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인터뷰를 싫어하게 되었나
20년 차 영화 전문 기자가 인터뷰를 싫어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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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뷰가 싫다. 남의 인터뷰를 읽는 게 싫다는 소리는 아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인터뷰가 아직도 많다. 뭐, 아직 있긴 하다. 인터뷰가 싫다는 소리는 내가 인터뷰를 하는 게 싫다는 이야기다. 기자 23년 차에 인터뷰하는 걸 싫어한다니 기자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난 23년간 내가 한 인터뷰를 PDF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드리고 싶다. 여러분은 그 파일을 사흘째 읽어내다가 “그래요. 이만하면 됐네요”라고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내향인인 나로서는 그만하면 충분히 한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인터뷰를 좋아했다. 인터뷰하는 걸 좋아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 첫 직장은 영화 주간지 <씨네21>이었다. 2000년대 초반, 꽤 전성기를 누리던 잡지였다. 인터뷰를 잡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의 가장 빛나는 스타들도 인터뷰를 거절하는 일은 없었다. 한 배우를 만나면 적어도 3시간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시간이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시간을 좀 들여야 초반 탐색의 시간 이후 쓸 만한 이야기가 인터뷰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인터뷰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0년쯤 된 이야기다. 나도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하면 감독도 만나고 싶다. 배우도 만나고 싶다. 사실, 뉴진스 인터뷰는 꼭 해보고 싶다. 그 그룹 끝나지 않았냐고? 해체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았다. 내 꿈을 쉽게 짓밟으려 하지 마시라. 어쨌든 나는 인터뷰야말로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즐거운 요소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유명한 사람 만나는 거 싫어하는 사람 없다. 유명한 사람 만나서 단독으로 두어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거 싫어할 사람도 없다. 기자라고 뻐기는 거 아니다.
아니다. 뻐기는 거 맞다. 줄리엣 비노슈와 호텔 식당에서 단둘이 밥을 먹으며 했던 인터뷰는 내 기자 인생의 정점 중 하나였다. 원빈, 현빈, 강동원 다 만나봤다. 그들과의 인터뷰는 평소 거울을 보며 “이만하면 괜찮지”라고 생각하던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서의 내 자긍심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며 겸손한 인간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인터뷰는 홍상수 감독과의 인터뷰였다. 베를린 영화제 현지에서 하는 인터뷰라 출장 간 나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 그 시절 나는 홍상수 영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홍상수는 영리한 남자라 내가 그의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았다. 그 인터뷰는 온라인에서도 지워버리고 싶다.
그렇다. 나는 인터뷰를 좋아했다. 더는 아니다. 2010년대 초, 나는 영화 주간지를 그만두고 패션 잡지로 옮겼다. 지금은 사라진, 갓 창간한 잡지였다. 매체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다소 순진한 영화 주간지 출신이던 나는 처음으로 아이돌을 인터뷰하다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군 입대를 며칠 앞둔 아이돌이었다(지금은 같은 아재가 된 분이다). 인터뷰는 꽤 신이 났다. 내가 그를 아이돌이 아니라 영화배우를 인터뷰하는 것처럼 대화를 시작하자 그 친구도 뭔가 재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말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아이돌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마구 쏟아졌다. 쾌지나 칭칭 나네. 나는 속으로 손뼉을 쳤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인터뷰가 될 것이다. 확신했다.
대단한 인터뷰는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매니저가 나를 따로 불렀다. “그 이야기는 빼주시고요, 저 이야기도 빼주시고요. 그 이야기는 절대 안 되고요.” 당연히 나는 매니저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회사로 돌아오자 또 연락이 왔다. 인터뷰 초안을 보내달라는 소리였다. 다소 순진한 영화 잡지 출신이던 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편집장은 그럴 생각이었다. 요즘은, 특히 아이돌은 초안을 다 보내달라고 한다고 했다. 매니저가 빼달라고 한 이야기를 다 빼면 남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결국 별 이야기 없는 인터뷰가 나갔다. 찾아보려고 애쓰지 마시라. 그 잡지는 오래전에 폐간해 더는 온라인에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해한다. 매체 환경은 변화하고 있었다. 종이 잡지보다 온라인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온라인은 종이보다 오래 남는다. 빨리 퍼진다. 곡해되어 퍼지는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 누구도 더는 솔직한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옛날처럼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면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전히 기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꽤 재수 없는 꼰대 소리로 들릴 것이다. 어쩌겠는가. 나는 꼰대가 맞고, 꼰대는 과거의 영광의 시대에 머리가 계속 머무르기 마련이다.
