리를 잡기도 힘들다는 레스토랑 ‘슈바인’(Schwein)의 이름을 듣고 비엔나소시지 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조금 부끄럽다. ‘19세기 스타일대로 돼지고기 100%의 훈연 소시지를 내는 식당’일 것이라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름과는 달리 슈바인은 100% 비건 레스토랑이었다. 메뉴의 이름에서도 작명 유머는 이어졌다. 햄이 잔뜩 들어 있을 것만 같은 ‘루벤 샌드위치’는 ‘비트 파스트라미’로 가득 차 있었고, ‘노 미트 볼’은 아마도 마치 두부를 으깬 듯한 공 모양의 식물성 단백질 덩어리였다. 이 메뉴들은 원래 요리의 맛을 상상해 비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벽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라구 소스의 풍미를 재현하기 위해 가지를 구워 토마토와 각종 향신채로 복합미를 더한 라사냐는 고기의 존재 유무를 논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도심에서 서쪽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인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로지 바이즐’(Rosi Beisl)에도 슈바인과 같은 유머가 숨어 있다. ‘바이즐’은 비엔나나 오스트리아의 가정식 메뉴를 파는 선술집을 뜻하는 단어로, 영국이라면 펍 혹은 타번, 일본이라면 이자카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자카야를 생각하면 야키토리, 사시미 모리아와세, 가라아게 등을 떠올리듯 ‘바이즐’이라는 단어가 붙은 식당에선 보통 슈니첼, 타펠스핏츠(삶은 소고기), 프랑크푸르터(소시지) 등을 판다. 그러나 로지 바이즐에서 우리가 만난 건 부다스 핸드를 비롯한 다섯 가지 시트러스 과일을 활용한 샐러드, 아스파라거스와 두유 조림 등의 채식 메뉴뿐이었다. 슈바인도 로지 바이즐도 다양성을 추구하고 옹호하는 오스트리아인다운 경쾌한 유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슈바인은 100% 비건 식당인 반면, 로지에는 돼지고기 덤플링 등의 비건 외 메뉴도 있다는 것. 로지 바이즐에서는 무알코올 와인도 판매하는데, ‘무알코올 와인이 대체 뭐지?’라는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주문해보기를 바란다. 와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마신다면 무알코올 와인은 포도로 만든 콤부차로, 식사와 함께 매우 아름다운 페어링을 완성한다.
테판 두벡은 전기와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장작과 숯에 불을 피우는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요리한다. © Christian Maislinger
04 : 하이엔드 내추럴
」비엔나에는 ‘링슈트라세’가 있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수도 비엔나의 여러 궁전을 감싸고 있던 성벽을 헐고 그 자리에 최대 폭 57m에 달하는 거대한 순환 도로를 만들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감싸고 있던 4대문과 이 문들을 잇는 성곽길을 다 허물고 그 자리에 순환 도로를 건설한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링슈트라세 안쪽이야말로 ‘진짜 비엔나’라는 의식이 강하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두벡(Doubek)은 이 링슈트라세의 안쪽에 있기는 하지만, 슈테판 광장이나 호프부르크 궁전 등의 관광지가 지닌 화려함과는 많이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뮤제움 콰르티어(MuseumsQuartier) 앞에 있는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나오는 ‘요제프슈타트’라는 주거 구역,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공원 뒤편 사거리 모퉁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고도의 산업 성장기인 그륀더차이트 건물이 분명한 투박한 건물의 모퉁이에 이 레스토랑의 파사드가 있다. 돌출 간판이 없는 것뿐 아니라, 벽에 붙인 검은색 레터링이 전부다. 레터링은 비추는 조명도 없어서 어두운 겨울 저녁이라면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레스토랑 안에 들어서면 더욱 당황스럽다. 눈앞의 손을 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실내, 어디서 스며 나오는지 모를 만큼 절묘하게 숨겨진 조명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눈에 띄는 조명이라고는 댄 플래빈이 만든 것만 같은 형광등뿐이다. “저희 레스토랑은 가스나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불로만 요리를 해요.” 두벡의 총괄 매니저인 노라 파인이 우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그녀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자 개방된 형태의 주방이 나타났고, 그곳에선 정말로 화덕에 장작을 넣거나 아궁이에 불을 떼어 요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진짜 불은 조명과는 다르다. 빨갛게 빛나는 숯덩이들이 내는 따스한 불빛으로 가득 찬 공간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가족 모임 혹은 조금 더 속되게 두둑하게 들어온 월급 통장의 온기를 떠올리게 했다. “전기를 쓰지 않는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해요. 이를테면 믹서기를 쓸 수 없으니 비스크 소스를 내릴 때도 사람이 직접 아주 오래된 방식의 프레스 머신을 돌려 새우 머리들을 짜내지요.” 노라 파인이 말했다. 잠시 후 우리는 실제로 셰프 스테판 두벡과 그의 파티시에가 함께 비스크 소스의 베이스를 짜내는 모습을 관람하기도 했다. 홍새우의 머리를 불로 그을려 비릿내를 날려 보낸 뒤 압착기 안에 넣고 이를 돌리는 두 남자의 팔에서는 근육이 불끈거리고 있었다.
