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캇 컨템포러리의 전시 설명문에 당신의 작품을 두고 ‘경험을 공유할 관객을 모으는 초대장’이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파티 초대장인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무척 슬픈 얘기들이 많아서 장례식에 초대받은 듯한 전복이 일어나기도 해요.
전 작품이 비어 있는 운송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은 이 작품을 타고 어디로든 어떤 방향으로든 갈 수 있도록 수단만 제공하지요. 결국 관객이 방향을 정한다는 점이 중요해요. 본인이 와서 보고 작품을 재해석하고 자신의 현실에 맞게 자각해야 하겠지요.
당신의 작품 ‘스푼’은 정말 파워풀하지요. 미국이 1964~1973년까지 라오스에 2억5000만 개의 집속 폭탄을 투하했고, 현지인들이 그 폭탄에 있는 금속을 녹여 스푼을 만든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제 고향이 라오스에서 매우 가까운 북동부 지역이라 라오스를 정말 자주 오갔어요. 하루는 라오스에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제가 들고 있는 스푼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 가벼운데, 강성이 굉장히 강하더군요. 직감적으로 그동안 내가 사용하던 스푼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스푼이 라오스의 나피아 마을에 투하되었으나 터지지 않고 남아 있는 집속 폭탄에서 재활용한 금속으로 만들었다더군요. 태국인들이 부러워하는 라오스의 울창한 숲에 이 폭탄들이 다 뒤덮여 있어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땅의 구획을 나눠서 한 에이커씩 폭탄들을 다 제거한 뒤에야 그 땅에 경작을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잘 몰랐어요.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폭력의 도구를 녹여 입에 넣는 숟가락으로 만들고, 또 자신의 몸을 지키는 십자가로도 만든다는 그 대조도 좋았습니다. 거기 있는 한 젊은 가족에게 그 쇠를 녹여 자유로운 형태의 구를 만들어달라고 한 게 ‘스푼’의 시작입니다.
이번 전시장 지하에 있는 ‘운명의 기관(집합)’은 당신의 연작 아이디어 여럿을 변형해(transformed) 합친 듯한 느낌입니다. ‘스푼’을 만든 그 쇠로 철판을 만들고 그 철판으로 스텔스 비행기의 형태를 만들어 바닥에 깔았지요.
제게 변화(transforming)는 전부입니다. 작가로서 저는 제 자신을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몰아넣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요. 그 과정에서 변화는 필수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스푼’이라는 작업 역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피아 마을에는 17채의 집밖에 없고 그 집들에 사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폭탄을 녹여 시장에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지요. 쌀농사를 짓고 닭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집집마다 숟가락과 포크를 주조하는 가마가 있었어요. 이들이 하는 걸 문자로 풀어보면, 불발탄을 녹여 장신구로 만들어 자신들의 몸에 싣고 다니는 것이죠. 또 다른 변화는 다른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베트남과 미국의 갈등이 라오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다가 꽤 많은 사람이 팔이나 다리를 잃고도 절단된 다리나 팔의 고통을 느끼는 ‘환상통’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팔과 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거울 치료법’이 이를 치료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됐지요. 그리고 더 조사하던 중 스티븐 섬너라는 사이클리스트가 사고로 다리를 잃은 후 거울 치료법으로 환상통을 극복했고, 이후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전쟁과 폭력을 경험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거울을 선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스푼’을 만들어준 한 젊은 가족에게 철판을 주조해달라고 부탁해 한 면을 연마해보니 거울처럼 반짝이더군요. 스푼 작업이 거울 치료를 만나 변화한 것이죠. 한편 환상통과 관련해 연구한 뇌를 다루던 외과 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인 와일더 그레이브스 펜필드 박사가 뇌를 ‘운명의 기관(The Organ of Destiny)’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폭탄에서 수집한 금속을 녹여 거울처럼 연마한 연작에 ‘운명의 기관(The Organ of Destiny)’이라는 제목을 붙였지요.
‘운명의 기관(집합)’, 2024, 연마된 납과 주석, 전선, 스테인리스스틸, 1쌍: 70 x 25 cm, 110 x 25 cm.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네요. 개념과 개념을 연결하는 방식이 너무도 매력적이에요.
