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클럽 월드컵이 보여준 축구라는 이름의 정치

결국 정치인데 또 정치는 종종 결국 돈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7.28

축구 팬이 아니더라도 클럽 월드컵을 앞두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키워드가 있다. 바로 ‘혹사 논란’이다. 각 클럽이 속한 리그를 뛰고, 대륙별 클럽 대항전을 뛰고, 누군가는 국가 대항전을 뛰고, 또 대륙별 국가 대항전을 뛰는 와중에 클럽별 전 세계 국가 대항전까지 뛰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졌을까? 선수들을 더 많은 경기에 내보내려는 이 움직임은 축구계에서 벌어지는 경기단체 간 주도권 싸움, 즉 일종의 정치에서 비롯됐다. 오랫동안 스타 선수들의 연간 일정은 보통 1년에 38경기인 정규리그, 10~20경기가 추가되는 각종 컵대회, 국가대표 평가전 및 대회 예선, 그리고 2년마다 돌아오는 국가대표 대형 이벤트로 정해져 있었다. 2020년대 축구는 로컬 스포츠에서 완전한 글로벌 스포츠로 발전하면서 상업적 가치가 더욱 커졌고, 그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산업이 중단되는 상황까지 양극단을 모두 겪었다. 충격을 받은 축구는 변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머물러 있던 대회 방식을 바꿔가며 더 많은 이문을 남기려는 시도가 가속화됐다.

경기 수를 늘리는 흐름에 불을 붙인 게 국제축구연맹(FIFA)의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축구단체를 만들려던 ‘반역’의 움직임, 즉 슈퍼리그 창설 시도였다. 2021년 미국의 금융기업 JP모건 체이스가 60억 달러를 쏟아부어 FIFA와 유럽축구연맹(UEFA)이 건드릴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축구대회를 만들려 했다. 이 시도는 축구 팬들의 반발, 그리고 FIFA와 UEFA의 적극적인 기득권 수호 투쟁으로 무산됐다. 하지만 막는 데서 끝날 순 없었다. 팬데믹을 겪은 구단들은 선수를 혹사시키더라도 더 많은 수익을 내겠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UEFA 입장에서는 경기를 더 치르려는 빅 클럽들을 달래기 위해 슈퍼리그의 아이디어를 흡수해야 했다. FIFA 역시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참가국을 기존 1.5배인 48개국으로 늘렸고, 올여름 클럽 월드컵을 확대 재편했다. 구단들은 환영했다. 더 많은 경기는 곧 더 많은 수입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뮌헨 명예회장은 “선수들이 갈수록 많은 연봉을 요구하니까 구단은 수익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많은 경기를 치르는 것”이라며 경기를 줄여달라고 하려면 너희들의 연봉부터 낮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하게 하기 위해 주최 단체들은 돈을 걸었다. FIFA는 레알마드리드를 비롯한 빅 클럽들이 찍소리 없이 출전하도록 거액의 상금을 내놓았다. 유럽 팀이 우승할 경우 최대 1억 25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울산HD는 3전 전패로 탈락했는데도 참가비 955만 달러를 수령했다.

이런 상금이 가능한 이유는 중계권 판매와 더불어 다양한 스포츠 계약을 유치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발을 걸친 FIFA답게 큰 금액을 후원할 수 있는 각국 기업을 다 끌어왔다. 메인 스폰서 9개 중 코카콜라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기업이 5개, 레노버 등 중국 기업이 2개, 사우디 및 카타르 기업이 하나씩이었다. 특히 사우디와 카타르가 눈에 띈다. 최근 중동은 전 세계 석유가 다 마르고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세상이 전환되기 전에 소프트 파워를 갖추려고 몸부림 중이다. 중동이 스포츠에 투자 의지를 보이자 가장 가까운 종목은 축구였다. 이번 클럽 월드컵에 중동 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힐랄, 아랍에미리트(UAE)의 알아인이 참가했다. 유럽의 맨체스터시티는 UAE, 파리생제르맹(PSG)은 카타르 자본이 운영하는 팀이다. 알힐랄이 16강에서 맨시티를 꺾자 사우디에서 온 경영진은 우승보다 더한 기쁨에 흐느끼기까지 했는데, 중동 내 자존심 싸움이 심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중동과 비중동의 갈등 구도가 남미 팀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브라질 구단 보타포구는 파리생제르맹을 상대로 엄청난 투지를 보이더니 뜻밖의 승리를 따냈다. 이는 보타포구의 구단주인 미국인 존 텍스터가 프랑스 리그의 올랭피크 리옹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파리생제르맹과 자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형성된 ‘대리 라이벌전’이라는 분석이 따랐다. 텍스터는 과거 인터뷰에서 “파리생제르맹과 경쟁하는 건 일개 구단이 아니라 한 국가를 상대하는 것과 같다”라는 폭탄 발언을 날린 바 있다.