두벡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건 마리아주다. 헤드 매니저이자 헤드 소믈리에인 노라 파인은 “우리는 페어링을 진행하는 테이블에는 첫 잔 혹은 두 번째 잔까지는 철저하게 블라인드로 서브해요”라며 우리의 잔을 채웠다. 제철 방어 타르트와 스팔라 크루다(이탈리아 생햄)를 주재료로 한 아뮤즈 부슈에 서브된 첫 와인을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생산된 그 와인은 그뤼너 벨트리너, 벨슈리슬링, 리슬링이 블렌딩된 와인으로 손으로 수확하고 야생 효모로 발효했다. 엄청난 복합미와 보디감 그리고 높은 산도는 방어의 기름진 맛과 스팔라 크루다의 감칠맛에 지지 않고 어우러졌다. 코만도 지의 가르나차 품종 라 브루하, 피에르 몽퀴의 블랑 드 블랑 샴페인, 슈타이거 마르스의 샤르도네로 이어지는 흐름은 정말 음식과 와인이 탱고라도 추는 듯했다. 이런 완벽한 마리아주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희가 함께한 지는 1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같은 레스토랑에서 저는 소믈리에로, 슈테판은 라인 셰프로 시작했고, 서로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도 하다가 이제 우리의 레스토랑을 만들자며 합친 거예요.” 노라가 말했다. “저흰 늘 새로운 메뉴에 낼 와인을 같이 페어링해서 마셔보지요. 예외는 없어요.” 두벡은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거쳐 2023년 문을 연 뒤 단번에 미쉐린 2스타를 거머쥐었다. 이 부부가 만들어내는 마리아주란 그만큼 완벽하다.
오스트리아 내추럴 와인을 만나보고 싶다면 비엔나의 룬트바로 향할 것. 그리고 가장 키가 큰 남자를 찾아라. © Ingo Pertramer
05 : 도전적이고 아름다운 와인들의 도시
」와인 얘기가 나왔으니 ‘R& BAR’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사용하고 독일어에서 ‘&’는 ‘그리고’의 의미인 ‘und’(운트)로 읽는다. 즉 ‘R& BAR’라는 기호 같은 단어를 보고 비엔나 사람들은 자연습럽게 ‘Rundbar’(룬트바)로 읽는데, 둥근 바라는 뜻이다. 이곳은 그 이름처럼 위계가 없고 격식이 없고 자유로운 느낌의 내추럴 와인 중심의 바다. 룬트바를 찾은 저녁, 엄청나게 키가 큰(아마도 190cm 정도)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뭘 마실래요?”라고 물어보았다. 작은 제스처 하나하나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였을까? 나는 그에게 맡겨 보기로 했다. “아무거나 오스트리아 와인으로.” 오스트리아 와인 오마카세의 첫잔으로 그가 쉐들의 블랑 드 블랑을 가져온 순간부터 나는 와인 저널리스트로서의 거의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잔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내준 마지막 잔, 크리스티안 치다의 ‘펠젠 II’는 오스트리아 내추럴 와인에 대한 나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렇게나 차갑고 서늘하고 우아한 시라라니!그렇다. 시라다. 크리스티안 치다는 프랑스 북부 론에서 주로 재배하는 시라 품종을 부르겐란트에서 키웠다. 너무 놀라 인스타그램에 이를 포스팅하자 스위스의 미식 잡지 에디터인 내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넌 방금 오스트리아 최고의 와인 메이커가 만든 와인을 마신 거야.” 그러니 반드시 명심할 것. 비엔나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는 사이에는 반드시 와인을 마셔볼 것. 특히 오스트리아의 내추럴 와인들, 베를리치(Werlitsch), 안드레아스 체페(Andreas Tscheppe), 셉 앤 마리아 무스터(Sepp Muster), 그리고 크리스티안 치다(Christian Tschida) 등의 생산자가 만든 와인 보틀을 발견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집어 들기를 바란다. →
Credit
- PHOTO 비엔나관광청
- ART DESIGNER 김동희
MONTHLY CELEB
#원터, #우도환, #이상이, #성시경, #박보검, #이종석, #정경호, #조나단앤더슨, #최혜선, #곽민경, #이유정, #김민지, #윤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