프리랜서가 되면 일을 가리면 안 된다. 프리랜서가 되자 여러 잡지와 매체에서 계속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나를 인터뷰하겠다는 게 아니다. 인터뷰어로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이다. 나는 고민했다.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돈이 되는 일인데 한 번 거절하면 더는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계속 고민했다. 분명 “아니, 네가 뭔데 OOO 인터뷰를 거절해?”라는 소리도 듣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민했다. OOO도 XXX도 상관없었다. 서로를 탐색할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 인터뷰를 내가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영화와 드라마 라운드테이블 인터뷰 요청은 쉽게 거절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라는 게 생긴 건 한 10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내가 영화 잡지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인터뷰 형식은 드물었다. 기자회견 아니면 단독 인터뷰였다. 요즘은 그걸 ‘미디어 데이’라고 부른다. 하루 안에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를 라운드테이블이라는 형식으로 해치우겠다는 심산이다. 보통 한 10~15분 간격으로 대여섯 매체 기자가 함께 들어간다. 이 형식이 어디서 기인했냐고? 당연하지 않겠는가. 할리우드다. 할리우드는 영화 개봉 시점에 호텔방을 잡아놓고 역시 10여 분 간격으로 인터뷰를 ‘돌린다’. 속 깊은 이야기고 자시고, 디지털 시대에 지나치게 숫자가 늘어난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을 단번에 소화하고 도망치려는 영화사와 제작사들의 계략이다. 얼마 전 <21세기 대군부인>의 주연 배우들이 작품이 끝난 뒤 인터뷰를 고사해 몇몇 매체 기자들이 들고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 인터뷰가 성사되었다면 바로 이런 형식의 라운드 인터뷰였을 것이다. 고사한 이유도 뻔히 알 수 있다. 어차피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가기보다는 어떤 말을 하든 물어 뜯으려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해외 출장 중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꽤 했다. 영양가 있는 소리는 하나도 나올 수 없는 이 인터뷰 형식은 ‘기자들이랑 개인 셀카나 하나씩 찍어주면 영양가 없이 피상적이지만 좋은 소리만 나올 것이 틀림없다’는 할리우드 홍보 전문가들 머릿속에서 탄생한 것이 틀림없다. 덕분에 엘르 패닝이랑 단둘이 찍은 사진 한 장 남았다. 그건 감사하다. 한국은 언제나 할리우드를 좇아간다. 단독 인터뷰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브랜드와 엮은 잡지 지면이 아니면 단독 인터뷰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왜냐고? 여기서 역시 한국이라는 국가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 ‘평등’ 혹은 ‘공평’을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나이 찬 꼰대인 만큼 영화와 드라마 홍보사에서 거의 반세기를 일해온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도 할 말은 있다. 특정 매체에 단독 인터뷰를 주는 순간, 홍보사 전화통은 난리가 난다. “우릴 무시하느냐”는 분노가 쏟아진다. 설마 저런 소리를 다 큰 기자들이 하겠냐고? 한다. 데스크도 한다. 한국 매체들은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제일 싫어한다. 자사 기자가 거대한 오보를 냈을 때보다 더 싫어한다. 요즘은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하고 나서 배우와 반드시 셀카를 찍고 심지어 배우 개인 전화번호도 달라고 떼를 쓰는 기자들이 있다는 얘기를….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이 지면에서 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홍보사가 선택한 정답은 하나다. 공평하게 갈라주는 것이다.
10여 년 전 나는 당대의 한국 배우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라운드테이블 미디어 데이를 어제 끝냈다고 했다. 사진 촬영 중 잠시 잡담을 할 시간이 생겼다. 그는 정말 곤혹스럽다고 했다. 대체 왜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매체와 하루 종일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영화 내용이 뭐예요?”라고 묻는 기자 앞에서 술이 없어 물만 마셨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망치고 있었다. 매체와 영화사가 동시에 서로를 망치고 있었다. 배우들이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거절하는 순간, 제작사는 안다. 작품에 대한 좋은 기사가 나오기란 틀려먹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어쩌겠는가. 지난 한국의 20년을 돌아보라. 이 나라의 모든 업계는 끊임없이 서로를 망쳐왔다. 그래서 2026년의 나 같은 기자 나부랭이조차 “2006년이 그립구나” 하며 속으로 과거만 그리워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지면에서 인터뷰라는 형식의 기사가 더 나아질 획기적인 방식을 제안할 생각은 없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비겁해지기로 했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 기자가 되기로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다만 나는 15분짜리 미디어 데이 라운드테이블에 들어가 배우들 앞에서 노트북을 꺼내놓고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남의 질문과 답변만 요약해서 빠르게 전송한 뒤 배우와 셀카를 찍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한마디, 그 멋진 한마디를 배우로부터 얻어내려 애쓰는 모든 기자 여러분에게 최대한의 존경을 보낸다. 정말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이게 내가 이 우울한 글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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