그런데 축구대회의 정치를 논하려면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보다 더 근본적인, 진짜 정치로 들어가야만 하는 대목이 찾아온다. 축구는 국제 정세와 정치가 가장 잘 반영되는 종목이다. 전 세계가 고루 즐기는 인기 종목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기 때문이다. 축구 외의 스포츠는 그걸 즐기는 한두 국가의 정치를 반영할 뿐이겠지만 축구는 전 세계 국가들의 대립과 협력을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이 되곤 한다. 정치적인 영화의 거장 켄 로치, 자라프 파나히가 각각 영국과 이란 축구라는 렌즈를 통해 사회를 조망하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럽 월드컵을 앞둔 첫 번째 정치적인 이슈는 이란 선수의 참가 가능성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클럽 월드컵 직전 12개국의 입국을 전면 거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여기에 이란이 포함돼 있었다. 인테르 밀란에서 뛰는 이란 대표 공격수 메흐디 타레미가 과연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런데 타레미를 둘러싼 이슈는 더 심각한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가 머무르고 있던 테헤란을 향해 이스라엘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양국이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폭격 싸움을 벌였다. 타레미는 대회 참가는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게 먼저였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벌어지는 곳마다 축구가 있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이번 대회에서는 어찌어찌 풀었지만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트럼프 행정부의 계속된 반이민 정책이다. 내년에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 개최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다. 이미 이란의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되면서 영국 BBC 등 각국 외신에서는 트럼프가 못 오게 하는 나라가 미국에서 뛸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기사가 났다. 트럼프가 거부한 12개국 중 남미의 베네수엘라, 아프리카의 수단과 리비아도 본선 진출 가능성이 높다. 월드컵 선수단 입국이야 허락하겠지만, 취채진과 팬들이 미국에 갈 수 있을까? 이미 한국 기자 중에도 미국행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클럽 월드컵 취재를 포기한 사람이 있었다. 그 기자가 과거 축구 대표팀을 따라 중동 국가를 방문했던 기록 때문이다. 대사관에서 해명을 시도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일반 축구 팬의 미국 입국은 절대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팬 대부분이 미국에 가지 못한다면 경기장에서 그 팀은 누가 응원할까? 미국에 사는 해당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밖에는 없지 않을까?

또한 월드컵이 열리는 세 나라 사이에서 축구 팬이 수시로 이동할 수 있어야만 공동 개최가 성립하는데, 미국이 언제 다시 국경을 봉쇄할지 모른다는 변수가 있다. 트럼프 1기 때 멕시코를 상대로 장벽을 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게 여전히 눈에 선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로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에도 시비를 걸었다. 트럼프는 아직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해 12월 쥐스탱 트뤼도 당시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라고 부르면서 캐나다가 미국의 일개 주로 편입돼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상대로 벌이는 좌충우돌을 보고 FIFA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대체 북중미 월드컵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클럽 월드컵을 앞두고 특이한 출장을 많이 다녔다. 백악관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마이애미에 있는 FIFA 미국 사무실에서 팸 본디 법무장관,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만났다. 숀 더피 교통부 장관과도 미팅을 가졌다. 이들 모두 입국 관리와 밀접한 부서들이다. 내년 월드컵 기간만큼은 멕시코와 캐나다 사람들이, 또한 이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불편 없이 돌아다니게 해달라고 읍소하고 다니는 것이다.

스포츠에 정치를 끌고 들어오지 말라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축구에서 정치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클럽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적 긴장 상태를 조성하면 대회를 잘 치르기 힘들다는 지적에 “긴장은 좋은 것 아니냐. 긴장 때문에 더 흥미로운 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클럽 월드컵 도중에도 특유의 기행은 이어졌다. 마침 워싱턴DC에서 일정이 있던 유벤투스가 FIFA의 요청을 받고 백악관에 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등 뒤에 유벤투스 선수단을 일렬로 세운 채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여자 선수가 너희 팀에 들어갈 수 있어?”라며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참여에 대한 평소 주장을 반복했다. 유벤투스 단장이 “이미 훌륭한 여자 팀이 따로 있다”고 답하자 “말을 잘 돌리네”라고 공격했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운명이다. 녹색 필드 위에선 늘 정치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정치는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과 세계 각국의 우경화로 인해 점점 더 예측하기 힘든 형태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언젠가 축구의 인기가 줄어들고 세계 최고 인기 종목이라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사람들의 삶과 투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종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용은 <베스트일레븐> <일간스포츠>에서 기자로 있었으며 지금은 축구 전문 매체 <풋볼리스트>의 편집장이다. <스쿼드 : 유럽축구 인명사전 2014/2015> <2016/2017 EPL BOOK>을 공저했고, <프란체스코 토티 :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정용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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