아까 기자님이 이번 바라캇 전시에 있는 ‘스텔스기 모습’이라고 말한 작품은 사실은 얼마 전에 미국 공군이 공개한 차세대 전략폭격기 B21입니다. 실제로 스텔스 기능이 있는 이 거대한 폭격기는 레이더망에는 ‘작은 새’로만 인식된다고 합니다. ‘작은 새’라는 말과 한국의 DMZ에 겨울철이면 날아온다는 두루미를 연관 지어 이번 전시에서는 ‘운명의 기관’의 금속 패널들을 다양한 형태의 배치로 바꿔가며 전시할 예정입니다. 기자님이 보신 순간에는 비행기의 모습이었지만요. 전 제 역할이 이런 사건과 사건, 상황과 상황 사이에 보이지 않거나 사라져버린 ‘미싱 링크’의 자리에 제 자신을 배치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스티븐 섬너는 자신의 웹사이트 ‘나와 내 거울’을 통해 기부를 받아 그 돈으로 팔과 다리용 환상통 치료 거울을 만들어 앞에서 얘기한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을 돌아다니며 나눠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운명의 기관’이 팔리면 일부를 그의 활동에 기부할 거고요. 이렇게 나라는 존재를 통해 서로 다른 현실들이 업사이클링 되면서 순환하는 구조가 완성되지요.
유실된 폭탄이라면 이 한국 땅도 무관하지 않지요. 제가 군 생활을 하던 지역에서도 지뢰가 발견되곤 했습니다. 실제로 DMZ 근처에선 군사 활동을 하다가 지뢰를 밟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고요. 비가 많이 오면 지뢰가 민간 지역까지 떠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군요. 그런데 조금 차이가 있는 게 라오스의 폭탄은 비가 많이 내릴수록 퇴적물이 무거워져 더 깊숙한 땅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위험해요. 라오스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인데요, 가족들에게 먹일 식사를 요리할 때마다 땅 바로 위에 불을 피웠던 한 남자의 이야기였어요. 그렇게 계속 불을 피우다 보니 그 열기가 계속 지면을 데웠었나 봐요. 그래서 결국 땅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던 폭탄이 터져버렸고, 남자는 결국 하루아침에 전신이 마비되었죠.
바라캇 컨템포러리의 지하 1층, ‘운명의 기관(집합)’ 설치 작품 전면의 벽에는 <내일을 돌보는 오늘>이라는 영상 작품이 영사 중이죠. 그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정말 시적입니다.
이야기는 한 벌목꾼에서 시작합니다. 이 나무꾼이 하루는 라오스의 한 숲에서 나무를 베다가 나무에 박힌 어떤 단단한 물질 때문에 전동톱이 망가지는 일을 경험해요. 그는 그게 마치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느꼈지요. 그날 이후 그는 나무에 어떤 영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지역의 모든 나무를 미신적인 어떤 것으로 상정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벌목꾼들에게 “그 숲에 있는 나무들은 베면 안 돼”라고 말하고 다니지요. 그래서 결국 숲 전체가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 되지요. 그 작품을 ‘운명의 기관(집합)’ 앞에 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만약 폭탄이 발견되면 사람들이 그 전체 지역에 폭탄이 있을 거라 믿게 돼서 그 지역 전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잖아요. 예를 들면 DMZ는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갈등의 상징 같은 곳이지만, 그래서 가장 청정한 지역이 되기도 했지요. 이 숲도 마찬가지였어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바람에 나무들이 더 거대하게 자랐고, 매력적인 자연을 품은 곳이 되었지요. 흥미로운 건 애초에 나무꾼의 전동톱을 망가뜨린 건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퍼부어 나무에 박혀 있던 포탄의 잔해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포탄의 잔해가 날아와 박힌 상처들이 벌목꾼들의 손에서 나무들을 구한 거지요. 처음 그 숲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을 때는 직접 가보고 싶었는데, 당시 팬데믹 상황이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적외선 카메라를 라오스로 보내 현지의 비디오그래퍼들에게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요청했지요.
당신은 전후 세대인데, 전쟁과 전쟁이 남긴 상흔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뭔가요?
처음부터 전쟁과 갈등에 대한 작업을 하려고 목적한 것은 아녜요. 다만 전 다양한 관점으로 지나간 시간을 조사하고 현재의 사건으로 이를 다루고 싶었는데, 나의 눈에 라오스 주민들의 눈빛이 들어왔을 뿐이죠. 1000년 전의 사건이라도 상관없어요. 모든 것은 현재의 사건으로 다룰 수 있죠. 전쟁은 사회의 형태를 빚고 모든 일이 발생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종종 이 세계를 바꾸는 것은 아내(wife)와 전쟁(war)이라고 농담을 하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 고향 우본랏차타니에는 국제공항이 지어졌어요. 이 공항은 미군이 사용하기 위해 도시가 생기기도 전에 먼저 만들어진 것이라, 이 공항을 한가운데 두고 도시가 형성됐고요. 그래서 지금도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갈 때 이 공항을 지나려면 공항통행료를 내야 해요. 군사기지라 구글 맵에도 나오지 않죠. 베트남전 당시 라오스를 폭격하던 폭격기들이 이 공항에서 이륙했어요. 지금도 안에 들어갈 수 없고 비어 있는 곳이지만, 그 역사는 우리와 아직 대화하고 있는 거죠. 그 빈 공간이 여전히 숟가락을 캐스팅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